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4:1-31절 열왕기상 강해22
제목 :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
성도들의 삶속으로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가 대표적으로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헌금 설교이고, 둘째는, 전도하라는 설교이며, 셋째는, 회개하라는 설교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그중 하나인 ‘회개’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회개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배를 항해하는 선장이라고 가정해보십시다. 여러분이 바다를 항해하는데, 여러분의 배가 암초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십시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일까요? 그야 배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만일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 배는 파선하게 될 것이고, 목숨도 잃게 될 것입니다. 마치 회개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성도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주제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인생의 암초를 보면서도 끝까지 방향을 바꾸지 않음으로 파선하게 될 두 왕(여로보암, 르호보암)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여로보암왕과 르호보암왕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회개의 중요성을 살펴봄으로, 회개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회개하지 않는 여로보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불순종의 길을 가던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과 유다왕 르호보암 왕에 대한 소개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여로보암왕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레위인이 아닌 사람으로 제사장을 세웠습니다. 또, 절기의 날짜도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악행을 저지른 여로보암을 왕을 무명의 선지자를 통해서 경고를 하셨지만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아비야를 병들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의 경고, 회개에 대한 촉구속에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2절을 보면 회개하는 대신 아내를 변장시켜 아히야선지자를 찾아가 아이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묻게 합니다. 도움을 구하러 간 것입니다. 그러나 9-12절을 보면, 아히야선지자에게 꾸중을 듣게 되고, 결국, 아이도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제 21절부터는 유다왕 르호보암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르호보암왕 역시, 여로보암왕 만큼이나 악한 왕이었습니다. 르호보암도 온갖 우상을 만들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런 왕을 보며, 백성들도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2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애굽왕 시삭을 통해 예루살렘이 공격하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게 함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27절을 보면, 르호보암왕은 회개하는 대신 군사력을 강화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됩니다. 르호보암 왕 역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보면, 여로보암왕과 르호보암왕의 공통점을 몇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두 명의 왕 모두가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악한 왕, 범죄한 왕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이런 악행을 저지르는 여로보암왕과 르호보암왕에게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셨다는 점입니다. 즉, 여로보암왕에게는 아들의 중한 질병으로, 르호보암에게는 애굽왕 시삭의 공격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이 두 왕은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받음에고 불구하고, 전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곧 회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왕들의 잘못된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로보암왕은 자신의 아들이 병들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회개하지 않았고, 르호보암왕은 애굽의 공격을 받아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빼앗기는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끝까지 죄의 암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파선하고 만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질병, 애굽의 공격을 통해서 이 두 왕에게 죄에서 돌이키고, 회개하시를 원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잘못을 경고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오늘 본문의 경우와 같이 어떤 어려움과 아픔의 사건을 주시는 방법을 통해서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심으로 경고하십니다. 엘리제사장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 축복과 잘됨으로도 경고하십니다. 즉, 호세아시대 북왕조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복 받을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을 향한 경고였던 것입니다. 또, 사람의 입을 통해서 경고하십니다. 예를들면, 노아시대에 노아를 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또, 세례요한을 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을 통해서, 또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잘못을 지적하시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도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시고 경고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궁핍이라는 방식으로 경고하기도 하십니다. 아모스 시대에 그러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도 우리를 경고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경고하실때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상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 애착을 갖는 일, 중요하게 여기는 일..., 등에 손을 대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들이 돌이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여로보암왕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아담의 범죄도 그의 아들 아벨의 죽음이 있었고, 다윗도 그를 경고하실 때 아들의 질병과 죽음을 사용하셨습니다. 또, 애굽왕 바로를 경고할 때도 장자의 죽음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려고 우리들이 사랑하는 것, 소중히 여기는 것을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겨나는 문제들,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게 생겨나는 문제들이 있다면,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로보암왕과 르호보암왕이 하나님께 경고받음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하나님께 경고 받을만한 일은 없을까요? 만일 경고 받을 만한 일이 있다면, 여러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삶에 더 크고 강한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마치 애굽나라와 애굽왕 바로에게 더 강한 하나님의 손이 임한 것처럼) 지금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미움을 가진것, 경건생활을 하지 않은것, 어떤 잘못을 한 것, 신앙의 목표를 잘 못 설정한 것, 교회와 세상에서의 삶이 다른 것, 구별됨이 없는 것, 거룩하지 못한 것, 간절하지 못한 것, 감사하지 않는 것,.., 등 그 외에도 회개할 것은 반드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2.회개의 중요성
오늘 본문의 여로보암왕과 르호보암왕은, 특별히 여로보암왕은 이스라엘 역대 왕들중에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범한 죄가 대단히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전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왕들보다 더 악한 일을 했는대로 불구하고 모범적인 왕으로 소개되는 왕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왕입니다. 다윗은 비교적 선한 왕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가 안정을 누릴 무렵 치명적인 죄를 저지릅니다. 여러분도 잘아는 밧세바를 간음하는 사건과 그의 남편인 우리야를 살인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은 그 어느왕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을 손꼽힙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윗은 철저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회개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거룩함, 무죄함에 있는게 아니라, 회개함에 있습니다. 특별히 시51편과 시6편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진실된 회개의 사람이었는가를 잘 알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회개의 중요성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정말 중요한 신앙의 요소입니다. 왜? 중요 할까요? 여러분은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경험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설을 해야 되고 제대로 배설을 못하면 큰 병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영혼의 배설은 회개이며 회개를 못하면 큰 죄에 눌려 멸망에 이른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너무나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사람이 배설을 못하면 큰 병에 걸리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영혼의 배설인 회개를 못하면 영적으로 큰 병에 걸리고, 영적혼수상태에 빠지고, 결국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영혼의 건강을 결정하기 때문이며, 지금의 신앙의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회개는 중요합니다.
또 회개가 중요한 것은, 단지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의미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회개가 중요한 이유는, 회개없는 구원은 있을 수 없듯이, 회개없는 은혜와 회개없는 기쁨과 감격, 회개없는 성장은 결코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여로보암왕이 자신의 아들이 병에 걸리자 자신의 아내를 아히야선지자에게 보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지 못했고, 결국 아들은 죽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왕에게 은혜를 주지 않았을까요? 뉘우침,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회개 없는 하나님의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기독교초기 매우 침체되었고,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907년 기독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부흥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게 바로 회개입니다. 먼저는, 조선 사람을 무시하던 선교사들의 회개가 있었고, 교회 지도자들의 미움과 공금횡령과 온갖 죄에 대한 회개가 있었고, 성도들의 뿌리 깊은 죄에 대한 회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회개가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우리안에 더욱 부흥의 은혜를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회개없는 은혜, 회개없는 기쁨, 회개없는 부흥과 성장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침체하고, 더 이상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성장과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진정한 회개가 사라지고, 눈가리고 아웅식의 회개, 허울 뿐인 그럴듯한 회개, 눈물 몇 방울만의 회개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회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가장 최근에 하나님께 회개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회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또, 회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은혜와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의 중요성을 알고, 다윗같은 회개의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죄를 편하게 짓고 회개 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싸구려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고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간음과 살인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참다운 회개, 바르고 올바른 회개인 것입니다.
3.왜 회개하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왜?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왕이 회개하지 않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일이 죄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닐것입니다. 여로보암의 경우에 이미 무명의 젊은 선지자에게 경고를 받았기에 자신의 일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여로보암의 경우에는 공사장 감독관이었던 사람입니다. 결코 왕의 자격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10지파를 다스리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르호보암의 경우에도, 그의 아버지인 솔로몬의 범죄로, 그리고 잘못된 리더십으로 인해서 더 이상 왕의 가문을 이어갈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셔서 2지파를 르호보암에게 주었습니다. 이것 역시 큰 은혜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 두 왕이 하나님께 받은 이런 은혜와 축복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회개에 대한 마음이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 자신이 불효자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철이 들때이고,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았을 때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 죄인가를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 축복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지 못하면, 우리들이 할수 있는 신앙의 내용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만큼 우리는 신앙의 내용을 만들 수 있고, 신앙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되기를 위해서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회개의 복된 삶을 살아가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때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회개할것이 많은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매일의 기도속에 하나님께 회개의 영을 부오주시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다윗같이 위대한 신자가 될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늘 경고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경고로 끝내는 분은 아닙니다. 경고하신 대로 집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경고받을 일이 있다면,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를 통해서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새롭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회개함으로 파선하지 않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