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후6:1-10절
제목 : 이제 우리가 할 일!
성도들의 삶속으로
한국교회는 120-13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대단히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교회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교인의 숫자적인 면도 추락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신앙적인 면에서도 심각한 추락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이유를 찾는 다면, 은혜와 복은 강조했지만, 은혜와 복을 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놓쳤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3일간 은혜가운데 수련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것으로 끝난다면 우리의 모습도 한국교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은혜 받음이 끝이 아닌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가? 를 확인하고, 은혜받은 자답게 살아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먼저, 바울은 1절을 통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권면은 무엇일까요? 이 의미를 알기 위해서 본문 2절을 보아야 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하기 위해서 구약성경 사49:8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49장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사49장은 ‘여호와의 종의 노래’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야가 종으로 이 땅에 오실 것과 오셔서 이루실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을 하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고, 사람들의 죄를 깨달게 할 것이고,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런 고난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사49:8절에서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 메시야가 이 땅에 오는 날이 은혜의 때이고,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1차적인 성취는 이스라엘의 해방이고, 2차적으로는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성취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하나 묻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예언은 현재의 일일까요? 미래의 일일까요? 미래의 일입니다. 적어도 500년 뒤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예언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또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예언이 성취되는 날까지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이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는 성취된 일일까요? 여전히 미래의 일일까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입장에서 이사야선지자의 예언은 이미 성취된 일입니다.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미래적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구원안에 들어온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바울은 왜 이미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로 말미암아 구원안에 들어온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미래에 일’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을 인용하고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이미 구원받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마치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사람처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을 하면, 그들은 구원과 은혜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 꾸중하고 있는 것이며, 이제는 구원와 은혜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2.은혜받은 자의 책임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과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과연 구원과 은혜받은 자의 의무와 책임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예배, 묵상, 기도, 헌금, 봉사, 구제, 전도, 훈련..., 등 맞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가장 중요한 의무와 책임은 아닙니다. 만일 이러한 것이 구원과 은혜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의 전부였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에게 꾸중을 들을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는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꾸중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더 가장 중요한 의무와 책임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은혜받은 자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의무와 책임은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나를 고치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며 본질입니다. 이 점을 2가지 본문을 통해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롬12장을 봅시다.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롬12:1절을 ‘그러므로’ 라고 시작을 합니다. 이 말은 앞에 있는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롬11장은 어떤 이야기입니까?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이 되었고, 그러므로 롬12:1-2절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롬12:1-2절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늘 분별하라는 것이고, 그 뜻에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가라’ 는 것입니다. 이 점을 엡4:22-24절에서 더 분명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구원받은 자이며,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는 일(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 은혜받은 자의 의무와 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로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자신을 고쳐나가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성장해 가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격과 성품과 삶을 더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로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구원,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은혜를 헛되이 받은 자인 것입니다.
구원받은자, 은혜받은 자에게 요구하되는 의무와 책임 두 번째는,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은 은혜로 받은 자신의 직분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말하냐면,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아무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누군가에 상처를 주거나, 누군가에게 마음의 괴로움을 주거나, 누군가에게 고민과 갈등을 주거나, 시험을 주거나 해서 신앙에 방해를 하는 자가 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즉, 누구에게도 신앙의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자신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잘 모릅니다. 성경에도 신앙의 걸림돌과 같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마23:13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들은 종교지도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게 신앙의 걸림돌이었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악평한 10명도 신앙의 걸림돌과 같았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악평과 불신앙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올바른 신앙의 자리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신앙의 걸림돌과 같았던 사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누군가에게 신앙의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대단히 무서운 죄입니다. 마18: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짐승이 돌리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누군가의 영혼, 누군가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일이 그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더 무서운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에게도 신앙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중단하시고, 회개하시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한다는 두 번째 의미는, ‘누구에게든 디딤돌이 되겠다’ 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디딤돌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개울 중간 중간 놓여진 돌로서 개울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돕는 돌입니다. 또는, 마루 아래 놓여진 돌로서 높은 마루를 올라가기 쉽도록 돕는 돌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디딤돌과 같았던 신앙의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당시 백성들에게 큰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사무엘을 믿고 잘 따랐습니다. 얼마든지 왕이 될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왕이 될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왕으로 세워주는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사무엘은 디딤돌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또, 갈렙입니다. 갈렙은 12명의 정탐꾼 중에 한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여호수아보다도 먼저 주장한 사람입니다.(민13:30절 14:6-9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20세 이상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를 말씀하실 때에도 갈렙을 먼저 언급하셨습니다.(민14:30절)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은 더 어른인 갈렙을 리더로 세우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를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갈렙은 섭섭할 수도 있었고, 시기심이 들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번도 여호수아의 리더십에 도전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렙은 여호수아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할수 있도록 항상 앞장서서 도왔습니다. 즉, 디딤돌의 역할을 잘한 것입니다. 또,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의 귀한 일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바울이 믿는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을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교회의 리더로 세웠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크게 도왔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디딤돌이 되어준 것입니다. 이렇듯 사울과 다윗 뒤에는 사무엘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여호수아 뒤에는 갈렙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바울 뒤에는 바나바라는 디딤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기까지 여러분에게도 많은 디딤돌 역할을 해준 신앙의 은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은혜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도 서로에게 신앙의 디딤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과 은혜받은자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여러분은 섬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들보다 일을 좀 더 하는 것,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이란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섬김입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스스로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진정한 섬김입니까? 지금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 되고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이상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더 세워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디딤돌이 됨으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게 되고,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지는 열매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제가지 있었던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은혜를 힘입어 나를 더욱 고치고 더 온전하게 만들어 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누군가에게 신앙의 디딤돌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놓친다면, 이미 여러 차례 말씀을 드린대로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련회 기간 은혜 받은 성도 여러분! 자신을 더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고치고 만들고 변화시켜 가십시오! 그래서 누군가에게 누구에게라도 더 견고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수련회기간 은혜를 주신 이유입니다.
3.디딤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그렇다면, 우리들이 서로의 디딤돌이 되어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희생과 손해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이제 4절 이하를 봅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에서도’ 라고 말합니다.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바울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 곧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기 위해서 행했던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희생을 선택하고, 손해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듬돌이 되기 위해서 항상 손해와 희생을 선택했던 사람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고전8장의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의 문제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우상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거리낌 없이 먹는 믿음의 담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거리낌으로 인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우상의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없다고 비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아주 유명한 선언을 하게 됩니다. 바로 고전8:13절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형제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고, 디딤돌이 되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울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바울에게는 희생이고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희생과 손해의 선택이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디딤돌이 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항상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 손해를 선택하고 희생을 선택했습니다. 또, 복음성가 가사 중에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수 없을까?’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삶, 그리고 사도 바울의 신앙과 삶을 보면서, 참 부러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손해와 희생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신앙과 삶을 부러워 하면서도 손해와 희생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뭘 부러워 하는걸까요? 실력, 능력, 유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해와 희생없이 예수님과 바울과 같은 삶, 그리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 가능할까요? 결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디딤돌이 되기 위해 손해보고 있는게 있습니까? 희생하는게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이 희생과 손해를 선택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구원은 취소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은 결코 지옥에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희생과 손해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심겨지는 일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희생과 손해는 필수선택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자격없는 우리들에게 구원과 풍성한 은혜와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로 끝나면 안됩니다. 구원과 은혜받은 자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즉, 나를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는 자로 고치고 만들고 완성하고, 다른이에게 신앙의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희생과 손해가 있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은혜받은 자답게 나와 다른 이를 세우는 삶을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