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계2:1-7절 요한계시록 강해8
제목 : 열심 그러나 사랑도!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 말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음식을 남기면 안되니까 억지로라도 다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맞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됩니다.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억지로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배탈이 납니다. 이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경우에,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또, 이런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본말전도(本末顚倒)’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뿌리와 잎 사귀가 뒤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즉, 어떤 일을 할 때 일의 경중이 뒤바뀐 모습을 가리킵니다.(주객전도) 더 쉽게 말하면, 작고 사고한 일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사용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고, 덜 중요한 것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에베소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모습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모습이 아닌지, 일의 경중이 뒤바뀐 자의 모습은 아닌지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에베소교회를 향한 칭찬
먼저, 에베소교회가 있었던 에베소 지역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는 오늘날의 터키지역으로, 당시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항구도시로서 정치 문화, 산업, 금융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특별히 이곳은 로마황제 숭배와 아데미우상(풍요와 다산의 신)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는 이 지역에 바울이 1차전도 여행 가운데 복음을 전함으로 교회를 세우고, 바울이 대략 1년 6개월간 목회를 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떠난 후, 디모데가 목회를 했고, 나중에는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요한이 목회를 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에베소교회를 향한 칭찬과 꾸중이 소개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첫 번째로, 묵상할 것은, “에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에베소 교회는 ‘행함과 실천’다르게 말하면 ‘행위의 열심’이 있었던 교회라고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말뿐인 성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행함과 실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즉,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메시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행함과 실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함이, 단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척’ 또는, ‘적당히나 대충 대충’의 행함이 아니었습니다. 2절을 보면, 에베소성도들의 행함을 말할 때,‘수고와’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수고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엇인가를 행할때 적당히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무엇인가를 행할 때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하고, 부지런하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서는 ‘게으르지 아니했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대단한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에베소 성도들의 열심을 가진 행함이, 한 두 번 하고 그만두는 작심삼일 같은 행함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2절에서 ‘네 인내를 알고’ 3절에 ‘견디고’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가난속에서도, 박해속에서도, 유혹속에서도, 방해와 어려움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실력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실력이란 한 두 번 열심히 잘 하는게 아닙니다. 한결같은 것이 신앙의 실력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좋은 때 잘 될 때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 때 괴로울 때에도 잘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실력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결같음이라는 신앙의 실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아무것도 안하고, 열심히 안하는 한결같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가치있는 것은, 에베소 성도들의 수고와 인내의 행함의 이유가 자기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명예를 얻고,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3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곧 주님의 기쁨과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한 것이라고 말을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점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신앙생활 하다보면,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6장에 나오는,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나팔을 불며 구제한 사람들, 금식하는 것을 얼굴에 티내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큰 칭찬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순수한 의도를 상실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가, 결국,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을 이유와 목적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한결같이 자신이 아닌, 주님을 위해 행위의 열심을 가진 것입니다.
특별히 2절을 보면, 에베소 성도들이 칭찬받는 또 한가지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2절에 ‘악한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단자들의 주장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많은 거짓 가르침으로 부터 진리를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 지역은 항구도시로서 대단히 타락하고, 매우 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단자들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6절을 보면, ‘니골라당’ 이 소개됩니다. 니골라당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니골라당이란 당시 에베소교회를 공격하던 주된 이단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니골라당의 이단적인 주장과 미혹으로 인해서 진리를 놓치지 않았고,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리어 니골라당의 주장을 미워했습니다. 바로 이점을 크게 칭찬하고 계신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말뿐이지 않고, 신앙의 행함에 열심을 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신앙의 모습이 한결같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회를 공격하는 이단의 사상, 특별히 교회안에 침투한 이단의 거짓으로부터 진리를 지켜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자신을 점검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행함과 실천이 있습니까? 혹시, 지식적인 신앙의 모습, 말뿐인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실천하지 않는 신앙의 참다운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이란 이론이 아닌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은 신앙생활에 한결같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상황에 따라서,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신앙의 실력은 한결같음입니다. 또, 여러분은 진리를 지키고 계십니까? 혹시, 사람들의 주장이나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더 깨달고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시를 바랍니다.
2.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에베소교회와 성도들이 칭찬만 받는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책망을 하십니다. 4절을 보면,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사도요한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책망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지고, 양육받았고, 디모데에 의해 돌봄을 받았고, 특별히 사랑의 사도인 요한이 얼마전까지 담임을 했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행위 곧 겉모습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보시고,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렸다는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3절을 보면, 에베소교회와 성도들이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누구를 위함이었다고 말을 합니까? 바로 ‘내 이름을 위하여’ 즉, 주님을 위함이고, 더 나가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들은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면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흔히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처음 했을 때의 다양한 감정들을 신앙의 첫사랑이라고 말을 합니다. 혹시 에베소 교회가 그러한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말일까요? 물론, 그랬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려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의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주님이 꾸중하시는, 처음사랑을 버렸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에베소 지역에는 많은 이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단자들이 처음에는 교회를 향해 공격과 대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안에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신천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요즘 신천지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춥니다. 그리고 교회를 찾아 들어갑니다. 그리고 보통의 성도들과 똑같이 예배를 함께 드리고, 제자훈련도 참석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회안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신뢰를 얻고, 인정을 받게 되면, 사람들을 미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을 신천지를 끌어가든가, 아니면 교회의 목회자에게 불만을 갖게 해서 쫓아낸후 신천지 교회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천지의 침투에 많은 교회들이 큰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베소교회에도 니골라당의 침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만 다행인 것은, 에베소교회가 니골라당의 거짓된 가르침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고, 그들을 색출했고,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그 결과 진리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잘 한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이 칭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공격에서도 진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점을 오늘날 신천지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신천지로 인해서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교단 차원해서, 신천지 출입금지 스티커도 발부했고, 신천지를 사전에 막기 위한 법적인 조항들도 명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 이단자들의 특징에 대해서도 공지했고, 또한 신천지가 의심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이렇듯 최대한 신천지의 침투를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로 부터 교회를 지키고, 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어떤 일이 생기기 시작했냐면,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한 의심의 눈빛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누군가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그 사람이 신천지 사람은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 열심히 하면,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더 더욱 신천지가 아닌가를 의심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도들 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성도가 오게 되면 목회자들도 신천지가 아닌가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됩니다.(기도안하고 눈뜨거운 본다. 확인해봐라) 결국, 신천지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성도를 지키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좋은 일이지만, 그로 인해서 서로에 대해 의심하게 되고, 경계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을 놓쳐버리게 된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교회가 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 특별히 니골라당이라는 이단으로 부터 교회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즉, 그들은 진리를 지켰을 모르지만,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진리를 지켰을지 모르지만, 십자가는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서교회를 향한 주님의 꾸중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놓치는 문제가 에베소교회만의 문제이거나, 진리와 이단에만 국한 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먼저, 사랑을 놓치는 문제는 에베소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격는 문제입니다. 예를들면, 고린도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성경적인 지식이 대단히 탁월했던 교회입니다. 특별히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 그리고 우상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신문화권에 살고 있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라는 지식과 진리를 지킨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진리를 지키는 일을 잘했지만, 그 일을 하는 가운데 사랑을 놓쳤습니다. 즉, 아직 신앙이 어린 성도들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일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또, 사랑을 놓치는 문제는 진리와 이단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보십시오! 예루살렘교회는 구제 사역을 대단히 중요한 사역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 앞에 두고, 교회는 그것을 가지고 구제의 사역에 열심을 냈습니다. 참 잘 한 일입니다. 그러나 구제 사역에 집중하고 열심을 내는 가운데 어떤 일이 생기냐면, 히브리파과부와 헬라파 과부 사이에 갈등과 원망의 일이 생기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루살렘교회 구제 사역을 하는 가운데 사랑은 놓치고 말았다는 말이 됩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에게는 신앙의 어떤 일을 할 때, 사랑을 놓치고, 외면하는 경우는 없을까요?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니 아주 많을 겁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열심이 있는 모든 일 가운데 사랑을 놓치게 되는 실수 하게 됩니다. 예를들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이 남달랐습니다. 특별히 안식일에 대한 열심이 남달랐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배고파 이삭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제자들을 비난했고, 안식일에 불치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사랑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다보면 사랑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예배의 일, 기도하는 일.., 등 어떤 일이든 열심을 내다보면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오! 열심을 내면서 사랑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특별히 지금 우리는 수련회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 수련회에 가서도 여러분은 열심히 주방의 일도, 프로그램도 할 것입니다. 사랑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에베소교회를 향한 꾸중은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꾸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5절에 회개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3.사랑을 놓치면 안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들이 신앙의 열심을 가질 때 사랑을 놓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는, 사랑이 모든 일의 완성 곧 정답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전13:1-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을 합니다. 이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방언이 있었고, 천사의 말이 있었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었고, 모든 비밀과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이 있었고, 한계 없는 구제가 있었고, 멈추지 않는 헌신이라는 신앙의 내용과 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알 수 있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방언, 예언, 지식, 구제, 헌신..., 등 신앙의 다양한 내용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조금도 칭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리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아무것도 아니요’‘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꾸중 하듯이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신앙의 다양한 내용들에 대해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칭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방언이 하나님이 의도한 방언이 아니고, 그들이 가진 예언이 하나님이 의도한 예언이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이 하나님이 의도한 지식이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구제도 헌신도 하나님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그들이 가지고 행하는 신앙의 다양한 열심있는 행위들이 정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가진 신앙의 행위들이 정답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신앙의 내용과 행위들이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목적하신 사랑이 이유이거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놓치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그것이 될수 없고, 따라서 정답, 완성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을 붙들 때,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루살렘교회와 성도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그들은 미움과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것을 빼앗기거나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열심과 더불어 사랑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다. 여러분은 신앙생활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기쁨과 즐거움이 없을까요? 여러 가지로 이유를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이유는 사랑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맞는 것 같습니까? 틀린 것 같습니까? 맞습니다. 비록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내고 있지만,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것은 사랑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다시 사랑을 붙드십시오! 그래서 기쁘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주님은 열심 있는 행위를 가진, 특별히 진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낸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열심 때문에 사랑을 놓쳐버린 점을 꾸중하셨습니다. 즉, 하나만 알고 둘은 모름을 꾸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 모두는 에베소교회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성도가 아니라, 하나도 알도 둘도 아는, 더욱 신앙의 열심을 내고, 그러나 사랑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