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왕상1:32-53절 열왕기상 강해2
제목 : 화평케 하는 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천국을 한마디로 말해보라면 무엇이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천국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를 합니다. 먼저 신약성경의 경우에는 천국을 눈물과 사망이나, 애통함이 없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게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 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국은 평화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나라를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평화를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어떤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솔로몬이 왕이 되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한 후,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책임자들을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32절을 보면, 그 일을 받을 책임자들이 소개됩니다. 즉,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다윗의 시위대장인 브나야입니다. 그리고 33절 이하를 보면, 다윗은 이들에 몇가지 지시를 합니다. 먼저, 자신의 노새에 태워 성막이 있는 기혼을 갈 것과, 거기서 기름을 부을 것과 나팔을 불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고 공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솔로몬을 다시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보좌에 앉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자들은 다윗의 말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41절 이하를 보면, 스스로 왕이라고 공언했던 아도니아와 함께 한 사람들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49절을 보면, 아도니야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을 치고, 50절을 보면, 아도니야는 제단의 뿔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51절 이하를 보면, 아도니야가 두려워 제단 뿔을 잡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불러 용서를 말해주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장 먼저 중요하게 묵상해야 할 질문은, “다윗은 왜?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웠는가?”입니다. 물론, 이 말은 하나님께 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는가? 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솔로몬이 다른 형제들보다 특히 아도니야보다 자격과 조건이 더 좋아서? 사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는, 나단과 밧세바의 설득 때문에? 또는 다윗이 솔로몬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서?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먼저, 다윗의 결정이 옳았는가? 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아도니야는 어떤 사람입니까? 6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서열상 장남과 같은 위치에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첫째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살인을 당했고, 2째인 길르압(다니엘)은 어렸을 때 죽었을 것으로 예상하고, 셋째인 압살롬은 반역 중에 요압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서열상 아도니야가 장남의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왕의 후계자로 손꼽힐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용모 역시 일국의 왕이 되기에 충분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도니야는 아마도 자신의 형들이 모두 죽은 뒤부터 왕이 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한 사람입니다. 5절을 보면, 아도니야가 얼마나 철저히 자신이 왕이 되는 일을 준비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50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군대의 총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던 군대장관 요압을 포섭했으며, 신앙적인 지휘권을 가진 제사장 아비아달을 이미 자기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에 찬성함으로 왕으로 추대 되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상3장을 보면, 솔로몬 대략 다윗의 10번째 아들 정도 됩니다. 그것도 정식 부인의 아들로 난 아들이 아닌, 밧세바, 즉, 남의 아내였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러 저러한 정황으로 보아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왕이 되기 위한 준비 역시 전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나 생각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솔로몬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등 떠밀려 왕이 된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래도 한나라의 왕이라면 누가 더 그럴듯하겠습니까? 아도니야 일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올바른 선택을 한것일까요? 세상의 안목으로 볼 때 올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나 올바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솔로몬을 왕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하나님이 여러 모양으로 훨씬 더 나은 아도니야가 아니,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2.그 이유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솔로몬이 왕이된 이스라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입니까? 변방의 작은 민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굽나라에 400년 이상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나라이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을 보여주기 위한 나라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나라인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기억해 보십시오! 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바로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아도니야와 솔로몬중에 ‘평화의 나라에 더 적합한 인물이 누구입니까?’바로 솔로몬입니다. 아도니야의 경우,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사람을 포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될 자격이 충분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높이기 위해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을 앞세워 힘과 권세를 과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자신이 왕이라고 공식화한, 다시말해, 반역을 일으킨 아도니야를 용서합니다. 50절을 보면, 솔로몬을 두려워한 아도니야가 제단으로 가서 제단뿔을 붙잡습니다. 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아도니야가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반역이었고, 반역자인 자신이 죽게될 운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권에 반기를 들고, 반역을 한 사람들은 숙청을 하는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이 시대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몇해전 북한의 김정남씨가 살해를 당했습니다. 김정은의 통치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세상 나라들은 반대자, 반역자는 반드시 죽이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래야지만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수 있기 때문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53절을 보면, 아도니야를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용서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솔로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대상22:9절을 보면,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왕을 세운 것은,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우시고자 하는 나라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고, 평화를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바로 평화를 이루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윗,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도니야가 아닌, 솔로몬을 왕으로 선택한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힘과 권력이 원리가 되는 나라가 아닌, 평화의 나라로 곧 천국을 보여주는 나라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평화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갈등과 분쟁과 다툼과 싸움, 전쟁, 불화..., 이러한 것들을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화평과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이유와 핑계거리라도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평화의 나라를 세우고,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으로 인해서 평화와 화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으로 인해서 갈등과 대립과 반목과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화평케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화평을 깨트리는 사람인지 자신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여러분으로 인해서 가정이 평화의 나라가 되고, 직장이 평화의 나라가 되고, 교회가 평화의 나라가 되고, 여러분이 있는 어디든 평화의 나라가 되게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이 있는 곳을 평화의 나라로 세우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화평, 평화의 나라를 세워가는 사명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을까요? 대통령, 정치인, 교수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화평과 평화의 나라는 학식으로, 세상 경험으로, 정치로, 물질로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전쟁을 일으켜 평화를 깨트리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못 배운 사람 무식한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평화의 나라를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평화의 나라는 참된 평화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떻게 세워지는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만이 세울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3.어떻게 평화의 나라를 세울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들이 있는 그 곳을 평화의 나라가 되게 하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소원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아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야 하며, 기도제목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간절하 소원과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화의 나라를 소원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둘째로,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되게 할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화평케하는 사람이 되고, 퍙화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십자가’ 인 것입니다. 이 점을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먼저, 고후5:18절을 봅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롬5장을 보면,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다고 말을 합니다. 즉, 화평이 아닌 불화의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화의 관계를 누가 화평의 관계로 만드셨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평을 이루고 평화의 나라를 세우셨습니까? 이제는 엡2:16절을 보십시오! 보시면, ‘십자가로 이 둘을 한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찾으셨습니까?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화평과 평화의 나라를 주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어떻게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 평화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라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부인과 자기 권리의 포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희생인 것입니다. 종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자신의 권세와 권리를 끝까지 고집하셨다면, 희생하지 않으셨다면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평화의 나라를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자신의 권리와 자기를 부인할 때, 희생하셨을 때,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시고, 우리들에게 평화의 나라를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역시 모든 사람과 화평케 해야 할 사람이며, 우리들이 머물고 있는 모든 곳에 평화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처럼 자기를 부인, 자신의 권리의 포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의 버려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에게 희생하는 삶,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화평이 이루어지고, 평화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 이기주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희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미움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분열이 생기고, 싸움이 생기고, 불행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는 화평이 없고, 평화의 나라가 세워질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내가 왜? 희생해야 하냐고 묻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희생하심으로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고, 여러분이 평화의 나라를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이 머무르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십시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십시오!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버리십시오! 희생하십시오! 항상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비로서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 여러분이 있는 그곳을 평화의 나라로 만드실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부인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안에 분열과 갈등과 다툼의 시작이 바로 작은 말 한마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1:19절을 보면,‘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즉, 말을 주의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의 자기 부인, 말의 권리 포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의 주의 하십시오! 때로는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내 말을 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경청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럴 때 비로서 우리는 화평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평화를 만들어 내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 둘째는 평화를 깨트리고 불화를 만들어 내는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가 있습니다.
본문과 삶
1)우리는 솔로몬처럼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2)그러기 위해 우리들은 자기를 부인하고(희생)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특별히 말의 권리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3)서로에게 종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나라를 세우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있는 그곳을 평화의 나라로 세워가는 임무를 잘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