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6:1-34절 열왕기상 강해24
제목 : 소원하는 마음!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이유는, 통일을 소원하는 국민이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우리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러한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단지 노래를 안부르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통일이 소원인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에 소원을 품지 않으면 할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변호사이며, 저널리스트인 벤 스타인이라는 분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내가 뭘 원하는지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소원을 갖지 못하면 결코 소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살을 좀 빼고 날씬해야겠다는 소원을 품지 않으면 날씬해지는 소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또, 무엇이든 열심히 해보겠다는 소원을 품지 않으면 무슨 일에도 열심히 하는 소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에 대한 소원을 품지 못하면, 신앙의 소원들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소원함을 품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을 품지 못함으로 갈수록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 왕들에게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소원을 품음으로, 그 소원함을 이룰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갈수록 태산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1대왕 여로보암, 2대왕 나답을 이어, 3대에서 7대까지 5명의 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3대왕은 바아사왕이고, 그는 이스라엘을 24년간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4대왕은 엘라왕이고, 아버지를 뒤이어 왕이 되어 2년간 통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4대왕은 시므리왕이고,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된후 7일간 통치 후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6대왕은 12년간 통치한 오므리왕입니다. 그리고 7대왕은 아합왕이고, 아버지를 뒤이어 22년을 통치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5명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5명의 왕들의 공통점은 5명의 왕 모두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부터 7대왕 아합까지 모두가 악한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조금더 5명의 왕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절을 보면, 바아사왕이 악한 왕의 대명사인 여로보암의 길을 행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9절을 보면, 아버지 바아사왕을 이어 왕이된 엘라왕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그는 왕으로서의 아버지와 같은 우상숭배라는 악행과 더불어, 통치보다는 먹고 마시고, 취하는 일을 즐겨했던 더욱 악한 왕입니다. 또, 18절을 보면, 자신의 왕이 엘라를 죽이고 7일간 왕이된 시므리가 자신의 쿠테타를 반대하는 강한 세력을 만나게 되자, 성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하게 됩니다. 시므리 역시 전임 왕보다 더 악한 왕이었던 것입니다. 또, 25절을 보면, 시므리의 자살 후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야 왕이된 오므리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곧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라고 말을 합니다. 전임 왕들보다 더 악한 왕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0-33절을 보면, 오므리왕의 아들 아합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곧 ‘그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울 더욱 행하여’ 또,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아 바알을 섬겼다’ 또, ‘아세라상을 만들고,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더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까지의 왕들 중에 가장 악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5명의 왕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갈수록 태산’(갈수록 더 나빠지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소개하는 5명의 왕의 모습을 보면, 대를 거듭할수록 더 악하고, 더 비신앙적인 모습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더 악하게 행했고, 하나님을 더욱 노엽게 하는 갈수록 태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갈수록 악해지는 5명의 왕을 우리들에게 소개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옛날에 그랬다는 것만을 말해주기 위함은 아닙니다. 성경,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다시말해, 점점 더 악해지는 그들을 우리들에게 소개함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점검하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그들의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살수록 좋아지고 계십니까? 갈수록 거룩해지고, 그리스도인다워 지고 계십니까? 또, 갈수록 더욱 자비롭고 사랑많고, 넓은 마음을 가져가고 계십니까? 또, 갈수록 더 겸손해지고 계십니까? 갈수록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어가고, 갈수록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갈수록 예수님을 더 닮아 가십니까? 그렇다면, 잘하십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오늘 본문에 소개하는 왕들처럼 갈수록 신앙이 안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사랑이 없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간절함이 없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순수함을 잃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교만해지지는 않습니까? 또, 갈수록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가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원망과 불평이 많아지지는 않습니까? 갈수록 더 신앙이 소홀해지고, 갈수록 더 미련해지고, 갈수록 더 주님의 모습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좋아지는 신앙, 갈수록 더 그리스도인 다워지는 신앙을 갖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우리들에게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갈수록 좋아지는 신앙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2.소원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과 나답왕의 가문을 죄와 악행으로 인해 엄중하게 심판하는 것을 바아사와 엘라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아사와 엘라의 가문을 죄로 인해서 무섭게 심판하시는 것을, 시므리, 오므리, 아합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악행을 그치지 않고, 도리어 더 더욱 심각한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들의 악행과 그들의 죄가 갈수록 태산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전임 왕들이 악행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더욱 악행을 저지르고, 죄를 갈수록 태산으로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신앙이 좋아지지 않고, 갈수록 나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이 더욱 갈수록 악한 왕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그게 바로 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마치 눈덩이와 같습니다. 눈을 뭉쳐 주먹만하게 만들고, 그 눈덩이를 굴리면 어떻게 됩니까? 갈수록 커지게 됩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를들면, 짜증에서 미움으로, 미움에서 다툼으로, 다툼에서 살인으로..., 이렇듯 죄는 반복성과 성장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이 갈수록 태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방치하면 안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방치면,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죄에 민감한 마음과 죄를 해결하는 올바른 습관을 갖아야 합니다.
둘째로, 갈수록 더 악한 왕이 된데에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전임 왕들이 했던 악행을 버리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기쁘시게 하는 왕으로서의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소원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다윗과 같은 왕이 될 수 없었고, 적어도 이전의 왕들 만큼은 되지 말자는 소원함 조차 없어서 더욱 악한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한 왕, 온전한 왕,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왕이 되고자 하는 소원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갈수록 태산인 왕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것은, 우리들이 신앙의 소원을 품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소원함을 품지 않으면, 신앙이 좋아질 수가 없고, 달라질 수 없고, 도리어 나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설교자인 저의 큰 고민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목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설교사역이라고 말합니다. 그 만큼 설교 사역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제 고민은, 성도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랑을 말해도 여전히 미움을 가지고, 인격과 성품의 변화를 말해도 여전하고, 예배를 말하고, 성경과 기도를 말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참 많이 혼동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놓고 참 많은 고민과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바로 ‘원함 곧 소원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아무리 귀한 설교를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소원함을 품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냥 듣는 것뿐이고, 깨닫는 것 뿐이고, 성경을 이해할 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소원함을 품으며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겠노라는 소원함을 정말 품으십니까?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감동대로 살아보고자 하는 소원함을 품고 계십니까? 사랑, 용서, 섬김, 희생, 감사..., 등 소원을 품으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소원함을 품지 않으면, 신앙의 어떤 결과도 없을 것이고, 오늘 본문의 갈수록 태산인 왕들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소원을 품는 것이 신앙성장의 시작임을 알고,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실만한 신앙의 소원함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말씀대로 살겠다. 늘 기도하며 살겠다. 감사의 삶을 살겠다. 죄를 이기겠다. ‘하나님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는 소원, 기도할것에 대한 소원, 헌신에 대한 소원, 선교에 대한 소원, 성숙에 대한 소원, 사랑에 대한 소원, 감사에 대한 소원..., 등을 품어야 합니다.
3.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5명의 왕들이 ‘왜? 다윗같은 왕이 되어보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이 되겠다’는 소원함을 품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면, ‘내가 너를 티끌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죄로 나를 노엽게 하였은즉’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듯이 바아사왕은 공사 현장 감독관 출신입니다. 결코 왕이 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티끌에서 들어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은혜를 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 백성까지 그 죄를 범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왜요?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왕이 될만한 어떤 특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왕이 되겠다는 소원을 품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가장 큰 은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할수 없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은혜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를 늘 깨달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겠다는 소원을 품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은, 사명자, 헌신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를 잊으면 결코 사명, 헌신자의 삶을 살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내 백성 이스라엘 위에 주권자가 되게 하였거늘’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말속에는 하나님께서 바아사왕을 왕으로 세우며 백성들에게 좋은왕, 백성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왕이 되기를 바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은혜를 잊은 바아사는 자신의 사명도 해야할 임무도 다 잊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이 은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이 갈수록 더 나은, 더 좋아지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기 위해서 먼저, 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2)그리고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3)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소원을 품고, 신앙의 복된 소원들을 많이 품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날마다 귀하고 복된 소원을 품으며 살아가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이 날마다 좋아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