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5:25-34절 열왕기상 강해23
제목 : 하나님이 관심 갖으시는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이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는냐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관심 갖는 그 일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 결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돈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일을 추구하게 되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건강을 위한 일을 추구하게 되고, 자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자식을 위한 일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렇듯 모든 사람은 자신이 관심 갖는 일을 추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심사가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것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의 색깔과 수준이 결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도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관심 가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개합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2명의 왕을 보실 때 무엇을 관심있게 보았는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계신지를 확인함으로, 여러분도 하나님이 관심 갖는 그 일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이들은 어떤 사람인가?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2대왕인 나답과 3대왕인 바아사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답은 여로보암왕의 아들로서 2년동안 북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26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28절을 보면, 나답왕의 부하였던 바아사가 나답을 죽이고 북이스라엘의 3대왕이 되어 24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34절에 나답왕과 마찬가지리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나답왕이 죽은 사건을 여로보암왕의 범죄와 그에 따른 심판에 대한 예언(왕상14:14절)이 성취된 사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먼저 생각할 것은, “나답과 바아사왕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첫째로, 나답왕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보십시다. 먼저 그의 이름의 뜻은, ‘고상하다 관대하다 고귀하다’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점을 특별한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가 여로보암의 아들이며, 2년을 통치했고, 부하였던 바아사에게 반역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는 점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추측하면 몇가지 알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우선 나답은 왕의 아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누구보다도 많이 배울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가졌을 것이고, 아버지를 뒤이어 왕이 될 것을 준비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이것만 생각해도 나답은 별볼일 없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능력과 실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일 것입니다. 둘째로, 바아사왕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에서는 바아사는 나답 곧 여로보암왕의 모든 가족을 다 죽였다고 소개합니다. 그렇습니다. 문헌을 보면, 바아사왕은 싸움과 전쟁에 능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의 별명이 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아사가 쿠테타를 일으켜 왕이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그가 사람들을 휘어 잡을수 있을만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쿠테타에 동조할만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며, 쿠테타를 성공할수 있을만한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울수 있는 전략과 전술에도 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는 추진력도 상당한 사람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듯 바아사 역시 꽤 능력과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나답과 바아사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때, 실력도 있고, 큰 포부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고, 자랑할 만한 것들이 적지 않은 사람들 인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소원하고, 갖고자 하는 권력과 부귀와 명예를 모두가 갖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들이 가진 실력과 재능과 능력에 대해서는 별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악한 왕’ 이었다는 것만 말씀하시고 평가하고 계실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사에 대해서 알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답과 바아사왕을 보실 때 관심갖은 것은, 그들이 가진 실력, 능력, 재능, 부귀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었다면, 오늘 본문에서 그런 부분들을 자세히 언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언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들이 악을 행한 사람이라는 점만을 말합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면서 실력, 재능, 능력, 화려함... 등에 관심을 갖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십니까? 어떤 실력과 능력, 재능을 갖고 계십니까? 뭘 잘하십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훌륭한 일을 많이 해오셨습니까? 자랑거리는 많으십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시면서, 그런데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2.하나님의 관심은 삶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고민할것은,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 가장 관심 갖으시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바아사왕이 가진 실력과 능력과 재능과 대단함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가장 큰 관심을 갖으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그 2명의 왕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바아사라는 그 사람 자체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어떤 인생을 살아가느냐? 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보실 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각 사람이며 그들의 삶인 것입니다. 즉,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관심이 갖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각 사람의 재능, 실력, 지도력, 큰 포부..., 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목표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삶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아마도 창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일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면서, 가인은 농사하는 자,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한 제사 드리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제물로 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어떤 사람은 정성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건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의 추측이고 상상일 뿐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가인이 하나님께 억울해 했겠습니까? 분명히 둘다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제물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피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5가지 제사를 요구하시는데 모두 피의 제사는 아닙니다. 소제의 경우에는 피없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피없는 제사이기에 받지 않으셨다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피에 굶주린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기에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피가 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거절하셨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성의 문제도 아니고, 제물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삶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절 당한 가인이 화를 내자 하나님이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그렇습니다. 가인의 삶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즉, 가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들통 나자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삶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히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의로운 삶이 그의 제사를 더 나은 제사로 드리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제사 또는 어떤 제물보다도 삶의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미가선지자는 미6:8절에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서 더욱 분명히 들어납니다. 먼저, 마5:23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화목한 삶을 더욱 요구하시고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또,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자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나 진심이 아닌 삶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롬12:1절에서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각 사람에게 있고, 그 사람의 삶에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바아사왕의 재능과 실력과 대단함에 관심을 갖으신게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그들의 삶과 인생에 관심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실력과 능력과 재능에 상관없이 그들을 악한 왕으로 평가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모두 우상을 숭배했고, 바아사의 경우에는 사람을 죽이고, 피흘리게 하는 인생,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인생, 오직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인생, 그리고 자신의 왕을 죽이는 하극상의 나쁜 전통을 만드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악한 왕이라고 평가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들의 삶과 인생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보실 때, 우리들이 가진 실력과 재능과, 재산과 소유가 얼마나 많은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지금까지 교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업적 또는 공로를 세웠는가? 에 관심을 갖는 분이 아니라, 오직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느냐? 라는 삶에 대단한 관심을 갖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우리도 그 무엇보다도 삶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십니까? 혹시, 삶 보다는 말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삶보다는 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삶보다 종교적인 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곤란합니다. 삶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삶을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3.삶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와 만들어야 할 삶!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삶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 삶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삶이야 말로 모든 신앙의 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현관문에 붙은 교패, 또는 집사 권사 임직식에서 받은 임직패, 아니면 세례증서, 아니면, 교회안에서 여러분이 취득한 다양한 수료증, 또는 어떤 봉사의 경력...., 과연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단도 이런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삶으로만 참된 증명이 될수 있습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성경지식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신학교 교수 노릇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사랑한다는 입술의 고백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이단들도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통장잔고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럴수 없습니다. 악한 부자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가서 인증샷이라고 찍어 오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성경이 진리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그 밖에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의 삶’ 밖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죄와 싸우는 삶으로 증명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증명되고, 우리들이 천국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으로 증명되고, 여러분이 믿음을 갖었다는 것은 그 믿음에 걸맞는 삶으로만 증명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삶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또, 약2:18절을 보면,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고 말하는 것이고, 히11장에 나오는 수없이 많은 믿음의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내용을 삶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예를들면, 홍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은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릴 것을 믿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상주심을 믿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믿음을 삶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이렇듯 말이나 진심이 아닌, 오직 삶으로만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 사람들은 기독교를 싫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가진 교리나 주장 때문일까요?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리나 주장은 예나 오늘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오늘날 같은 미움이나 비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없는 부모도 아이가 교회간다고 하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는 사람들이 늘 말뿐인 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뿐인 모습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말에 대한 증명이 될만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말과 진심, 교회안에서의 열심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신앙과 믿음에 걸맞는 삶으로 증명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만들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2가지 삶을 만드십시오! 첫째는, 무엇보다 죄를 이기는 삶입니다. 본문 26절에 나답이 ‘죄중에 행했다’고 말을 합니다. 34절을 보면, 바아사도 ‘죄중에 행하였더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두사람은 죄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심갖으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가 무엇인가를 알고, 죄를 미워해야 하고, 죄를 이기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얼마나 죄를 올바르게 대처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30절을 보면, 나답왕과 그 가문이 심판받은 이유가 ‘여호와를 노엽게 한 일때문이었더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느냐에 관심을 갖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삶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섬김의 삶, 말씀에 순종하는 삶, 예배의 삶, 기도의 삶, 구제의 삶, 전도의 삶, 선교의 삶...., 을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은, 하나님의 관심거리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앙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만들어가는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별히 죄와 싸우는 삶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삶에 관심을 갖고 삶으로 칭찬받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