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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말씀을 붙드는 삶!(호세아서강해37)
 본문말씀 : 호12:7-1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3.13
조회 : 8,086   추천 : 0  
본문 : 호12:7-14절   호세아서강해37
제목 : 말씀을 붙드는 삶!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워너메이커를 아실겁니다. 이분은 20세기초 세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을 세웠으며, 고객은 왕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위대한 사업가입니다. 그가 백화점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 한 기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존 워너메이커 회장이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내가 10살때 2달러 75센트를 주고 성경 한권을 구입했소.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워너메이커는 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붙잡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따라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를 때, 우리의 인생과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더 자세히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말씀을 따르지 않음
 우리는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을 7절에서 ‘그는 상인이라’ 여기서 그는 북왕조 이스라엘이고, 상인이라는 말은 가나안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백성인 북왕조 이스라엘이 가나안사람과 동화된 것(우리식대로 말하면, 세속화 된 것)을 말합니다. 이 점을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의 백성된 북왕조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처럼(바알우상의 발상지) 바알우상을 숭배하고 그들처럼 7절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고.’ 즉,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8절처럼 교만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다름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지난 주간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다름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북왕조 이스라엘이 다름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특권의식은 있었지만 하나님 백성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고,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지 못했고, 이방인의 삶이나 부요함에 대한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고..., 등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삶의 방법과 기준이 이방인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방인들과 같은 삶의 방법과 기준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저울을 속이고(7절), 부자가 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8절)..., 등 하나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과 같은 삶의 방법과 내용과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다름, 더 나음을 나타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된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빛과 소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세상의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같은 방법, 같은 목표, 같은 내용의 삶, 같은 가치관, 같은 기준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5장을 예로들면, 살인, 간음, 맹세, 복수, 사랑의 대상에 대한 기준이 같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준이 같기에 다름을 나타낼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같은 기준으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10절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왕조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기준을 따라 살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다름을 나타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다름을 나타내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인 다름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면 다름을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본문 중 하나가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꾸중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꾸중하는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먼저, 고린도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장점이 많았던 교회입니다. 예를들면, 고린도교회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열정도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매우 많은 성령의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예언과 방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을 하고 많은 성도들이 예언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교회는 성도의 교제, 오늘날로 말하면, 셀, 목장, 구역과 같은 모임이 대단히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에는 베드로, 아볼로와 지도자들의 가르침도 대단히 풍성했던 교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어쩌면 바울이 세운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지적이고, 능력과 은사가 많고, 부족함이 없는 가장 현대적인 교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 이런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떠난지 약 3-4년이 지난 후에 고린도교회안에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들면, 분쟁(1-4장), 음행(5장-서모), 성도들끼리의 법정 소송, 사기, 성적타락(6장), 심각한 외도와 이혼(7장), 교만(8장), 우상숭배(10장), 차별(11장),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12,14장).., 등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도리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악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이처럼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사고인 ‘이원론 사상’ 때문입니다. 영적인것과 육적인것의 이원화, 쉽게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신앙 따로, 삶 따로 라는 이원론 사상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교회와 교회 모임에서는 성도로,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게 된 것입니다. 정확히 북왕조 이스라엘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고전14장의 방언과 예언의 관계성을 통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전14장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방언을 다소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예언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먼저, 고전14:6절을 보면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6절에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절 어찌 알게 되리요, 8절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9절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요, 11절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외국인이 되고..., 등  그렇다면,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방언이 나쁜 것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선하고 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5절을 보면, ‘너희는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울이 방언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을 예를 들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또 반대로, 고전14:1절을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또, 12절에서도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즉, 예언이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예언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방언을 다소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예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을 하면,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할 것을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바울이 방언을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방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방언이 무엇입니까? 방언은 우리들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언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적인 언어이며, 신령한 언어입니다. 그런데 방언을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은사들 가운데 가장 신적인 특징, 또는 신적 간섭이 가장 잘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여러 가지 은사 가운데 가장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는 은사입니다. 그렇다면, 예언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예언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방언을 다소 부정적으로 말을 하고, 예언을 하라고 강조하는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결국, 바울은 방언과 예언이라는 은사를 통해서 단순히 어떤 은사가 더 좋은 것이냐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며 따라 살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 생겨난 다양한 문제점 들, 곧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고 도리어 더 악한자로 살아가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지 못하고 놓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의 다양한 자리와 삶의 다양한 순간속에서 다름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과 원칙과 방법과 원리로 삼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2.말씀을 붙잡고 따라가야 할 이유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린대로 그래야만 다름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말씀만 붙잡고 따라가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만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원칙이며 표준이며 좌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원칙과 표준이 될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 이기 때문입니다. 딤후3: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성경을 통해서 계시 하셨다는 말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 입니다. 둘째로, 완전하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에 성경은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원칙이며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또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권위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가치임을 알고, 끊임없이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실 것과 땅을 선물로 주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을 믿음으로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말씀을 추구한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 예수를 믿겠다는 서약의 의미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시1:1-2절을 보면, ‘복있는 사람’ 으로 시작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악인의 꽤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좌표로 삼고, 인생의 낮이든 인생의 밤이든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할 때, 비로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유다왕 요아스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7살이라는 최연소에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는 왕으로서 유다나라를 신앙으로 잘 통치했습니다. 예를들면, 요아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성전을 보수하며, 백성들을 신앙으로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갈수록 좋아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왕하12:2절을 보면, ‘여호야다가(대제사장)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 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아스는 여호야다를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추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요아스는 훗날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예를들면,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뜻을 돌이키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을 신앙으로 양육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기 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신앙이 좋았던 요아스왕이 처참하게 신앙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유일한 원칙이며, 표준이며 좌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다름이 있고,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삶을 소원하십시오. 

  3.영적 전쟁의 본질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과 표준과 좌표를 삼고, 하나님의 말씀만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전쟁을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단순히 죄를 짓느냐 안짓느냐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느냐 또는 놓치게 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선악과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후 사탄은 인간을 찾아와 달콤한 말로 유혹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전쟁에서 인간은 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북왕조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영적전쟁에서 지고 말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둘째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영적전쟁을 치루셨고,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전쟁은 어떤 결과만을 의미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느냐 놓치느냐의 싸움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현실, 어떤 환경, 어떤 관계속에서도 말씀을 붙든다면 영적전쟁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씀을 놓치게 된다면, 그것은 영적전쟁에서 지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추구하고, 따라가는 싸움인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신자다움을 지키고, 신자의 자리를 지키는 싸움인 것입니다. 이러한 끊임없는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내 삶의 원칙과 표준과 좌표로 삼아야 합니다. 
  2)그럴 때, 다름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도 신앙의 성장도 있습니다.
  3)또한 말씀을 붙드느냐 놓치느냐의 싸움이 영적전쟁의 본질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추구하는 승리자로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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