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계2:1-7절 요한계시록 강해9
제목 : 꾸중이 필요한 교회!
들어가는 말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우는 찰스 스펄전목사님에게 어느날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완전한 교회를 찾기 위해 여러 교회를 찾아다녔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런던 어디에 완전한 교회가 있습니까? 알려주시면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이 청년의 말을 듣던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도 아직 완전한 교회를 찾지 못했다네, 찾으면 알려주게’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더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완전한 교회를 찾거든 자네는 그 교회에 나가지 말게..., 자네가 나가는 그 날부터 그 교회는 더 이상 완전한 교회가 아닐 걸세~’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 중에는 결코 완전한 교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소아시아의 7교회도 완전한 교회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하지 않은 교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계2-3장 전체적으로 알아야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항상 사랑이 목적입니다.
계2-3장은 소아시아 7교회에 주님께서 보내신 편지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 전체가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계2-3장은 각 교회에 대한 권면을 목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차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바와 같이 소아시아에는 7개의 교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계시록에서 소개하는 7개의 교회 말고도, 소아시아에는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도 교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소아시아 주변에 갈라디아,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의 여러 개의 교회가 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교회로 소개하는 것은, 단지 7교회의 교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소아시아 전 지역에 있던 교회를 포함하고, 더나가서 이 땅에 세워진, 그리고 세워질 모든 교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결국, 계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은 언급된 교회에만 국한되거나, 7교회에만 국한된 내용도 아닌, 이 땅의 모든 교회에 주님이 보내신 편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나가서 우리 사랑하는교회에 보내신 편지라는 점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7교회에 보낸 편지를 묵상하면서, 그 때, 그 교회는 그랬구나로 그치면 안되고, 우리 사랑하는교회, 그리고 우리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먼저, 7교회에 보낸 편지의 구성요소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7교회에 보낸 편지의 구성요소는 4가지입니다. 칭찬, 책망, 회개의 촉구, 열심에 대한 촉구를 구성 요소로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예로들면, 2-3절을 보면, 칭찬을 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또, 6절에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라고 칭찬을 합니다. 그러나 4절을 보면,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면서 5절을 보면,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고 회개를 촉구 및 경고를 합니다. 그러면서 7절을 보면, 열심 또는 충성에 대해 권면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고 열심을 내고 충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7교회에 보내진 편지는, 칭찬, 꾸중, 회개, 열심에 대한 촉구를 구성요소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책망과 회개에 대한 촉구가 없고,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이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주님께서 7교회에 편지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혹시 각 교회를 평가하시기 위함일까요? 점수를 매기시기 위함일까요? 그래서 점수에 따라서 교회를 유지하거나 폐쇄하시려는 것일까요? 물론, 칭찬, 책망만을 보면, 주님이 교회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칭찬과 책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대한 촉구와 열심과 충성에 대한 촉구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주님이 교회를 평가하거나 점수를 매기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7교회에 편지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이 칭찬만 받은 교회이든, 아니면,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은 교회이든, 아니면 책망만 받은 교회이든지간 모든 교회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계2:5절을 보면,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라’고 경고합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더 교회가 아니게 하겠다는 말이고, 실감나게 말하면, 교회 문을 닫겠다는 말입니다. 또, 계2:16절을 보면, 버가모교회를 향해서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주님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원수 취급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계2:22-23절을 보면, 두아디라교회를 향해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서운 결과를 맞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계3:3절을 보면, 사데교회를 향해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심판하여 멸망시키겠다는 말입니다. 또, 계3:16절을 보면,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서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고 말을 합니다. 내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한가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정말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일까요? 회개하지 않으면 정말 교회와 싸우시겠다는 것인가요? 회개하지 않으면 정말 무서운 결과를 맞게 하시겠다는 말일까요? 회개하지 않으면 정말 심판해서 멸망시키겠다는 말일까요? 회개하지 않으면 정말 토해서 내 버리시겠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자신이 택한 나라와 개인을 버리거나 관계를 끊어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각 교회들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포기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들이 호세아서를 묵상할 때, 여러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해서 무시 무시한 심판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심판하셨고,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심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습니까? 정말 그들을 심판해서 망하게 하시는 것이 목적입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북왕조 이스라엘이 어떠하든지 끝까지 포기할 수 없고, 버릴 수 없다는 말이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진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놓을 수 없고, 포기할 수 없고,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도 하고, 꾸중도 하고, 회개와 충성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칭찬도 하고, 꾸중도 하고, 잘못을 뉘우치라고 하고, 잘 해보자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인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도 교회를 꾸중하시고 권면하시는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사랑을 이유로 삼고 사랑을 목적으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을 주셨습니까? 사랑이 이유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과 역경을 주셨습니까? 그것 역시 사랑이 이유이고 사랑이 목적입니다. 그 밖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실패를 격게 하시고, 기다리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시는 모든 일 중에 사랑이 이유가 아니가, 사랑이 목적이 아닌 것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해도 좋은 순간이 없고, 불평해도 괜찮은 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순간을 만나고, 어떤 일을 만나고, 어떤 결과를 만났던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이 이유이고, 목적임을 확신하고, 위로와 힘을 얻는 또는, 더 열심과 충성을 다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2.그러나 교회는 불완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께서 7교회를 칭찬하시고 꾸중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시고, 열심과 충성을 요구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교회의 수준과 상관없이 사랑하고 계시다는 점, 모든 것을 사랑이 이유와 목적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세우시고, 주님이 사랑하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이지만 그럼에도 완전하지 않고, 부족한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주님께서 각 교회를 꾸중하시고, 회개를 촉구하는 모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꾸중하십니까? 불완전하기 때문이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책망이나 회개에 대한 촉구가 없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완전한 교회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계시록에서 소개되지 않은 빌립보교회는 완전한 교회였을까요? 아닙니다. 갈등과 분열이 심각했던 교회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완전한 교회였을까요? 아닙니다. 복음에서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일들이 있었고, 비난과 정죄가 난무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완전한 교회였을까요? 아닙니다. 분열, 음행, 교만, 차별, 우상숭배가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곧 예루살렘교회는 어떤가요? 먼저, 예루살렘교회는 어떤 교회입니다. 최초의 교회이며, 가장 성령 충만한 교회였고, 가장 교회 다운 교회였습니다. 예를들면, 복음 증거의 사명도 잘 감당했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날마다 모이기에 힘썼고, 그 결과 날마다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는 누구입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한 12명의 사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며,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으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며, 온갖 기적과 표적을 일으켰던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권위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참 대단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모든 시대 교회들에게 모범이 되고 샘플이 될만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외쳤던 구호가 무엇입니까?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였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쯤 되면 완전한 교회 아닙니까? 네 아닙니다. 예루살렘교회 조차 결코 완전한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들면, 행6장을 보면, 구제의 문제로 인해서 히브리파 신자들과 헬라파 신자들 간에 심각한 다툼과 갈등과 분열이 생겼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외일까요?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 중에도 완전한 교회는 한곳도 없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사역하던 교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작게는 100여명이 모였고, 많게는 1000여명 이상이 모이는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작든, 크던 모든 교회는 다 불완전했습니다. 그로인해서 교회안에 문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음행의 문제, 외도의 문제, 윤리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 소송의 문제, 향락의 문제, 욕심의 문제, 권력의 문제, 그리고 가장 많았던 것은 다툼과 분쟁의 문제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로인한 문제와 어려움, 속상함이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이렇듯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정의해야 하고,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이 세상에는 완전한 교회는 없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회의 구성 요소인 성도들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성도가 없습니다. 예를들면, 바울과 바나바는 완전한 성도였을까요? 아닙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크게 싸우고, 서로 갈라서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완전한 성도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회심한 바울을 의심했고,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들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 회의가 열린 것 아닙니까?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성도는 빌립보교회 지도자들은 완전한 신자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서로 불화했고, 그 결과 교회적인 분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의인이며 성도라는 영광스러운 명분을 얻었지만, 여전히 불완전하고, 연약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완전한 교회, 완전한 성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시험에 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왜 이래? 아무게 집사, 권사, 목사가 왜 그래? 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리는 늘 교회의 불완전함, 성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서 시험에 빠지고, 힘들어 하고, 신앙의 어려움을 격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마십시오! 그리고 꼭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든 교회든 영적인 신생아로 태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런 말이 성경에 어디에 있냐고요? 고후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기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존재가 고쳐지고 수리되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옛사람과 전혀 연속성이 없는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새 사람이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의와 진리와 거룩함 곧 완전하지 않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적인 신생아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와 진리와 거룩함을 나타낼만한 수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갓태어난 아기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구실을 잘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교회의 모습 또는 누군가의 부족함과 잘못된 모습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3.더 나은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교회가 불완전 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그 사실을 인정하라고? 또는 이미 언급한대로 단순히 시험에 들지 말라는 점을 말하기 위함일까요?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더 나은 교회로 만들어 가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더 교회로서 완성된 모습을 갖추어 가고, 더 교회 다운 교회가 되어 갈 것을 권면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더 나은 교회가 되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필요하고, 서로의 짐을 짊어져 줌이 필요하고, 예배가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하고, 양육이 필요하고, 칭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더욱 필요한 것이 있다면, ‘꾸중’ 이 필요합니다. 우리 기독교 헌법 가운데 권징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즉, 성도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난 일을 하거나, 교회의 법을 지키기 않을 때, 교회가 수찬금지, 직분정지, 그리고 출교까지 내리게 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 권징이라는 교리가 시행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제도적 여건상 권징을 시행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권징 곧 꾸중이 시행되지 않은 것이 결국은 한국교회를 병들게 했으며, 교회와 성도들의 성숙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정당한 권징 곧 꾸중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 교회가 꾸중이 시행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해주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저는 여러분이 꾸중을 받을 줄 아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하는 교회가 더 완전함을 갖추어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향해 그리고 모든 시대의 교회들을 향해 꾸중하시는 것은 교회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불완전함으로 인해서 시험에 드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정당한 꾸중이 시행되고, 받을 줄 아는 교회가 되어 금촛대라는 명분에 걸맞는 교회로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