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다시 오실 주님!(요한계시록강해5 )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다시 오실 주님!(요한계시록강해5 )
 본문말씀 : 계1:7-8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6.26
조회 : 9,635   추천 : 0  
본문 : 계1:7-8절   요한계시록강해5 
제목 : 다시 오실 주님!    

  들어가는 말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갇혀, 온갖 고문과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문과 죽음 앞에서도 상당 수는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2차 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을 때, 수용소 벽에 이런 문구들이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는다. 단지 그 도착이 좀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고문과 죽음의 순간 속에서도 주님의 오심을 소망하며 견뎌냈던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주님의 재림을 당시 신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재림이 어떤 것이며, 주님의 재림의 목적인 무엇이며,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과 담력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시 오실 주님
 예전에 어떤 분이 학생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설교할 때, 아이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설교제목을 삼았다고 합니다. ‘과연 예수님이 손오공(근두운)이신가?’ 왜 이런 제목을 선정했을까요? 그것은 그 만큼 재림이라는 주제가 학생들에게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학생들만의 이야기겠습니까?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1900년전 로마로부터 온갖 박해와 핍박을 당하던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주님의 재림’은 가장 크고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주님의 재림(다시오심)이라는 주제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재림이라는 주제는 요한계시록에서 대단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의 클라이막스 부분에 해당될 정도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주님의 재림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오늘 본문이 말하는 주님의 재림은, ‘가시적인 재림’입니다. 7절에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즉,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 곧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들 모두가 볼 수 있는 가시적인 방법으로 재림을 하십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영적으로 재림한다는 말이 아니라, 승천하셨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육체적으로 재림하신다는 말입니다. 핵심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식의 재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자신이 재림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 신천지의 이만희, 통일교의 문선명..., 그리고 우리나라 교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만 자신이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무려 40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영이 자신에게 임했기 때문에 자신이 재림 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보도록 가시적인 방법으로 오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알수 있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때를 말씀해 주지 않았다’ 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7절 ‘오시리라’ 8절 ‘올 자요’ 라고 주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 오신다고는 말씀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그 어디에도 주님의 재림의 시기를 정확하게 언급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마24:36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정말 모르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시기에 관한 권한이 성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시기는 감추어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각 시대마다 재림의 년월일시를 말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시한부 종말론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1992년 10월28일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사람들을 미혹했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무리를 일으켰습니다. 그 외에도 전 세계 여러 나라에도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꼭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해서 어느 시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이단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재림의 시기를 말하는 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확한 연월일시를 말씀해주시면, 누구도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을 텐데..’ ‘또, 연월일시를 말해주시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재림의 시기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지 않으실까요? 만일 재림의 시기를 정확히 말씀해 주시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재림의 날을 아는 것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점은 시한부종말론자들의 최후를 보면, 분명히 들어납니다. 여러분!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최후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그들이 정해 놓은 재림의 연월일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더 행복해졌나요? 부부사이가 좋아졌나요? 가정이 더 건강해졌나요? 직장생활을 더 열심히 했나요? 그런 시한부종말론자들은 없습니다. 대부분이 가정이 파탄 나고, 제대로 직장생활을 못하고, 올바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등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이 상당수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답지 않고, 더욱이 성경대로 사는게 아닙니다. 이 점을 볼 때, 우리들이 주님의 재림의 날을 아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말씀해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림의 때를 말씀해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유익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모든 때를 말해주시지 않는 것도 우리들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유익을 목적으로, 우리의 유익을 기준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를 만나든지 그 때에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관련해서 중요한 3가지를 확인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재림은 육체적인 재림 곧 가시적이고 공개적인 재림이며, 둘째로,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르며, 셋째, 재림의 때를 말씀해주지 않는 것은, 우리의 유익 때문이었습니다.

  2.심판하실 주님
 이제 우리들이 묵상할 것은, 과연 예수님의 재림을 당시 교회와 신자들에게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로마로부터 박해와 핍박을 당하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의 재림이 교회와 신자들에 왜 위로와 소망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재림의 의미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재림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그냥오시는 것뿐입니까? 단순한 방문입니까? 아닙니다. 만일 단순히 그냥 오시는 것 뿐이라면, 7절에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 하는 일이 왜 생길까요? 세상 사람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왜 애곡할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곧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님의 재림의 날은 누군가에게는 형벌의 날이며, 누군가에게는 보상의 날인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악인들에게는 형벌이 주어지는 날이고, 의인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지는 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악인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17장에 음녀를 심판하시고, 계18장에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계19, 20장에 사탄을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탄에 속한 모든 악한 것들이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한 형벌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은 심판을 받을까요? 안받을까요? 우리 신자들도 심판을 받습니다. 롬14: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받을 심판은 분명히 의무와 책임을 묻는 날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형벌을 받기 위한 심판이 아닌, 보상을 받기 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의인은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즉, 신자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을 갚아주시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계22:4절에는 주님의 재림의 날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는 날’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 또는 심판과 관련해서 많은 신자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어떤 사람은 천국에서 금면류관, 어떤 사람은 개털모자....,를 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만일 천국에서 그런 차별과 차등이 있다면, 진정한 천국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다름은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할수 있습니다. 첫째는, 심판의 날 더 많은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가지고 산 것 그 자체가 다름인 것입니다. 이점은 마20장의 포도원 품군비유에서 잘 나타납니다. 어느 포도원에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인이 포도원에 일할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오전6시, 9시, 12시, 오후3시, 오후5시..., 그러나 품값으로 받은 것은 모두 1데나리온 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루 종일 많이 일한 사람의 보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열심을 가지고 살아간 그 자체가 보상인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재림의 날은 마치 추수 때와 같은 것입니다. 즉, 추수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갈래냅니다. 그리고 알곡은 곳간에 그러나 가라지는 불사르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의미이며, 목적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시 교회와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는 일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고,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즉, 힘내고 더욱 신앙을 잘 지키라고 격려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교회와 신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손해보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당할 때도 참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아픔과 눈물을 흘려하는 순간도 많이 있습니다. 또한, 많은 갈등과 고민을 격게 되는 순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또는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는 날, 여러분을 위로해주시고,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수고했다고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이 날을 바라보면, 더욱 힘을 내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허송세월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더욱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묵상할 것은, “주님의 다시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우선 성경에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본문이 많이 있습니다. 몇 개만 예를들면, 약5:7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말을 합니다. 또, 벧전4:7-10절에는 ‘만물의 때가 가까웠으니...,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지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선한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이 다시오시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주 하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 영원할 것 같아 보이는 로마의 권세, 로마황제의 영화에는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황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금 그들이 받고 있는 핍박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두려워합니다. 예를들면, 실패의 두려움, 불행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핍박의 두려움, 문제에 대한 두려움..., 그런데 이 두려움들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때,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 마음을 회복하고, 간직하는 것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가장 훌륭한 자세임을 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의 주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평생을 경건한 신앙의 삶을 산 ‘호나티우스 보나르’ 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아침에 해가 뜨면 창문을 열고 커텐을 젖히며 '주여! 이 아침에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또 밤이면 창문을 닫으며 '주여! 이 밤에 오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항상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본문과 삶
 1)주님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에게 보이는 방식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2)그리고 악인에게는 영원한 형벌, 의인에게는 영원한 영생을 주시는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3)그러므로 매일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주님이 언제 오셔도 괜찮은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67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8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3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10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91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58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2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2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3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8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7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18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1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6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8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66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6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4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5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