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계1:10-20절 요한계시록 강해8
제목 : 교회의 특권과 책임!
들어가는 말
어느 동물원에 엄마 낙타와 아기 낙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기낙타가 엄마 낙타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 왜 우린 큰 발가락만 3개가 있어요? 엄마 낙타는 그건 말이야 우리가 사막의 모래를 잘 걷기 위해서야, 또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엄마 우리는 왜 눈썹이 이렇게 길어요? 엄마 낙타는 그건 말이야 사막의 모래바람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또 질문을 했습니다. 엄마 우리는 왜 등에 혹이 나 있어요? 그건 말이야 물이 없는 사막을 여행하기 위해서란다. 이런 궁금증이 풀린 아기 낙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 왜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해요?’이 이야기는 동물원의 낙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라고 여겨집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땅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큰 발가락, 긴 눈썹, 등의 혹으로 비유 될 만한 많은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책임과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특권에만 관심을 갖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된 특권과 사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특권이 무엇이며,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고, 특별히 교회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교회(신자)의 특권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 요한이 가장 먼저 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재앙, 전쟁, 심판, 천상..., 아닙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요한이 본 예수님은 사도 요한이 이전에 보았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와 신자들에게 예수님처럼 고난이나 박해가 최후의 운명이 아닌, 승리가 최후의 운명임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온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교회와 신자를 붙잡고 계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에서 말씀하셨는가? 에 대해서 묵상함으로 교훈을 얻으려고 합니다. 먼저,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에게 말씀하신 때가 언제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이 언제입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주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금요일 해질 무렵에서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인 주일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주일(일요일)에 예배드립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함여한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좀 쉽게 말하면,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점을 공표하는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확장해서 설명하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가치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르기로 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또는 시간 되면 드리고 안되면 안드리는 정도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가벼운 선택사항 정도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주일을 생명처럼 여기고, 주일을 가장 중요한 날로 여기고, 주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억울해 하지 마시고, 도리어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말씀을 하셨습니까? 12-13절을 보면, ‘7금촛대사이’에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을 보면, ‘7촛대는 교회니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당시 7교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갈라디아,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 그럼에도 7교회라고 하는 것은, 모든 교회를 염두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예수님께서 금촛대로 묘사되는 교회 가운데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금 촛대로 비유되는 교회 가운데에서 말씀하고 계신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물론, 그것은 로마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 위로를 주고, 격려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와 격려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 점을 몇가지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교회를 무엇으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바로 ‘금촛대’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냥 촛대가 아니라 금촛대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금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순결하고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당시 교회는 정말 순결하고 거룩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계2-3장을 보면, 소아시아 7교회에 대한 소개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보시면 2교회(서머나, 빌라델비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꾸중을 받고 있습니다. 금촛대라는 호칭을 듣기에 부적합한 교회입니다. 적어도 5개의 교회를 그렇습니다. 그런데 5개의 금촛대라고 말하지 않고, 7금촛대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이 7금촛대라는 말속에는 꾸중을 들은 5개의 교회, 특별히 칭찬도 없이 꾸중만 들은 라오디게아교회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칭찬만 받은 2개의 교회 역시 금촛대로 호칭 될 만한 교회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음주에 살펴보겠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중에는 완전한 교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교회를 금촛대라고 호칭하는 것 그 자체가 영광이고 대단한 특권인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 가운데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교회와 변함없이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 역시 놀라운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늘 한결같지 못하고, 너무 쉽게 세상에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계2장에서 나오는 에베소교회를 향한 꾸중이 무엇입니까? 2:4절을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입니다. 여러분 에베소교회는 어떤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이며, 디모데가 목회했던 곳이고, 무엇보다 사랑의 사도인 사도요한이 목회했던 곳입니다. 그러기에 에베소교회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세상의 도전으로 인해서 사랑을 잃게 되었습니다. 한결같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모습만이 아니지 지금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계3장에 나오는 사데교회는 ‘죽은 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꾸중합니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지어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놓치고, 한결 같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 역시 과거의 모습만이 아니지 지금 현재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늘 한결같이 변함없이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교회를 금촛대라고 호칭하는 것 그 자체가 영광이고 대단한 특권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교회 가운데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서 일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교회들과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아주 중요한 원칙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엡5:23절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라고 말을 하고, 골1:24절에서는 교회를 ‘그의 몸 된 교회’ 라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 역시 대단한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리고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교회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신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고 영광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교회를 금촛대라고 호칭하는 것 그 자체가 영광이고 대단한 특권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당시 교회들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당시 교회들에게 주어진 모든 특권이 오늘날에고 동일하게 주어졌다는 점입니다. 즉, 오늘날의 흠많은 교회들을 금촛대로 여기시고, 교회답지 못하고 한결 같지 못한 교회와 함께 하시고,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 역시 동일한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만 특권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놀랍고 영광스러운 특권들이 많이 주어졌습니다. 예를들면, 의인이라는 호칭은 대단한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의인이라는 호칭을 듣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며, 도리어 의인이라는 호칭보다는 죄인이라는 호칭을 듣기에 더 적합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의인이라고 여겨주십니다. 정말 어마 어마한 특권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어마 어마한 특권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 역시 어마 어마한 특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 역시 어마 어마한 특권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들이 하나님께 받은 특권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마 어마한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그 특권은 기쁨으로 누리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2.교회(신자)의 책임과 사명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특권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 특권을 근거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도 주셨습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교회를 무엇으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바로 ‘금 촛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교회를 촛대로 묘사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신자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와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촛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촛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어 밝혀주는 역할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시대의 교회와 신자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고 사명이며, 세상에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빛을 비추어야 합니까? 첫째, 교회는 올바른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즉,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가 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으면 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고, 영국입니다. 이 나라는 찰스 스펄전, 조지 휫필드, 마틴 루터, 이숍 템플, 존 오웬...등과 같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가들이 살던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가 술집이 되고, 교회가 클럽이 되고, 교회가 팔려가고....,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교회에서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도 그렇게 되어 갑니다. 교회가 이단들에게 팔려가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설교가 형식이 되고, 설교가 성도들의 재미와 흥미에 맞춰지고, 설교에 복만 말하고, 더 심각한 문제는 설교의 주된 목적중 하나인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성도들의 삶을 바꿀 것을 말하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불이 꺼진 촛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바랍니다.
둘째,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성경읽고, 기도하는 것, 전도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더 근본적인 모습은, 세상사람들에게 정답을 보여주는 삶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삶, 부모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삶, 가정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삶,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삶, 남편의 모습, 아내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삶, 이처럼 모든 것에 정답을 보여줄수 있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우리들이 살아갈 때, 우리는 빛을 비추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이 있는 삶, 정답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러기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운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정답이 되는 삶, 빛을 비추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교회와 신자들은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책임과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그러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 되어야 하고, 갖추어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함’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촛대를 금(12, 20절)으로 된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면 금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쌈입니까? 거룩과 순결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비추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거룩이 무엇입니까? 거룩이란 말을 쉽게 말하면, 구별됨 곧 다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창조주와 피조물이 다른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핵심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즉, 세상의 공동체와 조직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조직체는 계급과 명령으로 움직이고, 이익을 목적한 모입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는 공동체입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거룩해야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항상 자기 사랑과 자기 유익을 목적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목적합니다. 이러한 거룩함을 갖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금 촛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특권과 책임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 입니다.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로마로부터 대대적인 박해를 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참 너무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전혀 너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이미 얼마든지 책임과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비록 당시 교회와 신자들이 많은 고난과 박해를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과 사명을 말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특권만 가지고는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권과 책임을 함께 붙잡아야 올바르고, 건강하고,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에 성공했을까요? 실패했을까요? 실패했습니다. 이 점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남유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 사건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신앙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율법을 버리고, 제사를 안드리고, 예배를 안드렸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은 율법도, 제사도, 예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신앙에 실패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식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특권의식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정말 대단한 특권입니다. 왭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받을 때, 그들은 강대국이거나, 뭔가 대단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애굽이라는 나라의 노예민족이었습니다. 그런 노예민족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대단히 큰 특권입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점이 특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어마 어마한 특권을 주신 이유 곧 특권을 주시면서 함께 맡기신 책임 또는 사명이라는 것을 외면하고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대로 말한다면, 열방에 촛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특권만 붙잡았지 책임과 사명을 외면하고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신앙이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이 점은 바리새인들의 신앙의 실패에서도 찾을수 있고, 또한 우리의 모습속에서도 찾을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이 강해지지 못하고, 더 성숙하고 더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양한 특권만 생각하고 책임과 사명은 외면하고 놓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고, 여러분이 특권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도 감당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과 상태가 이해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회와 신자는 어머 어마한 특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특권으로 인해서 늘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특권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특권을 주시면서 함께 주신 책임과 사명도 붙들어야 합니다. 즉, 세상에서 촛대가 되는 책임과 사명입니다. 이것을 위해 교회와 신자들은 항상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특권과 책임을 함께 붙들게 됨으로 더욱 능력있는 신앙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