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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평강 있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강해4 )
 본문말씀 : 계1:4-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6.19
조회 : 7,992   추천 : 0  
본문 : 계1:4-6절   요한계시록 강해4 
제목 : 평강 있기를 원하노라!    

  들어가는 말  
 각 나라마다 인사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나라는 만나면, 반갑게 악수를 합니다. 그런데 에스키모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빰을 비비고, 더 친한 사람이면 코를 비비며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또,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은, 서로의 발에 침을 뺕는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또, 몽골사람들은 서로 껴안고 상대방의 냄새를 맡는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또, 각 시대마다 인사말도 다릅니다. 예를들면, 우리나라에 사건사고가 많을 때에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배고프고 어려웠던 시대에는 ‘식사하셨습니까?’ 요즘에는 건강과 웰빙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건강하십니까?’라고 인사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사도요한이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인사 곧 문안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평강이 있기를 문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도 사도요한이 말하는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평강해야 합니다!
 먼저, 여러분이 알아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어떻게 만들어진 책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27권 합 66권으로 되어진 책입니다. 그리고 성경 최초의 저자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5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이 성경들은 BC1500년 경에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성경 가장 마지막 책은 요한계시록입니다. AD95년 경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약 1600여 년간에 걸쳐 완성된 책입니다. 저자는 각기 다른 시대, 문화, 환경, 직업, 교육수준이 다른 40여명의 사람이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약속이고, 이 약속을 근거로 구약은 오실 메시야, 신약은 오신 그리고 다시 오실 메시야이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떤 방식으로 기록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령님께서 모든 장면을 보여주시고, 모든 단어, 문장 하나 하나를 불러주시고, 저자들이 단순히 받아썼다는 말일까요? 이것을 기계적 영감설이라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성경 저자는 기계처럼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는 말입니다. 보통 성도들은 성경이 이런 방식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쓰여졌을까요? 먼저, 감동이라는 말을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동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의 마음속에 기록해야 할 내용과 지혜를 주셔서 깨달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저자가 가지고 있는 학문과 지식을 가지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을 유기적 영감설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학문의 깊이 있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을 보면, 대단히 뛰어난 문장력을 볼수 있고, 반대로 학문의 깊이 없었던 베드로가 기록한 성경을 보면, 참 간단하고 쉬운 문장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놓치면 안되는 것은, 물론, 각 저자가 가진 학문으로 기록할 때에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졌습니다.(축자영감설) 이런 의미로 볼 때, 성경의 저자는 100% 하나님이면서, 100%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보전되고 전수되는 일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도 원본과 마찬가지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계시를 받고, 그 계시를 근거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4절을 봅니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는 우리나라가 있는 아시아가 아니고,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지역을 말합니다. 물론, 지금의 터키는 이슬람국가로서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지만, 오늘 본문이 기록된 약 1900년전에는, 교회가 아주 부흥했고, 신앙도 아주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소아시아에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7교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골로새, 드로아, 히에라볼리..., 등과 같은 더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소아시아지역의 모든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고, 더나가서 그 시대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교회를 포함하는 말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5절을 보면, 사도요한이 7교회에 계시록을 보내는 이유가 소개됩니다. 즉, ‘은혜(헬라식 인사)와 평강(히브리식 인사)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입니다. 즉, ‘평강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교회와 성도들은, 로마황제숭배라는 압박을 받았고, 이를 거절한 교회와 성도들이 로마로부터 위협과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박해로 인해서 배교하는 성도들이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의 마음에 평강을 주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강(에이레네)이 무엇일까요?’ 평강이라는 말은, 어떤 환경속에서도 평안한 마음, 또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평강이라고 합니다. 예를들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여러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옥에 갇혀 죽음의 그림자를 보면서도 바울은 마음에 불안함이나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하게 되었을 때에도 바울은 염려와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잔잔했습니다. 이런 마음의 상태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평강을 누리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성도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축복하는 내용이 대단히 많이 나옵니다. 그 만큼 바울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도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밧모섬에서 하나님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밧모섬에 있었던 것은 휴가를 간게 아닙니다. 9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유배되어 간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입니다. 북한의 실정대로 말한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요한 역시, 그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요한 역시, 평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렸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윗이 평강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어린시절, 골리앗과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리어 평강을 누리고, 결국,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또, 다니엘과 3명의 친구들 역시, 평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던 중, 신앙의 이유로, 체포를 당하고, 풀무불과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상황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의 갈등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호수아와 갈렙, 스데반집사,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 그리고 일제시대의 많은 성도들..., 이들은 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어떤 상황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고, 요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 땅을 살면서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이 땅을 살면서 필요한게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건강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양식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직장도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고...,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욱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평강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행복할 수 없고, 아무리 건강해도 행복할 수 없고, 아무리 높고 큰 명예와 권세를 가져도 결코 행복한 인생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비록, 가난하고, 건강하지 못하고, 좋은 집이 없고, 명예와 권세가 없다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소유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강을 소유하게 될 때, 신자로서도 능력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는 날에도 평강이 선포되었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선언하신 것 역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입니다. 이처럼 평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있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하고,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고, 답답하고, 초조해 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등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강’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어떤 힘겨운 순간속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을 더 알 때
 그렇다면, 이런 평강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돈을 많이 가지면 얻을 수 있을까요? 건강하면 얻을수 있나요? 명예와 권세를 가지면 얻을 수 있나요?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평강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평강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평강을 주기 위해서 소개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특별히 오늘 본문은 3위 하나님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을 합니다. 먼저, 4절을 보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곧 성부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소개하는 성부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조금도 변함이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와 사건에 따라 변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져주심에,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하심에도.., 모든 것에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또, 성령하나님에 대해서는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영’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곱영을 일곱천사라고 말을 하지만, 아닙니다. 성령님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과연 어떤 분입니까?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즉, 성령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으로 소개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 완전합니까? 여러분은 성령님의 주된 사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원을 적용하시고, 완성하시는 사역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시고, 완성시키시는 사역입니다. 이 일에 완전하신 분입니다. 또, 성자예수님에 대해서 5절에서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왕 중에 왕이 되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분’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분이십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결국, 한마디로 정리하면, 모든 계획과 사랑하심에 변함없는 성부하나님, 우리를 위로하고, 보호하고 인도하심에 부족함없는 성령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죽음조차 이겨내시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신 성자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조금 다르게 말하면, 교회와 성도 편이신, 내 편이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편이신 분이 미래의 결정권자이고,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도요한이 이러하신 하나님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아시아교회와 성도들에게 평강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지금 로마의 박해를 당하고 있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이런 성삼위하나님의 모습이 얼마나 큰 평강의 이유가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도요한은 성삼위 하나님을 소개함으로, 소아시아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평강을 얻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평강을 누리고, 평강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단지, 지식이나 머리만으로가 아닌, 믿음으로 더욱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결코 평강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평강이 없고, 불안과 두렴이 많은 이유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민13-14장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결과적으로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께 원망을 했을까요? 땅이 안 좋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땅은 정말 기름진 좋은 땅이었습니다. 이 점은 정탐꾼들이 가지고 온 열매들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 원망했을까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일까요? 물론, 표면적인 이유로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강함이 원망의 이유라면, 여호수아와 갈렙도 함께 원망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원망한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를 지키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마6장을 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핀 백합화도 입히시는 분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도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들이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평강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염려가 되고, 두렵고,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지식이나 머리가 아닌 믿음으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3.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평강의 필요성과 평강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평강을 얻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그러셔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돈되는 것, 돈 되는 방법을 알고자 노력하고, 자식 잘 키우는 방법을 알고자 노력하고, 사업잘하는 방법도 알려고 노력하고, 손해 안보고 사는 방법을 알고자 노력하며, 공부 잘하는 방법도 알고자 노력하고, 어떤 일이든지 잘하는 방법을 알고자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노력을 다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일에 노력을 하십니까? 어떻게 노력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만납니까? 첫째,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며, 어떻게 일하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가를 기록해 놓은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예배에 열심히 나와 설교를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또, 매일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매일 성경을 읽고 계십니까? 그래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신앙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들이 신앙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그것을 공유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아 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열심히 신앙의 교제, 목장 모임을 나누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들이 신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평강이 없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아낼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에게 평강은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평강을 얻게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나와 어떤 관계의 분이시며, 어떤 분인가를 알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날마다 하나님을 더 알아 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평강의 사람이 되어, 어떤 순간에도 승리하는 곧 그리스도인답게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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