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2:1-25절 열왕기상 강해3
제목 :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열심과 열정을 가져야 무슨 일에든 잘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과 열정 없이는 잘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열심과 열정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심과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던지 ‘잘하는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업을 잘하는 비결, 건강해지는 비결, 부자가 되는 비결, 예뻐지는 비결, 공부잘하는 비결..., 등 무슨 일이든 비결을 알고 시작하는 것과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열심이 하고, 열정을 가진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반드시 ‘잘하는 방법’을 아는 일이 선행되어져야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다윗이 자신의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왕의 역할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현실의 신앙의 자리임을 아는 것!
오늘 본문은 다윗이 죽음의 날이 가까이 오자, 자신을 이어 왕이될 솔로몬에게 크게 2가지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첫째는, 3-4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5-9절에 사람에 대한 유언을 합니다. 더 자세히 말을 하면, 5절에 요압을 죽이라는 것과 7절에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라는 것과 9절에 시므이를 지혜롭게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0-12절을 보면, 다윗은 40년을 통치하고 70세의 나이로 죽게 됩니다. 이런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의 죽음입니다. 다윗의 죽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윗의 죽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죽음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경험해보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러고 누구도 죽음을 거절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고, 외면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마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도 70년의 인생을 살고 결국 죽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모든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던 다윗도 현실을 벗어나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현실안에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현실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이라는 나무가 자라는 밭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고, 신앙이라는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이 그 인생속에서 만나는 다영한 현실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여러분의 인생이 신앙의 훈련소이고,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격게 되는 다양한 현실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훈련시키고 자라게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꿈속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상상속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생각속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신앙생활은 깊은 산속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기도원에서 하는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현실안에서 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하고 너무 뻔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합니까?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현실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때때로 우리들이 마주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피하고 외면하려 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답답한 현실, 괴로운 현실, 눈물나는 현실, 실망스러운 현실, 상처되는 현실, 마음이 짖눌리는 현실, 신경쓰이는 현실..., 우리는 정말 원하지 않는 현실들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서 하루라도 빨리 도망치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격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신앙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앙은 현실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어떻게 신앙이 자랄까요? 예배드릴 때,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기도할 때..., 맞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신앙은 주어진 현실에서 예배에 주신 은혜, 말씀으로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 기도 가운데 주신 소원과 결심을 품고 감당할 때 자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다양한 현실속에서 우리들의 신앙은 자라게 됩니다. 다윗을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고,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신앙은 어떻게 자랐을까요? 처음부터 신앙이 대단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신앙은 어떻게 자라고 성장했을까요? 그가 격은 모든 현실을 통해서 그의 신앙은 자라고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격은 현실은 어떤 것입니까? 막내로 태어나 구박받으며 살았던 현실, 아버지와 형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현실, 골리앗과 싸워서 이겼던 현실, 그로 인해서 사울왕에게 시기와 미움을 당한 현실, 그래서 사울왕을 피해 도망다닐 수 밖에 없었던 현실, 자신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울로 인한 다양한 감정과 갈등이 있었던 현실, 자신이 죽인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에 가서 미친척하며 아부해야만 했던 현실, 상처 투성이었던 사람들을 공동체로 받아야 만 했던 현실, 그리고 그들에게 원망을 들어야만 했던 현실,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현실, 자식들 사이에 음행과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봐야만 했던 현실, 그러나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현실, 아들의 반역에 궁에서 망명해야만 했던 현실, 이불을 덮어도 따듯하지 않은 병든 몸이 된 현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현실..., 결국, 다윗의 신앙은 그의 전 인생 가운데 격어야만 했던 헤아릴 수 없었던 다양한 현실로 인해서 성장하고 자란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 성경에 소개되는 모든 인물들의 인생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참 다양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현실 가운데서 우리는 비로써 신앙의 실력을 확인하게 되고, 신앙이 자라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야구는 9회를 합니다. 만일 회수의 제한이 없으면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테니스는 규격 코트가 있습니다. 만일 규격 코트가 없이 경기를 한다면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마라톤은 42.195km를 달립니다. 거리의 제한이 없다면 실력을 확인 할 수 있을까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격게 되는 다양한 현실들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의 실력을 확인 할 수 있고, 신앙이 자라고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피하거나 도피하려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현실은 어떤 것입니다. 질병, 상처, 실망, 낙심, 기쁨, 감사, 행복, 눈물..., 어떤 현실이든지 간에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고 성장하기 위한 순간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피하거나 도망치고, 회피하고, 벗어나려 하지 말고, 주어진 현실속에 마땅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현실속에서 마땅한 신앙의 삶은 무엇일까요?
2.말씀에 순종하는 것!
요즘 고속철도는 대단히 빠릅니다. 시속이 350km 이상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1시간에 350km를 갈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460km) 90분이면 갈수 있다는 말입니다. 참 어마 어마한 속도입니다. 그만큼 기차의 힘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레일 위를 달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기차라고 해도, 레일을 벗어나서는 속도를 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이고, 의인이라 인정을 받고, 성령이 함께 하는 존재이지만, 한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그 조건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로, 3절을 보면, 다윗은 솔로몬에게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할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솔로몬의 왕위의 번영과 더나가서 이스라엘의 축복과 부흥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또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다양한 현실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함’이 신앙의 자람과 성장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신앙적인 행위와 의무만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을 잘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현실안에서 순종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래서 많이 알고, 암송도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순종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배움으로 알고, 기억한다고 해서 신앙이 자라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우리들이 얼마나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순종은 마치 고속철도의 레일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좋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 최고가 되고자 하는 욕심, 나의 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 등 우리들이 욕심을 내면 낼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들면, 아담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또한, 사울왕은 왜 순종하지 못했을까요? 짐승에 대한 욕심, 백성들에게 박수받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신앙생활이란 자기 욕심과의 싸움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욕심을 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신뢰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신뢰할 때만 할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순종하는 못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합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합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신뢰하십니까? 정말 우리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들에게 순종하지 못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100% 신뢰해도 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럴 때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종과 관련해서 우리들이 조금 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종은 우리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라, 마땅이 주어진 의무이며 책임이라는 점입니다. 왜 순종이 의무이며 책임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크신 은혜와 사랑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구원하시고, 십계명 준수를 요구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러기에 순종은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너무나 마땅한 의무이며 책임인 것입니다. 또한, 순종은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순종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구원하신 사람들, 은혜 베푸신 사람들에게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수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순종은 특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순종을 특권이라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부담이나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순종은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다양한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마땅함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신앙생활을 잘하게 되는 것이고, 자라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3.방해 요소를 제거!
셋째로, 5, 8절을 보면, 다윗은 솔로몬이 이끌고 나갈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 2명의 대적자들을 지혜롭게 제거할 것을 말을 합니다. 하나는 군대장관 요압이고, 다른 한사람은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입니다. 먼저 요압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요압은 사실 실력이 있었던 사람이고, 어느 정도 나라앞에 공을 세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압의 결정적인 단점은 하나님의 나라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관계, 이익을 먼저 생각한 기회주의자입니다. 무슨 일이든 이익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변덕이 심한 사람입니다. 항상 이런 사람이 어디서나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요압을 처리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은 시므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망명을 갈 때, 따라다니면서 다윗을 저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사람이고 위험한 사람입니다. 요즘식대로 말하면, 악성루머, 댓글을 퍼트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 이스라엘의 부흥에 큰 걸림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스므이를 지혜롭게 처리하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13-25절을 보면, 솔로몬이 그의 형 아도니야를 죽이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사실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반역을 용서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뜻밖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17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인 밧세바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윗왕의 몸종이었던 수넴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합니다. 과연 아도니아는 왜 아버지의 몸 종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했을까요? 아마 2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첫째는, 아버지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함으로 자신이 다윗의 실질적인 후계자라는 묵언의 행동을 하기 위함이었으며, 적어도 솔로몬에 의해서 쉽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도니야의 그러한 행동을 새롭게 출범하는 솔로몬 정부와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죽이게 됩니다. 결국, 솔로몬은 요압, 시므이, 아도니야를 죽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나라의 번영과 안녕을 방해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그래서 신앙이 자라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다양한 현실속에서 나의 신앙을 방해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안에는 요소들, 그리고 환경적인 요소들... 등 방치해 두고는 결코 신앙생활을 잘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욕심, 이기심, 돈을 사랑하는 마음, 세상에 대한 갈증, 미움, 증오, 과거의 상처, 자존심, 게으름, 음욕, 명예욕..., 등을 통해 신앙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자신의 신앙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요소들이 무엇인가를 잘알고, 그것들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신앙은 현실이라는 밭에서 자라가게 됩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주어지는 다양한 현실을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닌, 주어진 현실속에서 신앙의 마땅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2)더 정확히 말을 하면, 주어진 다양한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또한, 나의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현실을 신앙의 점검, 성장의 기회로 삼으로 날마다 신앙이 성장해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