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14:4-8절 호세아서강해43
제목 : 고치고 만드시는 분!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이 아시는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 시골에 아주 마르고 병약한 한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남자의 집 문 앞에는 큰 바위가 있어 출입이 늘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하나님께서 그 남자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문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남자는 하나님께서 바위를 옮겨주실 것이 기대하고 매일 매일 열심히 바위를 밀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무렵, 그 남자는 바위가 얼마나 움직였나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바위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 남자는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슬퍼하느냐?’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매일 바위를 밀었지만 전혀 움직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게 뭡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가서 거울을 보렴!’ 거울 앞에선 남자는 근육질의 건강한 몸으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보다 우리를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답게 고치고 만드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하시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며,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고치고 만드시는 하나님!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의 반역을 고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5-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어떻게 고치실지를 보여주십니다. 곧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백향목 같으리니...,’ 그리고 계속해서 7-8절을 보면,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이전의 북왕조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이렇게 고치시고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꾸중하고 심판하시는 목적이 바로 북왕조 이스라엘의 잘못된 것들을 고치시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죄에 대한 상응하는 벌을 주시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북왕조 이스라엘을 더 하나님 백성답게 고치고, 만드시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하시고자 하는 일이 바로, 고치시고, 만드시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고치고 만드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답게 고치고 만드시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행하시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대로 말한다면, 8절처럼 우상과 무슨 상관이고, 죄와 무슨 상관이고 세상과 무슨 상관입니까? 라고 고백할 줄 아는 사람으로 고치고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점을 창1장의 표현대로 바꾸어 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로 여겨질 사람으로 고치고 만들어 가시는 일을 중요하게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창세기에 나오는 여러 족장들의 인생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셨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25년만에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을 하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중단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한 유명한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 이레’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셨다는 말인가요? 이삭 대신 번제로 드릴 수양을 준비하셨다는 말일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극적인 순간에 아브라함이 고작 그런 고백을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지금 지난 25년 동안 자신이 겪었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자였던 자신을 독자를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인생 전체를 통해서 그를 하나님의 사람(형상)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으로 만드셨던 것입니다.
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을 정도로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물론, 야곱은 신앙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늘 조건적인 신앙이었고 무엇보다 야곱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야곱은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얍복나루로 나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지나온 인생을 회개하고,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과연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단순한 개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과 방법을 의지하던 야곱을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꾸셨고 앞으로도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시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 결과 야곱은 인생 말년에 애굽으로 이주하게 되고, 애굽왕 바로를 만났을 때, 축복을 하게 됩니다. 예전의 욕심쟁이고 이기적인 야곱의 모습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애굽에서 얻은 부요함이 아닌, 가나안 땅의 작은 매장지를 소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야곱의 인생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셔서 욕심쟁이고, 이기적이고 비신앙적인 야곱을 하나님의 사람(형상)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또,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입니까?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하는 자였고, 꿈을 자랑하던 자였습니다. 정말 철부지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셔서, 비로서 그를 형들의 ㅈ라못을 용서하고, 형들의 식솔들을 책임져 주는 사람으로 고치고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한 유명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창50:20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과연 어떤 고백일까요? 형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고, 노예로 팔았지만, 그런 자신을 하나님께서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는 말인가요?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진정으로 고백하려는 것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 하고, 꿈을 자랑하던 철부지였던 자신을 형들의 잘못을 덮어주고, 형들을 용서해주며, 형들과 형들의 자녀들까지 돌보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참고, ‘선’으로 라는 단어와 창1장에 나오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라는 말의 어근과 같습니다. 즉,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인물로 만들어 주셨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고, 가장 열심히 행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에 참 다양하게 간섭을 하십니다. 때로는 실패로, 때로는 절망으로, 때로는 잘됨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격게 되는 다양한 순간, 아니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인생에 간섭하시는 사건들이며 순간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실까요?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는 더 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고치고 만드시기 위함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을 향해 가지시는 가장 큰 소원이고, 목적이고 관심인 것입니다.
2.우리들이 관심 갖고 힘써야 할 것?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은,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셔서, 우리를 고치고 만드시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행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관심 갖고, 가장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먼저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것에 가장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이 가장 힘쓰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관심을 갖아야 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이 되는 일에 가장 힘써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시간이 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정해 놓은 대로 하루에 3장씩 성경을 읽고 하루 10분이라도 기도하는 것, 피곤하지 범위안에서 최소한의 봉사를 하는 것, 부담이 없는 선에서 적당한 헌금을 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신앙생활 또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전부고 목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준하여, 끊임없이 나를 점검하고, 고치고 교정함으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형상)으로 나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신앙생활이며, 성경이 말하는 부흥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고,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하나님으로 인해서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이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고, 고난을 피해 더 편한 삶을 사는 것이고, 신앙의 자랑거리들을 만드는 것..., 등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 결과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앙의 성장이 없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10년을 하고, 20년, 30년, 심지어 40년을 해도 신앙의 레벨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늘 신앙이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여러분의 못나고 부족한 것들을 고친 것이 있습니까? 아니, 고쳐졌든 고쳐지지 않았든 자신을 고치려고 노력한 것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십시오! 어느덧 2019년도 5월이 되었습니다. 지난 5달 동안 고쳐내신 것이 혹시 있습니까? 있다면,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신 것이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 자신을 고치는 일이 없었다면, 미안하지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한 것이라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더 묻습니다. 왜 자신을 고치는 일에 관심이 없고, 나를 더욱 하나님의 사람(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고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 고쳐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남편, 아내, 부모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쳐야 할 것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감정의 문제도, 예배의 자세, 나쁜 습관..., 그 외에도 우리들에게는 아직도 고쳐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치지 않고, 교정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이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관심 갖는 일에 여러분도 관심 갖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여러분도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노아시대 사람들처럼 자신의 삶을 고집하며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더 이상 사시시대 사람들처럼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즉,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불리울 만한 사람이 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그 일을 위해서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자신을 고치고, 만들어 가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려면?
그렇다면,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가지고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자신의 부족하고 못남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3:14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 신앙의 상태입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부족과 못남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신을 고치고 만들어가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뭐가 부족하고, 어떤 면이 못났는가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성경이라 거울, 설교라는 거울로 자신의 부족함과 못남을 깨달게 되기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형상)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후4:4절을 보면,‘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셨는지?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품고 사셨는지? 예수님은 어떤 목표와 소원을 가지고 사셨는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날마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고 닮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시간과 순간, 특별히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일에 가장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고난과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특별히 요셉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고난과 시련의 순간을 사용하셨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종 종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을 지혜롭게 보낼 때,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질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난과 시련을 지혜롭게 보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놓치면 안되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예배, 말씀, 기도, 순종, 감사, 사랑, 기쁨, 섬김, 겸손..., 이러한 것들을 놓치지 않을 때, 비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구원이란 하나님 형상으로의 복귀, 회복입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형상)으로 고치고 만드는 일에 관심가지고 일을 하십니다.
2)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나를 고치고 만들고 완성시켜 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무엇보다 고난과 시련의 순간들을
지혜롭게 보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되어 감으로 하나님의 사람만이 누리는 영광과 기쁨과 복됨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