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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모든 시간 모든 자리! (요한계시록 강해12 )
 본문말씀 : 계2:1-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9.26
조회 : 6,407   추천 : 0  
본문 : 계2:1-7절   요한계시록 강해12 
제목 : 모든 시간 모든 자리!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주장하는 교리 때문일까요? 또는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무지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교리나 신앙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와 신자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과 삶, 말하는 것과 삶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예를들면, 사랑을 강조하면서 사랑이 없기 때문이고, 정의를 말하지만 정의롭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신앙과 삶이 부조화 때문에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말씀 역시, 신앙과 삶의 부조화 또는 이원화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즉, 왜 교회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교회안에서 교회 밖에서 다른 이유?
 우리는 지난 시간, 니골라당의 행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니골라당의 행위는 무엇이었습니까? 핵심은 신앙과 삶의 이원화였고, 결과는 세상과의 타협이었습니다. 이 점을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으로 말한다면,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로마황제숭배에 대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황제 숭배를 거부하게 되면 많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골라라는 사람이 등장했고, 신앙도 지키면서 박해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신앙과 삶을 이원화 하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로마황제숭배는 통치를 받는 자들이 가지는 의무이고 규칙일 뿐,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황제숭배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 편안하게 잘 섬기기 위한 일보후퇴이고, 지혜로운 처사로 주장한 것입니다. 신앙과 삶을 별개로 주장한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황제숭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에베소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일제 강점기 상황으로 말한다면,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교회와 신자들은 신사참배의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거절하면 끔찍한 박해를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골라 당과 같은 경향, 주장들이 나왔습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신사참배를 별개의 것이라는 경향과 주장입니다. 또한, 신사참배는 신앙과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신사참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신앙 때문에 박해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오늘날에는 니골라당의 행위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당시, 니골라당을 따르는 신자들과 그렇지 않은 신자들이 확연히 구분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에도 니골라당을 따르는 신자들과 그렇지 않은 신자들이 확연히 구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니골라당을 따르는 신자들과 그렇지 않은 신자들 사이에 확연한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이 니골라당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니골라당을 따르지 않는 교회가 없고, 니골라 당을 따르지 않는 신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의 비극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니골라당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똑같습니다. 신앙과 삶의 이원화입니다. 그리고 세상과의 타협 곧 세속화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교회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다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교회안에서는 참 겸손합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는 너무 교만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교회안에서는 거룩합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는 조금도 거룩하지 않고, 부정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교회안에서는 이해심이 깊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는 이해심이 없습니다. 교회안에서는 옳음과 정의를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불법, 편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회안에서는 양보를 잘합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는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교회안에서는 따듯하고 위로의 말을 잘하는데, 교회 밖에서는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교회안에서는 사랑을 강조하지만 교회 밖에는 미워하는 일을 잘합니다. 이 밖에도 교회안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안에 침투한 니골라당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안에서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2가지 이유를 말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교회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같아야 한다는 점을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 그대로, 세상에서도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크게 잘못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앙이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약2: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행함이란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교회안이나 교회 밖에서도 신앙대로 살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히11장을 보면, 자신의 삶속에서 신앙대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진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일로 살아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상주신다는 믿음을 가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냈고..., 또, 마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빛이라는 말과 착한 행실이라는 말은 모두 신앙으로 만들어낸 삶을 말합니다. 또, 마5:23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안에서의 삶보다 교회 밖에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신앙으로 만들어 낸 삶이 교회안에 국한되어서는 안되고, 교회 밖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교회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두 번째 이유는, 교회안에서는 신앙의 훈련을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신앙의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묻습니다. 신앙의 훈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서 실시하는 제자훈련이나 양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금식을 하거나, 예배에 참석하거나,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전도하는 것..., 등이 신앙의 훈련일까요? 맞는 말 일수도 있고, 틀린 말 일수도 있습니다. 신앙 훈련이란 이미 말씀드린대로 신앙으로 삶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교회안에서가 더 나은 이유는 교회안에서 신앙의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교회 안에서의 모습과 같지 않은 이유는 교회 밖에서는 신앙의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을 하면, 신앙의 훈련을 교회안에서만 한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교회안에서 예배훈련, 기도훈련, 봉사훈련, 그 밖에도 제자훈련, 전도훈련, 선교훈련..., 등 다양한 훈련에 참여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훈련을 전부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안에서는 신자다운 모습들로 보여지는데 교회밖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한 부조화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생각해볼만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에서의 삶이 나아졌습니까? 또는 그런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과연 그 사람이 받은 것이 제자훈련이 맞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교회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신앙으로 만들어내는 삶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훈련을 교회안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해야 합니다. 이제 이 부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2.모든 시간 모든 순간이 훈련을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지요?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귀신까지도 잡는다는 강한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강한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하는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서 더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신앙으로 삶을 만들어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저절로 되거나,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훈련을 통해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으로 삶을 만들어내어야 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신앙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신앙의 훈련을 하고 계십니까? 즉, 신앙으로 삶을 만들어 가는 훈련(나를 고치고 변화시키는 것)을 하고 계십니까? 신앙의 훈련과 연관해서 2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신앙을 훈련 장소 곧 신앙훈련소는 어디인가? 입니다. 어디일까요? 교회, 기도원, 신앙 세미나, 목장모임..., 일부는 맞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의 모든 현장이 신앙 훈련소입니다. 예를들면, 교회, 가정, 일터, 모임..., 등  내가 살아가는 모든 자리가 신앙 훈련을 위한 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신앙훈련의 프로그램은 무엇일까요? 교회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훈련프로그램일까요? 일부는 맞지는 전부는 아닙니다. 신앙 훈련 프로그램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순간들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는 기쁨, 슬픔, 고통, 절망, 답답함, 실패, 상처, 속상함, 낙심, 죄절, 눈물, 막막함, 외로움, 질병.., 등 또, 여러분의 삶에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입니다. 예를들면, 다툼의 상황, 갈등의 상황, 고민스러운 상황, 억울한 상황, 화가나는 상황, 위급한 상황..., 등 결국, 신앙의 훈련은 하루 24시간안에 우리들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순간, 상황들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이와같은 신앙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신앙 훈련소에서 신앙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신앙의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의 훈련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신앙의 훈련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실력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가지 묻습니다. 책상에 3시간 앉아 있는 학생과 1시간만 앉아 있는 학생 중에 누가 공부를 잘할까요?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학생이 잘 할수 있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또, 5년 동안 탁구를 친 사람과 3년 동안 탁구를 친 사람 중에 누가 더 탁구를 잘 할까요? 탁구를 5년 친 사람이 더 잘 할수도 있지만 꼭 그렇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통해서 하고자 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했느냐! 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몇 년 하셨습니까? 오늘 주제대로 묻는다면, 여러분은 신앙의 훈련소에 입소하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1년, 8년, 10년, 20년, 40년..., 등 그렇다면, 20년간 신앙의 훈련을 받은 사람과 10년간 신앙의 훈련을 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신앙의 실력이 좋을까요? 20년간 신앙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 더 신앙의 실력이 좋을 수는 있지만 꼭 그렇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10년 신앙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 더 신앙의 실력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19:30절에 예수님이 ‘먼저 된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신앙생활을 먼저 했고, 누가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우리들이 어떤 자세로 신앙의 훈련에 임하는가에 따라서 신앙의 실력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신앙의 훈련소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의 훈련을 받아야 신앙의 실력이 향상 될까요? 주어진 시간, 주어진 순간, 주어진 상황을 허비하면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골라’라는 말의 헬라어는 ‘니칼라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바라암’ 곧 발람이 된다고 합니다. 즉, 이 두 단어는 어원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뜻은, ‘소모시키다, 낭비시키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단어를 ‘방탕’ 이라는 단어로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방탕이 무엇입니까? 주어진 시간, 주어진 현실, 주어진 상황을 신앙의 기회로 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주어진 시간, 주어진 현실, 주어진 상황속에서 신앙과 믿음을 삶으로 만들어내는 기회로 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듯 주어진 시간, 주어진 현실, 주어진 상황을 훈련의 기회로 삼지 않고 소모시키고 낭비시키는 것을 방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탕함 때문에 우리들이 신앙의 훈련소에서 신앙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지만 신앙의 실력이 더 나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어떤 현실에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신앙을 훈련하게 하시기 위해서 주어진 시간, 주어진 순간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방탕하지 마시고, 지혜롭고 충성된 자가 되십시오!

 그렇다면, 주어진 시간, 주어진 현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단히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을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에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있는, 내게 처한 모든 순간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것, 바로 이것이 신앙의 훈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훈련을 통해서 신앙을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 원하심을 고민하십시오! 순종을 만들어 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의 훈련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우리의 믿음이 완전해지고, 우리의 신앙이 완성될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죽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때까지 신앙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로 연주가 ‘파블로 카잘스’를 아십니까? 이 분은 하루에 6시간씩 매일 빠짐없이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최고의 첼로 연주가이신데 그렇게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자 파블로 카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연습을 통해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연습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대화를 주고 받은 때가 그의 나이 95살이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훈련은 끝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중에서 그 누구도 신앙의 훈련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죽음을 통해서 신앙을 완성하던, 아니면,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의 신앙이 완성되던 그때까지 우리는 신앙의 훈련을 중단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신앙의 훈련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절제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훈려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그것은 바로 “절제” 입니다. 절제는 훈련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제자가 되는 일에는 반드시 절제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절제는 모든 면에서 중요합니다. 특별히 훈련에서 절제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 만일 달리기 선수와 권투선수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자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잔다면 실력이 향상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예전에 김연아 선수가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소치올림픽 경기를 마치고 인터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은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김연아 선수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싶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속에 그가 훈련을 위해서 얼마나 절제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신앙의 훈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훈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절제입니다. 왜냐하면 절제하지 않으면 더 이상 훈련의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절제해야 할까요? 말의 절제, 생각의 절제, 행동의 절제, 감정(분노)의 절제, 욕망의 절제, 때로는 옳은 일 선한 일에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매순간마다 절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신앙은 저절로 자라가지 않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신앙은 자라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교회안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유는 훈련의 차이입니다. 즉, 우리는 교회 밖에서의 훈련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 주어진 현실, 주어진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과 절제함으로 신앙을 삶으로 만들어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이상 니골라당의 행위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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