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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이제는 인애와 정의를!(호세아서강해35)
 본문말씀 : 호12: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2.27
조회 : 10,194   추천 : 0  
본문 : 호12:1-6절   호세아서강해35
제목 : 이제는 인애와 정의를!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디서나 자격과 조건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취직을 할 때에도 자격과 조건이 요구되고, 금융거래를 하는 일에도 자격과 조건이 요구가 되고, 또,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혜택을 받는 일에도 자격과 조건이 요구되고, 안타깝지만 요즘에는 배우자를 만나는 일에도 자격과 조건이 요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안에서 직분자나 일군을 세우는 일에도 자격과 조건이 요구됩니다. 이처럼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자격과 조건을 요구받을 때가 많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된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갖추어야 할 자격과 조건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남은 인생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더 잘 갖추어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자격과 조건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  
 우리들이 지난 주에 살펴본 이야기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선조인 야곱이 등장한 장면을 묵상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던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 이라는 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늘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권모술수와 방법과 힘을 의지했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바람과 동풍으로 묘사되는 우상과 정치적 외교적인 것들을 의지했습니다. 둘째는, ‘항복하지 않은 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에 끊임없이 간섭했지만 항복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이겨먹으려 했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러한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지 위해서 야곱이 등장했습니다. 이것이 지난주 우리들이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는 장면에서 야곱이 등장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 점을 야곱의 측면에서, 북왕조 이스라엘의 측면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야곱의 측면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야곱을 자기 스스로를 방법과 수단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은, 형의 발 뒤꿈치를 잡고 출생하는 장면이고,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장자권을 취득하는 장면이고, 어머니와 짜고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복을 받는 장면이고, 라반 삼촌의 집에서 재산을 축적하는 장면이고, 형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자신에게 복수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처했던 방법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야곱은 대단히 인간적인 사람이고, 대단히 불신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자격과 조건이 안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복주실 만한 자격과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전 인생속에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녀와 물질의 큰 축복도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4절에 나오는 ‘벧엘 사건’입니다.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형 에서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 하란에 있는 라반 삼촌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벧엘에 도착한 야곱은 길거리에서 돌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환상)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합니다.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고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렇다면, 벧엘에 있는 야곱에게는 이러한 어마 어마한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조금도 축복을 받을 만한 자격도 조건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 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갖추고 있지 못한 야곱에게 축복을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큰 축복을 주신 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북왕조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북왕조 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여로보암 왕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여로보암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우상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 대단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북왕조 이스라엘에는 18명의 왕이 더 통치를 했습니다. 총 19명의 왕이 통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9명의 왕 중에 선한 왕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북왕조의 시작으로부터 북왕조의 멸망에 이르기 까지 북왕조 이스라엘의 역사는 대단히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조금도 하나님 백성답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셨을가요? 그들에게 복을 주지 않으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왕조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위해서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 요나...,등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왕조 이스라엘은 번영의 축복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호세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견줄 정도로 큰 복을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점들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야곱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격과 조건이 되지 않는 야곱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복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자격과 조건이 되지 않는 북왕조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복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니 항복하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들 역시 야곱에게 임한 은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임한 은혜를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인정하십니까?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만일 자격과 조건이 갖추어져서 받은 것이라면 은혜가 아닌 당연한 결과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조금도 갖추지 못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구원 사건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구원은 우리들이 어떤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인간은 구원을 얻기 위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 실력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구원을 얻기 위한 자격과 조건은 무엇입니까? 바로 ‘의’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 의를 이룰 수도 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 조차도 할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엡2:1절대로 말한다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 의를 갖출 수도 노력 조차도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롬5:6,8,10절을 보면,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을 연약하고 경건하지 못했고, 죄인이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원수였던자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애당도 우리 인간은 의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그래서 구원은 커녕, 영원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행위와 노력, 자격과 조건을 갖춤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구원을 얻은 이후에도 여전이 못나고 부족한 모습들을 들어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항상 함께 하시고, 많은 복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럴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일까요? 여러분 중에 난 그럴만 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전혀 그럴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물인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그리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 더나가서 사랑을 받고, 함께하시고, 많은 복을 주시는 것은, 결코 우리의 자격이나 조건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런 자격과 조건이 없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큰 은혜를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은혜임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이것을 쉽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즉, 여러분의 삶에 감사가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감사의 삶을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봅시다. 여러분은 10명의 문둥병자가 고침받은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주님을 찾아온 10명의 문둥병자 모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한사람뿐이었습니다. 나머지 9명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의 차이일까요? 은혜를 아는 유무의 차이인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이 9명의 문둥병자는 아닐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이 9명의 문둥병자들 처럼 은혜를 잊고 사는 사람,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일은 왜 중요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에서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일수 없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수 없게 되기 떄문입니다. 이 점 때문에 북왕조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마5장으로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산상수훈의 시작은 팔복입니다. 그러나 팔복은 복을 얻는 8가지 방법을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자격과 조건이 없는 자들을 은혜로 초대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산상수훈의 첫 대복을 하나님의 은혜의 초대로 시작할까요?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께 받은 풍성하신 은혜를 알지 못하고 빛과 소금의 삶이 될까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모르는데 원수를 사랑하는 삶을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데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의 삶이 가능할까요?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이 점을 성경 몇몇의 인물들을 통해서 조금 더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돌보기 위해 수고와 헌신을 아까지 않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난과 고생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 한번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고, 더욱이 주님을 위해서 변함없는 마음, 변함없는 열심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결국, 순교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런 능력있는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15:10절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고 고백한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위대함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는 칭찬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럴 정도로 다윗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왕들을 평가 기준이 될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 역시,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116:12절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되면,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삶에 실패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받은바 은혜가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최고의 은혜를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삶에 실패했을까요? 그 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40년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에 실패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받은 은혜가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매일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끊이지를 안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하나님 백성다운 삶에 실패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받아 누린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과 삶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이처럼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왜 순종이 안될까요? 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될까요? 왜 작은 시험 앞에서도 신앙의 갈등과 타협을 하게 될까요? 왜 쉽게 분노하고 예민하게 될까요? 왜? 쉽게 교만해질까요? 신앙의 기쁨과 감격이 없을까요? 왜 신앙의 능력이 없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고, 알게 될 때, 여러분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즉, 지금 할 수 없었던 일에 순종할 수 있게 되고,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아무리 큰 유혹 앞에서도 갈등하거나 타협하지 않게 되고, 그리스도인다워 질것이고, 겸손해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기쁨과 감격이 여러분의 삶을 매일 새롭게 그리고 능력 있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고 고백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이제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심과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바로 6절입니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어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회개해라! 똑바로 살아라! 하나님을 사랑해라!  다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렇게 들으셔야 합니다. ‘이제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라.’ 이 점을 이스라앨에 백성을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땅에서 400년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꼐서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애굽 땅에서 해방 곧 구원하셨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애굽땅에서 나오고, 홍해를 건넌 후에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시내산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셨고, 거기서 율법 특별히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이나 십계명은 그들이 애굽에서 구원받기 위한 자격과 조건, 또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자격과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과 십계명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에게 어떤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그들이 제자가 된 것 역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다 부르신 후 그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고 하셨고, ‘서로 사랑하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고 하셨고, ‘너희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 고 요구하셨습니다. 특별히 마5-7장에서는 산상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는 말씀으로부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자가 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은혜로 제자된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무런 자격과 조건을 요구받지 않고,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매주 말씀을 듣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받은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답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도록 주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더 온전히 갖추어 가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이 갖추어 가야한 자격과 조건은 무엇일까요? 6절‘인애와 정의’입니다. 그렇다면, 인애와 정의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사랑과 공의를 말할까요? 아닙니다. 인애와 정의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인애와 정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인애를 잡다보면 정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정의를 붙잡다 보면 인애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애와 정의를 모두 만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책임, 갖추어야 자격과 조건은 하나님을 닮아내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이것이 신앙생활은 핵심이고 본질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우리 모두는 그 어떤 것에도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사랑하셨고 구원하셨고,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물입니다. 이 은혜를 알아야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살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닮아내는 자격과 조건을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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