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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좋은 성도 좋은 교회!
 본문말씀 : 행11:19-2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5.8
조회 : 11,570   추천 : 0  
본문 : 행11:19-26절
제목 : 좋은 성도 좋은 교회!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좋은 건물과 시설을 가진 교회, 성도들이 많은 교회, 유명한 목회자가 있는 교회, 설교 잘 하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 재정이 풍성한 교회,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  또는,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필요와 편의를 제공하는 교회, 이름이 좋은교회..., 등 정말 이런 교회는 좋은 교회일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단지 건물과 시설이 좋고, 프로그램이 좋은 교회, 훌륭한 목회자가 있는 교회일 뿐 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 사랑하는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도 혹시나 한번 묻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족한 우리 사랑하는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립 13주년을 맞은 우리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바로 ‘과연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1) 연결 – 사도행전을 보면, 2개의 아주 좋은 교회가 소개됩니다. 첫째는, 유대 땅에 세워진 예루살렘교회이며, 둘째는, 이방 땅에 세워진 안디옥교회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방 땅에 세워진 안디옥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좋은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확인함으로,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더 좋은 교회로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교회란 무엇인가요?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좋은 교회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 우리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입니다.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또는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교회가 무엇인가? 를 먼저 이해하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가를 알아야 하고,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도 먼저,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인가를 알아야 하고,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먼저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도 먼저,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결코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없고, 더나가서 좋은 교회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교회에 대한 이해와 인식에 따라 성도들의 신앙과 내용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게 될 때, 올바른 신앙과 삶을 살게 되지만, 교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지게 될 때에는, 왜곡된 신앙과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교회가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우고 알고 있는 교회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교회를 건물이나 장소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건물이나 장소로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원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교회란 ‘에클레시아(ἐκκλεσία)’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밖으로’ 라는 말과 ‘불러내다’ 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예를들면, 세상으로부터, 부정으로부터, 무지함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로부터, 죄와 죄의 형벌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 행7:38절입니다. 보면, 우상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쏱아지는 애굽 땅에서 불러냄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교회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렇듯 교회란 하나님으로 부터 부름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서 교회를 삼위일체와 연관해서 말을 합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행8:1절을 보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것을 ‘교회’가 핍박을 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즉, 건물을 교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 공동체를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자 예수님과 관계에서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엡1:23절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몸은 건물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성도 공동체를 두고 하는 말일까요? 성도 공동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공동체를 주님의 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명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계획은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세우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교회에 맡기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말하기 위해서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 하나님과 관련해서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고전3:16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또, 고전6:19절에 ‘너희가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합니까? 눈에 보이는 건물입니까? 아니면 성도 공동체입니까? 성도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성들을 성령의 전으로 부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와 성도가 거룩함을 지켜야 할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상 우리는 교회를 원어적으로, 그리고 삼위일체와 연관해서 그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원어이든, 삼위일체와 관계해서든 교회를 어떤 장소나 건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도리어 성경은 교회를 구원받은 각 사람,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와 연관해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가장 잘 묘사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고전1:1-3절입니다.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정의 올바르게 할 때, 성도가 성도 다울 수 있고,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으며, 성도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감당해야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아야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가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단순히 건물과 장소로만 생각을 한다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건물을 가꾸고, 건물을 키우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교회의 본질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되고, 결국 좋은 교회가 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각 사람이 교회” 라는 점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 자신이 교회라는 점을 잘 모릅니다. 자신과 교회를 별개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여러분 자신이 교회이고, 우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러분 각 사람이 사랑하는교회인 것입니다. 이제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 좋은 교회일까요? 교회다운 교회일까요? 이제 여러분은 우리 교회 건물, 시설, 성도 숫자, 재정, 프로그램, 교역자..., 등이 아닌, 여러분을 자신을 보고 답을 하셔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사랑하는교회는 좋은 교회입니까? 여러분이 좋은 성도, 훌륭한 성도라면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이 좋은 성도가 아니고, 훌륭한 성도가 아니라면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상태가 우리 교회의 상태이고, 여러분의 수준이 우리 교회의 수준이고, 여러분의 신앙의 건강함이 교회의 건강함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따라해 보십시오! ‘내가 교회입니다.’ ‘내가 사랑하는교회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책임감을 가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칭찬과 존경을 받는 그리스도인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안디옥교회는 좋은 교회였을까요? 맞습니다. 그 이유는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좋은 성도, 성도다운 성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이 어디에 나오냐고요? 26절을 보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많이 퇴색되어 종교가 기독교인 사람들, 또는, 예수 믿는 사람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정도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대단히 놀라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안디옥이라는 지역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안디옥을 통치했던 로마의 장군 ‘안티오코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지명입니다. 이 말은 안디옥은 로마의 통치를 받던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19-20절을 보면, 디아스포라(박해로 인해서 흩어진 유대 신자들)유대인들과 헬라인(헬라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니까 안디옥이라는 지역에는 3부류의 사람들이 살았던 곳입니다. 즉, 유대인, 헬라인, 그리고 그들을 통치하는 로마인입니다. 물론, 안디옥의 성도들 중에도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성도들은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닌, 전혀 새로운 그리고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자였다는 것입니다. 조금 쉽게 말하면,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과는 비교 될 수 없는, 흉내 낼수 없는, 그들을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칭찬과 존경을 받을 만한 탁월한 삶을 사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것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듣던 성도들이 모인 안디옥교회는 좋은 교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속에서도 안디옥교회 성도들과 같이 인정받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먼저, 일제강점기 시대의 성도들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는 주권을 빼앗기고 많은 억압과 탄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가장 앞장 선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국민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신뢰하고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칭찬과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약 70 여년전 전쟁으로 파괴된 나라, 가장 가난한 나라,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되던 우리나라가 가난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와 성도들의 희생적 사랑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교회와 성도들이 전해준 소망의 메시지를 듣는 자들이 그 말이 참이고 진리라고 여길 만큼 칭찬과 존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4-50년전만 해도 장로, 권사, 집사는 여러면으로 칭찬과 존경을 받을 만큼 덕망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어떨까요?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18.4%만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 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적어도 80% 이상의 사람들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해서 못 믿겠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칭찬과 존경은 커녕, 믿지도 못할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또, 이상성이라는 사람이 지은 ‘추락하는 한국교회’ 라는 책을 보면, 아주 웃픈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한 여 집사님이 할머니 야채를 파는 노점상에 찾아가 야채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이미 야채를 사고 뒤돌아 서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이 여집사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 아줌마는 교회에 다니는데도 사람이 참 좋아!’ 라고 하더랍니다. 정말 추락하는 성도들의 모습, 그리고 더나가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우리 얘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떤 신자입니까? 그리스도인다우십니까?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일제강점기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처럼, 70년전 신자들처럼, 40년전 신자들 처럼, 불신자들에게도 칭찬과 존경을 받을 만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서 다르다는 칭찬의 말을 들어 보신적 있습니까? 어쩐지 착하더라, 어쩐지 다르더라...,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너 교회 다녔어?’ 라는 말을 듣지는 않습니까? 더나가서, 사람들에게 ‘악평과 손가락질’을 당할 만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이, 먼저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날마다 칭찬 받는 성도’ 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세상 사람들에게까지 칭찬과 존경과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교회는 성도 숫자, 교회의 규모, 재정상태와 상관이 없이, 정말, 건강하고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이런 의미로 좋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3.배운대로 사십시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칭찬과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으로 파송된 바나바라는 지도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착한 사람’입니다. 참 이상한 표현입니다. 여러분! 지금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을 돌보고 양육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오늘 본문을 읽는 사람들이 안디옥의 지도자로 바나바가 얼마나 적임자인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습니까? 예를들면, 바나바가 얼마나 성경을 많이 알고, 잘 가르치고,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기도에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그가 목회자로서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바나바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고작 그가 착한 사람이라고 강조할 뿐입니다. 왜 일까요? 별로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자랑할 것이 꽤 많은 사람입니다. 안디옥교회에 파송할 만큼 예루살렘 교회안에서 모든 면에서 인장받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고작 착한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이라고 말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신앙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바나바를 말할 때, 착한사람이고,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함께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바나바가 신앙과 삶이 일치된 진정한 영성가임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영성 또는 경건이라는 것은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능력이 영성입니다. 그리고 안디옥성도들 역시, 바나바에게 신앙과 삶의 일치를 배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시대의 신자들이 또는,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지 못하는 너무나 중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주일마다 예배는 빠짐없이 드리는데,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함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서로에게 날카롭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열심히 드리는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양은 뜨겁게 부르지만 따듯한 마음없이 차가운 모습으로 이웃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는 하지만 늘 대접만 받고 자기 뜻대로만 되기를 바라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배웠음에도 지나친 욕심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배운대로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배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살면 안됩니다. 서로를 섬기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몇번이고 용서하십시오! 겸손하십시오! 정직하십시오! 희생하십시오! 온유하십시오! 자랑하지 마십시오! 부지런하십시오! 다투지 마십시오! 이것이 우리들이 하나님께 배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미움을 배우지 않았고, 거짓을 배우지 않았고, 교만과 자랑을 배우지 않았고, 혈기와 다툼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배운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과 삶의 일치인 것이고, 우리들이 이런 삶을 살 때, 우리는 칭찬과 존경을 받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가 아닌,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본문과 삶
 1)즉,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교회입니다.
 2)그러므로 여러분의 수준이 교회의 수준이며, 여러분이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3)따라서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은 더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더욱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신앙과 삶의 일치, 배운대로 사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자신을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세워가는 힘씁시다. 우리가 사랑하는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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