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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어리석은 북왕조 이스라엘!(호세아서강해40)
 본문말씀 : 호13:9-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4.3
조회 : 8,762   추천 : 0  
본문 : 호13:9-16절   호세아서강해40
제목 : 어리석은 북왕조 이스라엘!  

  성도들의 삶속으로   
 어느 나라에 매우 어리석은 신하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임금님은 그 신하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며 말했습니다. ‘자네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거든 이 지팡이를 전해주게’이 신하는 10여 년 동안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지만 자신보다 어리석게 여긴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임금이 병이 들어 임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유언을 했습니다. ‘이제 나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긴 여행을 떠나게 됐소, 나라를 잘 이끌어주시고’ 이 말을 들은 그 신하가 ‘임금님 긴 여행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셨는지요?’ 그러나 임금은 ‘아무것도 준비한게 없소’ 그러자 신하는 지팡이를 주면 말했답니다. ‘이 지팡이의 주인은 바로 임금님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심판의 날을 생각하지 못했던 북왕조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꾸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북왕조 이스라엘이 가진 어리석음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점검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
 오늘 본문 9절은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라고 시작을 합니다. 참 이상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호세아서가 기록될 당시 북왕조 이스라엘은 아직 패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적지 않은 부귀영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왕조 이스라엘이 패망하였다고 완료형 시제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패망이 결정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패망하게 하시기로 확정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이 곧 결과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빛이 있으라 하였더니 빛이 있었고...‘ 이처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은 결과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앙의 근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결국,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리고 필연적으로 북왕조 이스라엘을 패망하게 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패망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3절에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해산의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합니다.(예능에서 건강한 남성이 3분을 견디지 못했다고 함) 그러나 많은 산모들이 해산의 고통을 견디고 감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명을 얻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이 격게될 패망은 기쁨을 완전히 기대와 소망이 없이 당하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또, 15절을 보면,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의 근원이 마르며 그의 샘이 마르고 그 쌓아 둔 바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 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16절을 보면, ‘어린 아이는 부서뜨려지며 아이밴 여인은 배가 갈라지리라’ 고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육체가 갈기 갈기 찢어져 나가는 고통과 아이밴 여인의 배가 갈라지는 참담한 일을 격게 될 것을 것을 말합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의 패망은 날은 정말 무서운 날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패망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13절을 보면,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즉, 북왕조 이스라엘이 지혜없는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의 지혜없음 다르게 말하면,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그들은 패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3가지로 북왕조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면,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이 북왕조 이스라엘의 도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도움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10-1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왕을 요구한 사건을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은, 왕을 요구한 사건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은 왕을 요구한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득이 하게 왕을 세울 것을 허락하시지만, 왕에게 3가지 금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신17정을 보면, 말을 많이 두지 말라,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은 금을 많이 가지지 말라였습니다. 결국, 이 3가지를 금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리어 우상을 의지했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고 다른 어느 것도 누구도 진정한 도움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이 북왕조 이스라엘로 하여금 패망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잘못인 것은 알겠는데, 패망할 정도의 죄인가? 이 점을 여러분에게 2가지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패망의 죄가 되는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의지하 말고 자신 만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시146:3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여기서 귀인들이란 힘과 권세있는 자들, 그리고 세상의 힘과 권세를 말합니다. 또, 사2: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즉, 사람과 사람들의 방법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잠3:5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또, 고후1:9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고 그 어떤 것도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큰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내가 방법이 될 수 있고,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과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위기는 왜 찾아오고, 문제 때문에 왜 힘들어 하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방법이 될수 없고,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타락이 바로 이러한 착각과 교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까? 자신이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존재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이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교만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방법으로 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교만이고, 심각한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의 의미, 또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하나님만을 힘과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만을 복의 원천으로 삼고, 의지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만을 힘과 도움을 삼고, 하나님만을 유일한 복의 원천으로 삼고, 그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 다운 삶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2.하나님을 배반함
 북왕조 이스라엘을 패망하게 한 어리석음 두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16절을 보면, ‘사마리아가 그들의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라고 말을 합니다. 사마리아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따라서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말입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배반했을까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났나요? 아니면, 제사와 절기를 지키지 않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을 버리거나 떠나거나 제사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말을 합니다. 과연 무엇을 염두하시고 하는 말일까요? 우상숭배일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왜 배반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은 언약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 노릇(의지와 도움) 해주겠다는 언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백성답게 살겠다(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복된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고 그래서 배반이 되는 것입니다. 더나가서 하나님 백성되기를 거절하는 것이기에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없습니까? 없다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입으로 하나님을 부인 한적이 없기 때문, 다른 종교를 가진 적이 없기 때문, 주일을 어긴 적이 없기 때문, 정당한 헌금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 봉사와 수고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 규칙적인 경건생활 곧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배반한 적이 없다고 말하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순종함을 생각하고 답을 하셔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루 하루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하루도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만일 순종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을 외면하고 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왜 하나님께 대한 배신입니까? 그 이유 역시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언약을 맺었습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 노릇 잘해주겠다는 언약이고, 우리 입장에서 하나님 자녀답게 살겠다는, 즉,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앞에 순종하겠다는 언약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난 그런 언약을 맺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로한 그 자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여러분이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곧 언약을 파기하는(물론, 파기가 되지 않는 언약) 행위이며, 결국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버지 되어주심을 거절하는 것 그 자체가 나무나도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은 단순히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기 위한 수준 낮은 수단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칭찬과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순종은 우리들이 기쁨과 감사로 마땅히 지켜야 할 수준 높은 의무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고, 언약을 맺을 만한 자격도 되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어주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리는 일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3.회개하지 않음
 북왕조 이스라엘을 패망하게 한 어리석음 세번째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나니’ 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1차적으로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이 하나님의 진노의 창고에 가득 채워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차적인 의미로는 북왕조 이스라엘이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다되도록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패망이 확정된 것입니다. 이렇듯 회개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간에 여러분이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이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 잠들기 전이라 안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그러면 정말 회개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럴리 없습니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개 할 것이 없다는 것은, 회개를 못할 정도로 신앙이 무너지고 병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그리고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놓치면 우리들의 심령이 강퍅해지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사울왕의 경우입니다. 사울왕은 회개를 놓친 사람입니다. 그 결과 그는 갈수록 강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강퍅하고 완고하게 되는 것은 회개해야 할 때에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회개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회개하십니까? 회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답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하는 회개가 올바른 회개일수도 있고, 올바르지 못한 회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과연 회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시, 죄로 인해서 받게 될 벌이나 진노가 무서워서, 그래서 그것을 피하기 위함입니까? 물론, 우리들이 신앙을 처음 갖게 될 때의 회개는 그런 의미에서의 회개이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후로는 그러한 회개는 올바른 회개, 참다운 회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종 종 어린 자녀들이 뭔가를 잘못하면 부모들이 무섭게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금방 잘못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네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왜 잘못했다고 말을 합니까? 그것은 부모에게 야단을 안맞기 위함이고, 벌을 피하기 위함일 뿐인 것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마3장입니다. 보면,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외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러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왔고, 회개함의 증표로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받으려는 무리 중에 누가 있었냐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이 그들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입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많은 백성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회개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많은 백성들의 회개는 요한의 의도에 맞는 회개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회개의 목적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진노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꾸중한 것입니다. 그들의 회개가 올바른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회개가 아닌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이와같은 이유에서 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동일한 죄를 반복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르고 참다운 회개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더 하나님 자녀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죄로 인해서 탄식하시며, 마음 아파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앙의 이유는 하나님을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의 회개는 죄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회개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북왕조 이스라엘은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고, 순종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패망이 확정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북왕조 이스라엘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어, 어리석은 자의 지팡이를 들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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