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12:7-14절 호세아서강해36
제목 : 다름을 요구하심!
성도들의 삶속으로
차별이라는 말은 좋지 않은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차별화는 오늘날 성공을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차별화에 실패한 상품은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차별화되지 않은 인재는 기업에서 외면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다름 곧 차별화가 경쟁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남들과 달라야 살아남을 수 있고, 남들과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자신들만의 차별화를 상품화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름 곧 차별화가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사람들과의 다름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다름이 신앙이고, 다름이 신앙의 실력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다름을 요구했지만, 그러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통해서 다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왜 다름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름을 이룰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름을 요구하심
먼저, 9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역사속에서 장막에서 생활하던 때는 언제일까요? 출애굽 당시 40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게 하셨을까요?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의 훈련(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1차적인 이유는, 그들의 불신앙을 벌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40일간 정탐을 가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0명이 악평을 했고, 그 악평에 의해서 온 백성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신앙을 들어낸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40일간 장막을 치고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시겠다(호2:14절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벌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 14절을 보면,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고 말합니다. 역시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벌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벌하시겠다고 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 7절을 봅시다. 보면, ‘그는 상인이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북왕조 이스라엘을 말하고, 넓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상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정말 북왕조 이스라엘 전부 상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상인이라는 말은 원문적으로 ‘가나안 사람’ 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결국, ‘그는 상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백성인 북왕조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과 동화(똑같았다)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사람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가나안 땅에 살던 7족속 중에 한 족속이며, 주로 두로와 시돈 곧 베니게에 살며 무역업을 하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가나안은 바알 종교의 발상지이며, 무역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서 윤리 도덕적으로 대단히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무역을 통해서 부요했고, 따라서 대단히 교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북왕조 이스라엘 역시 가나안 사람들처럼 바알우상에 심취해 있었고,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대단히 타락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7절에서는 ‘손에 거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세아가 사역할 당시 북왕조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시대와 결줄 정도로 대단히 큰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요와 번영을 근거로 자신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고 여기는 교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8절에서는 ‘에브라임(북왕조 이스라엘의 대표지파)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라오디게아교회) 내가 제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1절을 보면,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무슨 말입니까? 길르앗과 길갈로 대표되는 북왕조 이스라엘은 불의했고, 거짓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처럼 말입니까? 이방인들처럼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벌하시는 이유는, 가나안 사람들과 동화되었고, 이방인들과 똑같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왕조 이스라엘이 이방인과 똑같아진게 왜 문제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자체가 하나님 백성으로서 죄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이방인과 달라야 한다고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나옵니까?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레11:45절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거룩이 무엇입니까? 자르다라는 뜻입니다. 즉, 다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뜻입니다. 내가(창조주) 너희와(피조물) 다른 것처럼, 너희는 이방인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제4계명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 이 계명 역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이방인과 달라야 할 것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밖에도 부정과 정결에 대한 규례도 역시 이방인과 달라야 할 것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결국, 모든 율법과 계명은 하나님 백성 다움을 요구하고 있고, 하나님 백성다움의 기준은 이방인과의 다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요구인 이방인과의 구별, 다름을 놓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들을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여러분에게 다름이 있습니까?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봅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선택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은 다름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산산수훈입니다. 즉, 마5-7장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다양한 삶이 소개됩니다. 예를들면, 팔복 곧 가난, 애통, 온유, 주림, 목마름, 긍휼, 마음의 청결, 화평, 박해받음을 말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이며, 은혜받은 자로서의 다름에 대한 요청입니다. 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니’입니다. 뭡니까? 이것 역시 다름입니다. 그 외에도 마음의 미움이 살인이다, 마음의 음욕이 간음이다. 오른빰을 치거든, 겉옷을 달라거든, 오리를 가자거든..., 또, 원수를 사랑하라! ..., 등의 모든 말씀의 핵심은 다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에게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으십니다. 예를들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아프지도 않고, 실패가 없고, 웃을 일만 생기고, 소원하는 바를 다 이루고, 부자가 되고, 자식들이 다 잘되고, 오래살고, 만사형통하고..., 등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특별대우를 해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만일 그렇게 해주시면, 하나님이 어디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수 있고, 신앙생활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전도하지 않아도 교회는 부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습니다. 특별 대우는 커녕,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인생이 살면서 격게 되는 똑같은 일들을 격게 하십니다. 예를들면, 세상 사람들처럼, 실패도 하고, 배신도 당하고,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가난하게도 되고, 울 일도 생기고, 자식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하고..., 심지어 더 많은 어려움을 격으며 살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디있니?(시42편)’ ‘불쌍하게 산다’ 라는 조롱과 핀잔을 들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현세적 물질적 특별대우를 해주시지 않을까요? 왜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이 격는 똑같은 현실속에서 살아가게 하실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같은 현실속에 살아야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의 다름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같은 시험문제를 풀어야 실력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을 향해서 다름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기 백성들을 이방인과 다르게 대우하시기 때문입니다. 12-13절을 보면,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를 받았거늘’ 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이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순간과 이스라엘이 약소국으로서 애굽에 지배를 당하는 그 순간에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는 말입니다. 즉,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사랑과 자비와 은총으로 대우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스라엘을 다른 사람들과 이방인들과 다르게 대우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름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다름을 통해서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자신들과 똑같은 현실속에서 우리가 다르게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 신자들이 다르게 살수 있는 이유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런 관심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금씩 찾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의 편지, 향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다름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다름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외면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교회를 다니는 것 말고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안됩니다. 반드시 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들면, 세상의 안믿는 남편과 달라야 하고, 세상의 안 믿는 아내와 달라야 하고, 세상에 안믿는 부모와 달라야 하고, 세상의 사업하는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한 생각도 달라야 하고, 직장을 다는 이유도 달라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목표도 달라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가지려는 이유도 달라야 합니다. 절망스럽고 힘겨운 일들을 만났을 때도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합니다. 물론, 나쁜 쪽으로의 다름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다름이 어느 정도이냐가 나의 신앙의 수준과 실력인 것입니다. 다름 가장 정확한 신앙의 증명인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쉽게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있는 다양한 현실에서 다양한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면 됩니다. 예를들면, 아내된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지? 남편된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지? 부모된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지? 자녀된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지? 일터에서 기쁨이 있는지? 여러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안에 기쁨이 있는지, 고난의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지, 교회안에서 기쁨이 있는지..., 등 그렇다면, 우리들의 다름을 기쁨으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원천이 바로 ‘다름’ 에 있기 때문입니다. 2가지 측면입니다. 첫째는, 내가 다른 존재가 된 것으로 인한 기쁨이고, 둘째는, 내가 다른 삶을 살아감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기쁨을 얻을만한 환경속에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움을 당했고, 박해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삶 곧 사랑과 섬김, 나눔과 배품이라는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도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결코 기뻐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세상사람들과 다른 소원 즉, 하나님께 쓰임받고자 하는 사람들과 다른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성경이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기쁨은 우리의 다름으로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있는 자리에서 기쁨이 있는가를 확인하면, 내안에 다름이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기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다름이 있는 삶을 통해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3.다름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다름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우리들 역시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대로, 이제 우리들이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 하나님께 대한 신뢰..., 등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면 심판을 받으리라...,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라고 여기는 기준속에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미워하고, 무시하는 것도 살인으로 여기는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는 것만 간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삼는 것도 간음으로 여기는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또, ‘맹세를 지키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맹세 곧 약속을 잘 지키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약속이나 맹세가 필요한 삶을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나친 복수를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복수를 포기하는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네 오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고,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살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차원 높은 기준, 높은 잣대를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마5:48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고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 삼아야 세상 사람들보다 높고 엄격한 기준을 갖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삶의 기준과 원칙으로 삼으면 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다름이 있는 삶에 실패한 이유를 말합니다.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즉,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북왕조 이스라엘은 다름을 나타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다름을 나타내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나가서 예수님의 삶의 기준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름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다른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런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다름을 요구하십니다.
2)왜냐하면, 우리를 다르게 대우하시기 때문이고, 그래야 하나님이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3)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삶의 기준과 원리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삶을 삶의 기준과 원리로 삼고 살아감으로 날마다 여러분의 다름을 증명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