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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환난 그리고 인내! (요한계시록강해6 )
 본문말씀 : 계1:9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7.3
조회 : 9,619   추천 : 0  
본문 : 계1:9절   요한계시록강해6 
제목 : 환난 그리고 인내!   

  들어가는 말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물건을 갖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당연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큐티하는 것, 감사하는 것, 순종하는 것, 전도하는 것..., 등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것들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또, 한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난이 있는 삶’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환난이 있는 삶이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삶인가를 확인하고, 환난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환난 가운데 우리들이 어떤 자세를 갖어야 하는가? 를 묵상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환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요한이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를 합니까? 9절을 보면, ‘너희의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 라고 소개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 요한 자신도, 지금 소아시아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환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환난을 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계속해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체포되어, 밧모섬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유배생활, 곧 환난을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사도요한이 자신도 환난을 당하고 있다고, 소아시아의 성도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 이라는 점을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소아시아의 성도들은 로마황제숭배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로마로부터 대대적인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빼앗기고, 어떤 사람은 고문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권이 박탈 당해 상거래를 할 수 없었고,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어떤 사람은 환난을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사를 가야했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갇히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고..., 이런 엄청난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가 그리스도인들이 나쁜 짓을 해서 당하는 환난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들은 믿음과 신앙을 지키다가 환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왜 우리들이 환난을 당하는가? 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자신을 포함해 모든 신자들이 환난을 당하는 일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 도리어 당연한 일임을 말하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신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이유로 환난’은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유대 땅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당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바로 ‘환난’입니다. 더 풀어서 말하면, 반대, 미움, 공격, 배신, 고통, 시련, 낙심, 두렴..., 등을 당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사도가 된 이후로 줄 곧 환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와같이 환난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라는 특별한 직무, 또는 선교라는 특수한 임무 때문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바울과 같이 사도도 아니고, 바울과 같이 특별한 사명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성경에 소개되는 많은 교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들면, 갈라디아,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 그렇습니다. 모든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난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계7:13절을 보면, 144,000명을 ‘큰 환난에서 나온 자’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 144,000명은 누구입니까? 구약, 신약 모든 시대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총수를 상징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144,000명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즉, 전 시대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고,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디에서 나온 자라고 말합니까? ‘큰 환난에서 나온 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4:12-13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그리스도인이 화난을 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자들에게 환난이 당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첫째로, 우리의 구주이시며 왕이신 예수님께서 환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께서 환난을 당하셨기에 그분을 따라가는 우리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세상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한 자 – 예수 믿기로 작정한 것이 이러한 의미). 그래서 사도요한은 환난 다음에 ‘나라’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나라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3: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환난을 당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 또는 하나님 편에 서기로 한 사람이란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다르게 살기로 작정한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든지 정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미워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서로를 미워하고 비난을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겸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대단히 교만해서 늘 자신이 최고라고 말을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원망과 불평속이 많습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익을 따르지 않고 가치를 따릅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치보다는 이익을 따라갑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은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험담을 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천국)을 얻는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삶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이 다른 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결국, 세상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세상은 자신의 잘못을 보고, 자신의 허물이 들어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소아시아의 성도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이제 더 중요한 한가지 질문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는 환난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신앙과 믿음의 이유로 환란, 곧 핍박이나 박해를 받냐! 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네 물론, 초대교회시대나, 일제시대, 6.25때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죽임을 당하고, 직장을 잃고, 매를 맞고, 고초를 당하는 일은 적어도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 땅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자 들에게 환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환난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움과 괴롬, 억울함, 손해입니다. 그렇습니다. 옛날과 같은 그런 환난은 아니지만, 미움이라는 환난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그리스도인으서 회식자리에서 술과 향락을 거절한다면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업하면서 뇌물과 청탁을 하지 않는다면, 또 제사때 신앙의 이유로 절을 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든지 정직하고 청념하다면..., 그래도 정말 손해와 억울함, 미움받음, 반대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여러분을 증오할 것이고, 욕할것이고, 미워할 것이고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딤후3: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고 말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에게 환난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간단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복을 받는 수단이나, 어떤 고통과 환난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참 다운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환난을 당연한 것을 받아드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환란은 아니라도 미움과 억울함, 손해, 불이익을 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물론, 여러분이 뭔가를 잘못해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누군가에게 말을 함부로 해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지혜없이 행동함으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못해서 당하는 미움 말고, 또, 자신의 이익만 챙기다가 당하는 미움 말고요! 바울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정말 144,000명답게, 흰옷입은자 답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면서 환란을 느끼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때문에 미움을 당하십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 때문에 손해와 불이익을 당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이런 삶이 없다면, 여러분은 예수를 믿으면서 그렇게 살겠다고 했던 서약을 어기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삶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를 놓치고, 기도를 놓치고, 성경을 놓치는 것만 큼이나 너무나 당연한 삶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2.환난은 유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환난을 당연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신앙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또, 세상사람들이 격는 어려움 곧, 가난, 실패, 질병, 역경..., 등의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됨의 완성을 위함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를 성화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여러 가지로 환난을 당하고 있는 소아시아의 성도들에게 주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즉, 지금 성도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이 결코 손해보는게 아니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유익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시련, 환난..., 이것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없고, 그것들을 당하는 순간에는 참 힘들고 괴로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순간들이 결코 우리의 신앙에 손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조금만 성경의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금방알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욥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10자녀를 한날 잃고, 전 재산도 한날에 잃고, 악창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리고, 아내가 집을 떠나고, 친구들이 와서 죄인이기 때문에 당한 일이라고 정죄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시간들을 격고난 다음 욥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욥42: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또, 요셉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노예생활 가운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겠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을 통과한후 그는 애굽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창50:20절에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 외에도 다윗, 아브라함, 야곱, 모세, 다니엘, 요나...., 등이 고난과 환난, 시련을 통해서 신앙의 성장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과 시련을 통해 믿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유와 목적과 뜻으로 삼고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환난이 당연한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지금 그 정도의 신앙을 갖게 된 근거가 무엇입니까? 고난이고, 시련이고, 환난이고, 눈물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간절해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순간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격고한 후에 우리의 신앙은 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1:2-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환난, 어떤 어려움을 격고 계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에게 손해되는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유익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선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완성되어져 갈 것입니다. 

  3.인내하십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환난의 당연함과 환난의 유익까지 묵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환난 가운데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사도요한은 9절에서 ‘참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인내를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인내가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적으로 인내는,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 이라고 말을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내에 대해 착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갖을 수 없어 포기하는 것을 인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을 인내라고 착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내와 포기하는 것은 다릅니다. 또,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는 것과 인내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려움을 이기려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련을 이기려고 죄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말과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리어, 지금 환난과 시련 가운데 있어도, 그리스도인으로의 마땅 삶,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다윗이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왕에게 십수년간 쫓겨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윗은 사울을 죽일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가 사울을 죽이면, 모든 환난이 끝이 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을 죽이기 않았습니다. 이게 인내입니다. 또, 욥이 인내의 사람이었습니다. 전에 말한대로, 욥은 상상 그 이상의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도리어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인내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런 인내의 사람을 ‘이기는 자’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소망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사도요한은 환난가운데 있는 소아시아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환난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인내 할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인내할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그리고 인내야 말로, 최고의 믿음의 증명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환난과 시련, 어려움도 주십니다. 모두 우리의 유익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이상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인내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즉, 타협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환난과 인내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누리는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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