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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우리들도 해야 할 결심!(열왕기상강해12)
 본문말씀 : 왕상8:22-5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6.7
조회 : 7,693   추천 : 0  
본문 : 왕상8:22-53절   열왕기상 강해12
제목 : 우리들이 해야 할 결심!    

  성도들의 삶속으로  
 ‘당신의 미래를 바꾸는 결심의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결심에 따라서 미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필역하는 책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위대한 업적을 일구어 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분명한 결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심이 결국에는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결심이 없었다면 그들은 위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결심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잘 아는 18세기 위대한 설교가이며 영성가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살(1722년)의 젊은 나이에 놀라운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그후 에드워즈는 1년여에 걸쳐, 자신 평생 지켜 나갈 70개의 결심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게으름을 피웠는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내가 자신을 부인했는지 등에 대해 자문하자’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하자’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자’..., 등 70개의 결심문을 가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복해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거룩한 삶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위대한 설교가이며, 뛰어난 영성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결심에서 시작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솔로몬의 결심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솔로몬의 결심이 무엇인지가를 확인하고, 여러분 모두도 솔로몬이 가진 그 결심을 갖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 앞에서 행할 결심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김으로, 성전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마친 후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기도가 단지 하나님께 대한 간구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그 기도속에는 솔로몬의 분명한 결심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실 간구만이 아니라, 결심이라는 점을 놓치면 안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 은혜주세요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이렇듯 기도가 결심이고 결단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솔로몬의 결심이 무엇인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결심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결심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늘 생각나는 본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후의 만찬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릴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베드는 막14장을 보면,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베드로는 모든 제자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결심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그런 결심을 하면 뭐합니까? 라고 말하실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만일 베드로가 ‘주와 함께 죽겠습니다’ 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만일 이러한 결심조차 하지 않았다면, 주님이 붙잡히실 때, 주님이 끌려가서 재판받는 분기가 가득한 현장까지 따라 갈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베드로만이 그 자리까지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제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잠시도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도망쳐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바로 결심의 차이입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결심이라 할지라도 우리안에는 결심을 갖아야 합니다. 만일 지키지 못할 결심이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우리 속담에 있는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담구는 사람”기인지우(杞人之憂) 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처럼 결심은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앙생활은 결심으로부터 시작하고, 성장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것도 신앙의 결심으로부터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아무런 결심을 하지 안는다면 여러분의 믿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려보지 못할 것입니다. 도리어 여러 가지 유혹을 받아 무너지는 신앙이 될 확률이 더욱 많게 됩니다. 여러분은 다니엘의 결심을 잘 알 것입니다. 그는 더러운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을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심이 결국에는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이렇듯 결심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많은 결심을 갖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어떤 결심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첫째로, 솔로몬의 결심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겠다” 는 결심입니다. 먼저, 23절을 보면,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라고 말을 하고, 또 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 하신 말씀 중에 또 반복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내 앞에서 행한것’ 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솔로몬은 기도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코람데오를 결심한 것입니다.

 코람데오란(Coram Deo)?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16세기 중세시대에 처음으로 사용된 표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중세시대는 기독교역사상 가장 영적으로 어두웠던 시대로서 영적인 암흑기로 여기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루터와 칼빈과 같은 개혁자들에게 의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때입니다. 바로 그때 종교개혁자들이 신앙의 각성, 신앙의 회복을 위해 외쳤던 말들 중 하나가 바로 ‘코람데오’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즉, 영적으로 타락하고, 신앙이 어두워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 바로 코람데오라는 신앙의 인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지금의 나의 모습, 나의 행, 나의 말을 보시면서 어떻게 여기실까? 또는 하나님께서 칭찬하실까?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하나님을 위하는 일일까? ...., 등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을 살피는 일을 잃을때 신앙의 타락과 영적인 침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코람데오를 외치며 신앙의 각성을 촉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병들고, 나약해지는 것은, 바로 코람데오의 신앙의 인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속에 코람데오의 신앙의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물론, 하나님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심으로 형체를 가지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항상 보이는 분처럼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늘 눈에 보이는 분으로 여기며 살아가십니까? 요셉을 생각해보십시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집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주인의 유혹을 받습니다. 혈기왕성한 청년으로서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요셉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코람데오의 신앙때문입니다. 창39장을 보면 요셉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찌 범죄하리오’ 요셉은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여긴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은 신앙이 늘 순결하고, 거룩한 신자의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코람데오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칭찬의 문제입니다. 코람데오라는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칭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만 봐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사람들의 칭찬이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칭찬을 목적으로 하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때로는 하나님의 칭찬을 위해 일하기 보다는 사람의 칭찬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신앙의 변질과 침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보이는 하나님으로 여기며, 그리고 하나님의 칭찬을 먼저 생각하며, 또한 늘 하나님 마음과 생각을 먼저 헤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곧 코람데오를 결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기도의 결심
 이제 살펴볼 솔로몬의 두 번째 결심은 “기도할 것에 대한 결심”입니다. 본문 28절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절‘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절 ‘이곳을 향하야 기도할 때에’ 그 외에도 33절, 35절, 42절, 44절, 48절..., 등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은, ‘기도를 들으시옵소서’입니다. 이 말은 지금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하나님께 자신이 기도하겠다는 결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들으심도 없기 때문입니다. 들으심은 기도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결심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에게 기도의 결심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기도를 결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기도를 결심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하지 않고는 교회다울수 없고, 그리스도인 다울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일컬어져 왔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들이 호흡하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그러나 호흡을 하면, 온몸에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기도의 호흡을 하지 않으면 영혼은 병들고, 죽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눈의 기능도 떨어도 볼것을 보지 못하고, 영적인 귀 기능도 떨어져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판단력도 떨어져 올바른 분별이나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인 움직임의 기능이 떨어져 하나님을 위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이 기도하지 않을때 우리들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 늘 떠오르는 한 본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를 중심으로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친 사건입니다. 여러분! 베드로, 그리고 제자들이 왜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왜 부인하고 도망쳤습니까?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감정이 부족함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기도하지 않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당하게 될 일과 제자들이 도망칠 일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두가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음이 제자답지 못하고, 심지어는 제자의 삶을 포기하게 까지 만드는 치명적인 결과를 만든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영국의 템플 목사님이 켐브리지 대학에서 설교 부탁을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석학들이 모인 그 곳에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다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와서 따져 물었습니다. “목사님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도가 응답된다고 말씀하십니까?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우연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연의 일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템플 목사님은 그 청년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청년의 말도 일리가 있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도하면 우연이 생기고 기도를 안하면 우연이 안 생긴다는 것이네. 그래서 나는 자네들에게 기도하라는 거라네.”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들안에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변화도, 나아짐도, 성장도.., 무엇도 일어나지 않고, 우연이라는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를 결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들이 해야할 결심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여러분 모두가 기도할 것을 결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결심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예를들면, 몇시에, 어디서, 무슨 기도제목을 가지고 해야 할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무엇보다 기도를 결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3.회개의 결심
 이제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결심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31절을 보십시오!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주의 제단에 맹세하거든’입니다. 또, 33절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됨으로 주께로 돌아와서’ 35절에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그러면서 46-48절을 보면,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무슨 말입니까? 지금 솔로몬은 하나님을 향해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 역시, 솔로몬의 결심입니다. 무슨 결심일까요? 바로, 하나님께 범죄할때마다 회개할 것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해야 할 결심이 바로 “회개의 결심”입니다. 즉, 범죄할 때마다 방치하지 않고, 회개할 것을 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조금 전에 살펴본 본문을 보면, 한가지 공통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범죄함으로 어떤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범죄함으로 33절에 적국에 패하고, 35절에 하늘이 닫히고, 37절에 기근, 전염병...,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떤 고통의 문제가 있을때, 우리는 하나님의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혹시라도 범죄한 것이 없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범죄한 것이 발견되면, 우리는 그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과 사울왕의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똑같이 죄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주시고, 위대한 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를 하나님앞에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부흥의 중심에는 회개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침체와 변질에는 회개의 기도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개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회개를 결심한 것처럼 여러분 모두도 작은것에도 회개하는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사람은, 작심삼일에 될까마 결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신앙의 결심을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본문과 삶 
 1)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지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2)무엇보다 기도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3)작은 죄라 할지라도 회개하는 사람이 될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솔로몬의 결심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실만한 결심들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결심들을 끊임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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