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24:1-9절 사무엘하 강해29
제목 : 다윗의 실수!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살다보면 다양한 실수를 하게 됩니다. 어떨 때는 웃음이 나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이 저녁에 출출해서 치킨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살 없는 치킨 한 마리요’ 또, 어떤 분이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라면을 찾다 못 찾아 마트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순진한 너구리 어디 있나요?’ 또, 어떤 사람이 주민센터에서 일을 보고 나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많이 파세요!’ 또, 어떤 아이가 모처럼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할머니 오래 사네(세)요!’이렇듯 웃음이 나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실수하게 되고, 그 실수로 인해서 낭패를 볼 때도 있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신앙의 실수를 저지른 다윗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어떤 실수를 했는가를 확인하고, 혹시 우리는 그런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은혜의 중요성
이제 사무엘하의 마지막 장입니다. 참고로, 삼하21-24장은 연대기 순서에 의해서 기록된 내용이 아니라,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된 내용임을 참고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도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다윗의 통치속에 있었던 사건들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이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하신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언제 일까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하21장에 나오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울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과의 평화조약을 깨트리고 그들을 압제하고 학살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은 다윗시대에 3년간의 기근으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또다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을 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 역시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많은 백성들이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을 따랐던 죄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벌하시기 위해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라는 죄를 짓도록 만드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악을 조장하거나, 죄를 짓게하거나, 악의 원인이 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대상21:1절입니다. 보시면,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도록 유혹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다윗이 유혹을 당하는 일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다윗이 인구조사라는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구조사를 결정한 것은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탄의 충동에 의해서 인구조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다윗은 인구조사를 하는 일을 ‘군사령관 요압’ 에게 지시합니다. 그러자 3절을 보면, 요압은 인구를 조사하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4절을 보면, 다윗의 요압의 충언을 거절하고 인구조사를 할 것을 거듭 재촉하게 됩니다. 그러자 8절을 보면, 요압은 하는수 없이 9개월 20일간 인구 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결과 9절을 보면, 칼을 뺄만한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중에는 80만명, 유다사람들 중에는 50만명, 합 130만명이라는 정보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온 땅에 전염병을 돌게 하셔서, 7만명이 죽게 됩니다.(15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은혜의 중요성’ 에 대해서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가 표현되거나 강조되는 구절은 없습니다. 은혜라는 단어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사무엘서를 통해서 지금까지 살펴본 다윗은 그의 통치속에, 그의 신앙생활속에 분명히 오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꽤 훌륭한 왕이었고, 꽤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을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고, 다윗을 기억하여 유다나라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고, 결론적으로 성경을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다윗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인구조사라는 죄를 짓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인구조사가 뭐가 잘못인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것입니다. 물론, 인구 조사 그 자체는 잘못이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구조사는 조세, 군역, 노역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 교회가 어떤 행사를 하게 될 때, 몇 명이 참석하는지를 먼저 파악을 합니다. 그 이유는 회비를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장소를 준비 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먹거리를 준비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일군을 세워야 할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출12장을 보면, 출애굽 당시 집계된 인구의 숫자가 소개됩니다. 즉, 60만명 가량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민수1장을 보면, 모세가 인구조사를 명하고 그 결과 603,550명이라는 정보를 알게 됩니다. 또한, 민26장을 보면, 모세는 40년후 두 번째 인구조사를 명합니다. 그리고 601,730명이라는 정보를 얻게 됩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여러차례 인구조사를 했지만, 하나님은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명령하지 않았더라도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 시대에 이루어진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밝히기 위한 의도, 그리고 하나님께 주실 땅을 분배하기 위한 의도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인구 조사는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7만명이나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인구조사가 문제인 유는 무엇일까요? 이 부분은 잠시 후에 살펴보고, 적어도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고자 한 이유와 의도와 목적이 잘못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괜찮은 왕이고 신앙인이었던 다윗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너무 쉽게 는 큰 죄를 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앞부분에 잠시 언급한 것처럼, 사단이 다윗을 충동할 때, 허용하셨습니다. 은혜 베푸심을 잠시 멈추셨습니다. 물론, 큰 그림으로 본다면 그것도 은혜주시기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욥과 같습니다. 욥은 사단에 의해서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험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잠시 멈춘 것 같은 순간을 격은 것입니다. 하지만 욥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본다면 하나님은 한순간도 은혜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욥의 신앙을 더 크게 만들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자들에게 은혜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은혜를 중단하시는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을 격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편에서 말을 하면, 내 스스로가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즐겨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은혜가 떨어지고, 은혜가 식어진 순간’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하나님은 다윗이 사단의 유혹을 받을 때, 은혜 베푸심을 멈추셨고, 다윗은 은혜가 식은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너무나도 쉽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의 다윗의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다윗의 괜찮음, 다윗의 위대함은 다윗 스스로의 능력이나 실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은혜가 떨어지고, 은혜가 식어지게 되자 그는 너무나도 쉽게 사단의 유혹에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을 열심히 하고, 잘하고 있다면, 그리고 남들보다 더 앞장서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은혜가 식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주심을 멈추시고, 여러분이 은혜가 식어진다면, 여러분도 한순간에 다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지금 여러분 보다 못하고 못난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여러분이 그 누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맞는지 틀린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더 나음이 여러분의 실력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더 많이 주셔서 가능했던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 보다 못난 사람에게 하나님이 여러분과 똑같은 은혜를 주신다면, 여러분 보다 못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내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지 않도록, 우리안에서 은혜가 식어지지 않도록, 더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누릴만한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자만이라는 실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멈추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윗이 은혜가 떨어지고, 은혜가 식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만심(이 정도면 됐다, 자랑과 과시)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왕인지? 자신이 얼마나 힘과 권세를 가진 왕인지? 증명하고 싶었고, 그로인해 백성들에게 위엄을 떨치고 싶었고, 주변 나라들에게 자랑하고 과시하고 싶었고, 스스로 만족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자만심이 그로 하여금 은혜가 식어지게 하고, 사단의 유혹에 패배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범죄 속에서도 자만심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금더 자세히 살펴 봅시다. 삼하11장을 보면, 이스라엘은 암몬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즉, 부하들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서 낮잠을 즐기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목욕을 하는 여인 밧세바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음욕이 생겼고, 밧세바를 데려다가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해서 결국은 충신이었던 우리야도 전사를 가장한 살인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다윗은 늘 전쟁터에 부하들과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 아람과의 전쟁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부하들이 목숨걸고 싸우고 있는 시간에 낮잠을 즐기고, 욕망을 채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은혜가 식었기 때문이고, 더 먼저는, 자만심 때문이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정도면 되었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만심과 교만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은혜를 멈추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은혜가 식어지도록 만들고, 결국 사단의 유혹에 패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자만심은 다윗이 하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실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러시아의 장대높이 선수인 이신바예바를 아실 것입니다. 이 선수는 세계신기록을 26번이나 세울 정도로 실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실력이 대단했으면 그녀의 별명이 ‘하늘을 나는 미녀새’ 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26번째 기록을 세운 이듬해 열린 세계육상대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은 이신바예바가 우승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악의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성적이 부진했던 원인을 ‘자만심’ 이라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기일전한 그녀는 다음 대회에서 27번째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만심(교만)을 가지게 되면 실수하고, 실패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만(교만)을 가리켜서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 라고 까지 말을 했고, 고전10:12절에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만심을 갖게 하고,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자랑하고 과시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됐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아담과 하와도 넘어 뜨렸고, 노아도 넘어 뜨렸고, 엘리야도, 솔로몬도,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히스기야 이스라엘도, 심지어 이러한 방법으로 예수님도 넘어 뜨리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살았던 성도들도 넘어 뜨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넘어 뜨릴 때, 자만하게 합니다. 이 정도면 됐지? 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나의 열심과 잘함을 자랑하고 과시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만하지 마십시오! 교만하지 마십시오! 자랑과 과시에서 벗어나십시오!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러분도 나의 부족한 것을 보시고, 나의 못난 것을 보시고, 나의 채워지지 않은 그릇을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달려가고, 땀을 흘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은혜가 식지 않고, 어떤 사단의 유혹에도 무너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3.경청하지 않은 실수
오늘 본문을 보면, 비록 자만심을 갖고, 교만함을 갖었던 다윗이 사단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한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요압의 말이었습니다. 즉, 3절을 보면,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니이까’ 간단히 말하면, 인구를 조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고 충고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요압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에게 뼈아픈 실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다윗과 같은 신앙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청할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청보다는 자기 말만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특징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사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 결과 가정이 무너지고, 여러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누군가의 말에 경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사의 말에 경청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베스트셀러 책 중에 ‘경청’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의 별명은 이토벤입니다. 평소 남의 말을 듣지 않았던 베토벤에 빗댄 별명입니다. 이토밴은 ‘알았다’는 말만하고 자기편한 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배운 소중한 것은 경청입니다. 그래서 이토밴이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이청득심(以聽得心) 즉,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며 살아갈 때, 자만하지 않고, 은혜가 식지 않고, 사단의 어떤 유혹과 시험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고,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런 그가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 하지 말아야 할 인구조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2)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었고, 스스로 은혜가 식었기 때문입니다.
3)그 이유는 자만이라는 실수, 요압의 말에 경청하지 않은 실수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모두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도 시험도 이겨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