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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호세아서강해41)
 본문말씀 : 호13:1-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4.10
조회 : 10,495   추천 : 0  
본문 : 호13:1-16절   호세아서강해41
제목 :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나라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핑계 없는 무덤없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들이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아시지요? 바로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모든 결과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장사가 잘 되는 집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장사가 안되는 집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그 만한 이유가 있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불행한 가정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에게는 그 만한 이유가 있고, 신앙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 만한 이유가 것입니다. 이처럼 무슨 일에든 다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일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와 목적,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이유를 가지고 일하시는 분
 호13장은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이 결정’되었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받게 될 심판의 내용들’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당하게 될 심판의 내용들은 무엇입니까? 1절을 보면,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아침 구름, 이슬, 쭉정이, 연기처럼 될 것, 곧 흩으시겠다고 말을 합니다. 7-8절을 보면, 사나운 짐승들(주변 강대국, 앗수르)에게 찢기게 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11절을 보면, 왕들을 죽게 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13절을 보면, 해산하는 자보다 더 큰 고통을 격게 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모든 것을 약탈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6절을 보면,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니는 부서뜨려지며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고 정말 무시 무시한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면, 바알우상을 비롯한 많은 우상을 숭배했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4-6절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었다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7절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말을 합니다. 또, 16절에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는, 12절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정하신 대에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먼저 알아야 할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이유를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든 정당하고 공의롭게, 그러나 선하고 복된 이유를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 때, 이유 없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창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에도 이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하나님 자신을 들어내시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일에도 이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제 7일에 안식하신 일에도 이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어떤 이유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완전함을 증거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창1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신 것, 또는 일하지 않으신 모든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창1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창2장부터 계22장안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든 일하심, 곧 개인의 생사화복과 모든 나라의 흥망성쇄에도 반드시 이유를 가지고 계신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개인, 가정, 교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순간들 속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성공을 누리것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있고, 여러분의 삶에 실패와 문제에도, 말할 수 없을 좌절과 고통중에서 분명한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다양한 순간들속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는 것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있고,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응답해 주지 않으시는 일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듣게 하시는 것에도 하나님의 이유가 있고, 반대로, 우리들에게 침묵하시는 일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또,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기쁨이 없으십니까?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말씀이 지루하고 기도가 잘 안되십니까?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에 쉽게 시험에 드십니까?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또, 신앙이 성숙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겪고 있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그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또,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속에서 겪고 있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그 일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를 가지고 어떤 일을 겪게 하시든지 간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겪게 하시는 모든 일들의 이유는 다 선하고 복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겪게 하시는 어떤 일들 중에 그 이유가 선하지 않고, 복되지 않은 이유, 간단히 말하면, 우리들에게 해가 되고 손해가 되는 이유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이유는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지금 겪고 있는 그 일의 이유를 다 이해하고, 헤아리고, 납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욥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일을 겪게 하시든지 간에 그 모든 이유는 복되고 선한 이유의 결과물 이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순간이 감사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전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며,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그것은 모든 순간 하나님의 이유가 있음을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더 기도하고, 하나님의 이유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하소연 하고, 해결 하고자 하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이유에 집중하는 신앙의 내용을 가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심판의 이유와 목적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선하고 복된 이유가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 벌을 내리시기 위함일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고, 공의로운 재판장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함일까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공의로우신 재판장입니다. 모든 사람의 잘 잘못을 객관적으로 재판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객관적(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것, 어떤 관계나 감정이 없이 보는 관점)인 재판장으로만 이해를 하게 된다면, 우리들은 호세아서를 읽으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을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들면, 호세아가 등장하는 이유, 그에게 음란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는 장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말하는 장면, 하나님을 힘써 알라고 말하시는 장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장면, 회개하라고 말하시는 장면, 하나님이 하소연하는 장면, 하나님이 분통 떠져 하시는 장면, 하나님이 화를 내시는 장면, 하나님이 무겁게 말하다가 달래주는 장면, 회개할 기회를 주는 장면..., 등 이러한 여러 가지 장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과연 이러한 장면이 객관적인 재판장에게서 나올 수 있는 장면들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여러분은 세상 법정에 가 본적이 있습니까? 세상 법정은 간단합니다. 했습니까? 안했습니까? 했다면 어떻게 얼마나 했습니까? 죄를 인정합니까? 할 말 있습니까? 이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형법대로 판결합니다. 이게 객관적인 재판장의 모습입니다. 당연히 재판장은 이래야 합니다. 만일 재판장이 감정이나 관계에 얽매이게 된다면 바른 판결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객관적인 재판장으로 심판’을 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객관적인 재판장으로 북왕조 이스라엘을 대우하고 있다면, 사실 호세아서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심판하시면 됩니다. 심판을 반복해서 말할 필요도 없고, 심판을 늦추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객관적으로 벌을 주시는 재판장으로 우리를 대우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점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를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원칙적인 문제로 다루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쉽게 예를든다면,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대하는 태도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식의 잘못을 어떤 태도로 대하셨습니까? 단순히 윤리 도덕 원칙적 태도로 하셨습니까? 잘못에 상응하는 벌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물론, 잘 잘못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과 상응하는 벌을 주는 것은 정당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래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잘 잘못이라는 원칙보다 더 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 속상함, 그리고 그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부모가 함께 느낀다는 점입니다. 또, 때로는 배우자의 실수와 잘못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자의 실수와 잘못은 단지 잘 잘못이라는 원칙으로만 대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도 속상함과 아픔을 함께 느끼집니다. 그래서 종 종 오래 함께 산 부부들은 서로에게 ‘웬수~’ 라고 부르겠습니까? 웬수라는 말속에는 속상함, 괴로움,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면, 단순히 무서운 심판,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무서워 해야 하는 그 이상의 분입니다. 그 분은 때로는 부모와 같이 때로는 신랑과 같이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심판의 가치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때때로 우리들에게 징계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 두 번째는,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의 잘못과 불순종이 만들어 내는 결과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우선 여러분이 주목해야 할 단어는 스올과 사망, 재앙과 멸망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이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한 결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 결과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자의 최후가 무엇인가를 가르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습니다. 때로는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고, 속상함을 당하고, 답답함을 당합니다. 스올과 사망의 부산물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 역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 일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만이 내 삶의 모든 것의 정답이신 분임을 가르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우리들을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 가운데 어떤 스올과 사망의 부산물들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과연 나를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고집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을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고쳐 세워야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운명에 내버려 두시지 않는 분이라는 점을 가르치시고자 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운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스올이고 그것은 사망입니다(끝장난 자리, 새명도 소망도 은혜도 없는 자리). 이것 이상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운명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4절을 다시 보시면,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시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스올과 사망이라는 운명에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올과 사망의 운명으로 끝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북왕조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말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범죄한 북왕조 이스라엘이지만, 포기할 수 없고, 내 칠수 없고, 외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나가서 지금은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범죄한 백성이지만 그들을 심판을 통해서 내 백성답게 만들어 내시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이며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고난도 당하고 환란도 당하고,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만납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의 잘못된 것들을 고쳐내셔서 하나님 자녀답게 만들어 가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징계라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잘 못된 것, 고쳐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찾고, 고쳐가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벌주심이 이유와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과 우리들이 사랑의 관계로 묶여진 자들임을 보여주는 증명이며, 또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로 묶여진 우리들의 연약함이나 못남으로 만들어 지는 운명에 내 버려두지 않고, 우리의 연약함과 못남을 고쳐가시어 결국에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우리를 만들어 내시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 모두는 마지막 심판을 거치게 되어 구원의 완성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과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입니다.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심판하신 하나님? 맞습니다. 그러나 더 우리에게 말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스올보다 크고, 사망의 권세보다 크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스올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신앙이란 나의 실력과 수준을 붙드는게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붙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감격하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는 신자의 삶을 소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이심의 증명과 절정이 바로 심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징계)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로 묶여진 자이며, 그래서 사랑의 관계 앞에 자격과 실력이 없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고치시고, 만들어 가시는 분이라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모두가 날마다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승리하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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