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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호세아서강해39)
 본문말씀 : 호13:4-8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3.27
조회 : 8,599   추천 : 0  
본문 : 호13:4-8절   호세아서강해39
제목 :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의 글 중에 ‘집 지은 사람의 잘못일까?’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자신의 어린시절 여동생을 회상하는 글이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도자기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하루는 아주 작고 예쁜 색상의 도자기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도자기를 본 톨스토이의 여동생은 그것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울면서 도자기를 달라고 계속 졸라대자 아버지는 마지못해 도자기를 여동생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도자기를 받은 여동생이 너무 좋았고 오빠인 자신에게 자랑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달려오다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져 도자기를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깨진 도자기를 보며 여동생이 울기 시작했고, 울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문턱이 너무 높잖아 누가 우리 집을 이렇게 지었어?’ 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도자기를 깨뜨린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집을 지은 사람의 책임이라고 우긴 것 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북왕조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로 인한 심판의 책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과 심판받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고, 더 나가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를 배우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4절은 ‘그러나’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과 연관이 된다는 말이며, 반대의 말을 하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에 언급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했다는 이야기이고, 그 결과 3절처럼 아침구름 같이, 이슬 같이, 쭉정이 같이, 연기 같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범죄와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4절이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선택하신 날부터 범죄하여 심판을 경고받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이 그들의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4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고, 5절에 광야 마른 땅에서 이스라엘을 알았고, 여기서 알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모든 은혜로운 일들을 말합니다. 계속해서 6절을 보면, 배가 부르도록 먹여 주셨습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물론, 광야 이후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의 노릇을 변함없이 잘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특별히 북왕조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 노릇을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했고, 스스로 교만해졌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여로보암2세 때 북왕조 이스라엘은 대단한 부귀와 영화의 극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귀 영화로 인해서 교만해졌고, 그 부귀 영활르 주신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잠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떤 일이든 잘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어떤 일이 안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노릇을 잘했다는 것과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 노릇을 잘못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노릇을 잘 하신 것과 반대로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 노릇을 잘못했다는 점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앞으로 받게 될 심판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분명히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심판받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적어도 하나님 책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날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노릇을 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구 책임입니까? 바로 북왕조 이스라엘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7-8절을 보면,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해서, 사자같고, 표범같고, 곰 같이, 암사자 같이 삼키겠다고 말을 합니다. 즉, 사나운 짐승들과 같은 이방인들 곧 앗수르를 통해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심판 곧 멸망이 그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멸망을 당하게 될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착각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북왕조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범죄를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이 이방나라의 우상들보다 힘이 약해서 멸망한 것 아니냐?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자기 백성을 지키지 못하는것 아니냐? 하나님이 신실하지 못하신 것 아니냐? 고 착각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은 그런 착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광야에서 마실 것 먹을 것이 없을 때,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이후에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고 데리고 오신 것이 아니냐? 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상숭배에 빠진 이유 역시, 하나님으로는 부족하다는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멸망의 모든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원하지 않는 일과 결과에 대해서 내 책임이라는 생각보다는 다른 누구 때문이고, 하나님 때문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먼저, 내가 아닌 다른 누구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를들면, 내가 지금 힘든 것, 내가 지금 불행한 것, 내가 지금 어려움을 격는 것..., 등 범죄한 인간은 끊임없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를 했습니다. 예를들면,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왜 먹었냐고 물으실 때, 아담은 하와 때문이라고 했고,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책임은 없는 것입니다. 또, 불순종한 사울왕에게 왜 불순종했냐고 했을 때, 사울왕은 백성들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1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장사를 하지 않고 땅에 묻어둔 이유를 주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죄성을 가진 인간의 잘못된 성향입니다. 또, 혹시, 내가 격는 어떤 일에 대해서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말씀 드린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된 책임을 하와에게만 전가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탓하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는 니느웨성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불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이 상하고 괴로운 것을 하나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들에게는 이런 일이 없을까요? 혹시, 지금 여러분도 내 안에 있는 어떤 실패, 불행, 불만족스러움을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구 때문에..., 또 하나님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의외로 많습니다. 가장 좋은 예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게 하나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종 종 기도 가운데 ‘하나님 왜 이런 일을 격게 하십니까?’ 라고 고상하게 기도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어떤 일을 격게 되는 내 안의 이유를 찾으려는 마음도 분명히 있지만, 하나님께 책임을 묻으려는 의도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누군가에든, 하나님에게든 책임을 전가해서는 않됩니다. 도리어 내안에서 이유와 책임을 찾을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에 유익이 있습니다. 

  2.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이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어떤 불행이나 불만도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 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제3계명입니다. 그러면 제 3계명은 무엇입니까?  ‘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는 계명입니다. 참고로, ‘망령되다’ 는 말은 ‘늙거나 정신이 흐리어 말이나 행동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라는 뜻입니다.(비슷한 말로는 노망) 그렇다면, 이 3번째 계명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우리들이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사용하는 경우가 종 종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약속하거나 맹세를 할 때입니다. 우리들이 누군가와 약속을 하다보면, 우리의 약속을 잘 안믿어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조금 더 강하게 맹세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들이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경우에는 종 종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유익이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일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들이 갑작스럽게 어려움이나 실패를 격게 될 때, 가장 자주하는 말이 뭡니까?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에는 ‘맙소사’입니다. 맙소사라는 말은 대단히 절망스러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영어권 사람들은 ‘oh my god' 이라고 말을 합니다. 즉, 절망을 표현하는데 하나님이 쓰여진 것입니다. 또는, 영어권에서는   또는 ‘Jesus Christ’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빌어먹을’ 이라는 분노의 표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어권 사람들이 가끔씩 누군가에게 욕을 할때에도 ‘God damn’(신의 저주를 받아라)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절망, 분노, 욕, 저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계명인 것입니다. 

 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으로 농담하는 일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젊은 층에서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진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의 인물의 성을 빼고, ‘갓’을 넣어 부르는게 유행이 되고 있습니까? 예를들면, 갓경규, 갓동민, 갓효리..., 등 또, 군대에 다녀오신분들은 다들 아실것입니다. ‘고참은 하나님과 동기동창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고, 농담거리 삼는 것 역시 금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성경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아십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40여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된 말씀이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필사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예로,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할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쓰기전마다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펜과 잉크를 새것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이름을 썼다고 합니다. 또, 과거의 유대인들은 성경을 소리에 내어 있다가도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읽지 않았습니다. 또는 여호와를 아도니아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통이 1000여년이 지나, 히브리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라는 웃기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가 맞다, 야훼가 맞다, 는 식의 웃기는 논쟁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얼마나 경외하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이름에 대해 경외심을 갖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3계명은 더 중요한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불평을 들으실 만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라고 가르쳐 주는 계명입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나쁜 것을 계획하시거나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불평 들으실만한 일을 계획하시거나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선하지 않은 결과를 만드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들에게 불만을 품게 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들에게 원망, 불평을 듣게끔 우리를 대우시고,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가서 기자들을 보십시오! 시100:5절에 보시면,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우리를 향한 인자와 성실하심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23편에서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고 또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평의 대상이 될수 없고, 불만의 대상이 될수 없고, 어떤 부족함의 원인이 될수 없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고, 우리를 향한 계획도 선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심에 선하시고, 우리를 항상 복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를 감사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감동케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채우시고, 사랑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고통과 시련의 순간속에 있어도, 어떤 순간속에서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함으로 망령된 분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3.감사와 찬송을 드립시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왕조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 때문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될수 없고, 모든 부족과 결핍의 원인이 될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까지 살면서도 많은 어려움과 시련, 원하지 않는 순간들을 격었지만, 앞으로도 우리들은 계속해서 어려움과 시련, 원하지 않는 순간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순간들 앞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는 도리어 그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면 안되고, 그 순간 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가는 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순간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욥처럼 말입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의 순간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선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렸습니다. 또, 바울과 실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이들은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라는 믿음, 나를 단련한 후에는 순금같이 나오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감사와 찬송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 다우신 분이시며, 그 이름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물론, 누군가에게도 책임을 전가하는 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3)나를 먼저 돌아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을 갖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음으로 날마다의 삶이 어떠하든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광돌리는,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날마다 경험하고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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