본문 : 계2:7절 요한계시록 강해13
제목 : 이기는 자!
들어가는 말
제 딸은 저를 닮아서 참 개구쟁입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장난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종 종 딸에게 여자다우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제가 딸에게 여자다우라고 하는 말은 여자가 되라는 말일까요? 아니면 여자처럼 행동하라는 말일까요? 네 제 딸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여자입니다. 그러니 여자다우라는 말은 여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여자로서 여자 답게 행동하라는 의미인 것 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런 의미로 ‘이기는 자’ 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기는 자라는 말씀속에 담겨진 의미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속에서 이기는 자로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영적 전쟁 속에 있는 자입니다.
주님이 초대교회에 보낸 7개의 편지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습니다. 먼저,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소개하고, 각 교회를 향한 칭찬과 책망, 그리고 권면을 합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는에게 주어질 보상’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라고 더불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11절을 보면, 서머나교회를 향해서 ‘이기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7절을 보면, 버가모교회를 향해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26절을 보면, 두아디라교회를 향해서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리고 계3:5절, 12절, 21절에서도 사데교회, 발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들에게도 동일하게 이기는 자가 되라는 권면과 보상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는 자’ 라는 표현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라는 표현속에 담겨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으로부터 반대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그래서 싸울 수밖에 없는 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이기는 자가 된다는 말은, 나를 반대하고 공격하는 싸움의 상대가 전제되어야 성립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만약 나를 반대하는 상대가 없고, 나를 향해 공격하는 상대가 없다면, 이기는 자라는 말은 결코 성립 될 수 없는 말이 되고 맙니다. 예를들면, 권투선수가 상대선수가 없이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기는 자가 된다는 이 말씀 속에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반대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고 공격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바로 세상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세상의 풍조, 경향이며,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왜 우리들을 반대하고 공격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들이 자신들과 한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세상과 한편이라면 과연 우리를 반대할 이유, 우리를 공격할 이유, 우리와 싸워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럴 하등의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세상과 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우리들이 세상과 한 편이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과 한 편이기를 선택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선택을 한적이 없다고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이 하나님과 한편이 되기로 선택한 시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즉, 세상의 풍조, 세상의 사조, 세상의 경향들로부터 반대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반대와 공격을 당하고 싸움을 한다는 이 말이 너무 막연하게만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반대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해할 만한 방법으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살면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래도 되나? 라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순간들이 있습니까? 또는 신앙안에서 회복된 신앙의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까? 어떤 일을 할 때, 여러분의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거칠게 뛰는 순간이 있습니까? 또는 여러분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말과 행동이 잘못된 것으로 인해서 속상하고, 잠이 오지 않는 경험이 있습니까?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세상의 반대를 당하고 공격을 당하고, 싸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대를 당하지 않으면 갈등할 이유도, 양심에 가책도, 그래서 맥박이 빨리 뛸 이유, 속상하고 잠못 잘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는 세상으로부터 반대, 공격, 싸움을 요구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이래도 되나? 라는 갈등이 없고, 신앙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정말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심각하게 여러분의 신앙의 점검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삶속에 세상으로부터 반대, 공격, 싸움, 고민 갈등, 가책이 없다는 말은 둘 중의 한가지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닌데 같은 편인데 왜 반대하고 공격하고 싸움을 걸어오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이 이유는 여러분에게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반대와 공격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둘째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기는 하지만 유명무실하기 때문입니다. 전혀 그리스도인 답게 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냥꾼이 사슴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사냥꾼이 두 마리를 향해서 총을 쐈습니다. 한 마리는 제대로 맞아 쓰러졌습니다. 도망 갈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는 총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과연 이 사냥꾼은 누구를 쫓아가겠습니까? 누구를 공격하겠습니까? 쓰러진 사슴일까요? 아닙니다.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사냥감으로 확보가 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도망치는 사슴을 쫓아갈 것이고, 계속해서 총을 쏘면 공격할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세상으로부터 반대로 없고, 공격도 없고, 싸움도 요구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안에서 고민과 갈등이 없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총알에 제대로 맞아 쓰러진 사슴과 같은 그리스도인기 때문입니다. 살아는 있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처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반대, 공격, 싸움, 고민, 갈등,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상태인 것입니다. 꼭 이러한 측면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전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적인 전쟁의 본질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때로는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세상으로부터 반대와 공격을 당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임없이 고민과 갈등, 고뇌와 번민을 겪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당연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대와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바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전쟁터 속에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소홀해 지는 것입니다.
2.이기기로 보장 받은 자 답게 살아야 합니다.
다시 7절을 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기는 자가 되라는 말일 까요?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신다는 말일까요? 반대로 이기는 자가 되지 않으면 생명나무 열매를 안주시겠다는 말일까요? 생명나무의 열매는 이기는 자라는 조건을 갖춘 자에게만 주시겠다는 말씀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무엇일 상징할까요? 그것은 영생과 천국에서의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7절에 ‘낙원에 있는’ 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결국, 7절을 조건문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가 이기지 못하면 천국은 주지 않겠다는 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더욱이 구원은 은혜의 결과물이 아닌,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인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구원을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성경은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 바로, 엡2장일 것입니다. 4-8절을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왜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1-3절을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을 만한 행위를 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진노 받을 만한 행위를 가졌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의에 대해서 죽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물 곧 선물입니다.
이제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더 정확히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취소 될 수 있을까요?’ 다르게 말하면, 예수님을 참으로 믿는 자라는 조건 아래, 우리의 잘못,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 사람들에게서 다시 그 구원의 선물을 도로 빼앗아 갈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니,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구원은 취소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이 점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롬8: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부르셨고, 그들을 의롭게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는 모든 단어가 과거완료라는 점입니다. 여러분 과거 완료가 무엇입니까? 과거에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고 완성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31-37절을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못남, 연약함, 잘못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고발을 당한다 해도, 정죄당한다 해도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요한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원받은 자들의 못남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도 고발받고 정죄받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발도 비난도 정죄도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넉넉히 이기느니라’ 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하면, 31-32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가 나오는 것입니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에 결정하시고 완성하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모두 과거 완료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은 한 몸으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갈2:20절) 결국,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한 자들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말씀은 이겨야만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겠다는 말씀으로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기기로 운명 되어 있는 자이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로 운명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어떤 해석이 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모두에게 이기는 것을 보장받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로한 운명으로 받은 자로서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들에게 남자 다워라, 딸에게 여자다워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은혜로 선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그리스도인답게 신자답게 살 것을 촉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우리 모두는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최종적이 운명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무엇으로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 운명이 완성되기 까지의 과정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기는 자입니까? 오늘 여러분은 이기는 자였습니까? 우리 모두는 매일의 삶속에서, 매일의 시간속에서, 그리고 다양한 상황속에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 다워야 합니다. 어디서든지 신자다워야 합니다.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답게, 신자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미 앞부분에서 여러분에게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생명나무 열매를 주시는 날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게 부끄럽지 않는 삶일까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무가 있습니까? 나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만들어가야 할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 이웃에 대한 책임감, 교회에 대한 책임감,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종말론 신앙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앙의 증명이며, 신앙의 수준인 것입니다.
3.보상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을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는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보상을 말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보시고, 아시고, 기억하시고, 정확하게 보상하시는 분입니다. 계22: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보상해 주실지는 우리가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보상은 예수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천국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과 우리들이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보상이라는 점 뿐입니다. 그것 말고도 분명히 또 다른 보상은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는 이기는 자,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조건적 사랑과 제한없는 은혜로 인해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기는 자가 되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것을 약속받은 자로서, 날마다 이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영적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 편에서는 일에 이기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일에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결말만이 아니라 과정을 이기자가 되십시오! 이 말씀을 감사와 아멘으로 받는 여러분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