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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항복시키시는 하나님!
 본문말씀 : 호12: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2.20
조회 : 8,629   추천 : 0  
본문 : 호12:1-6절   호세아서강해34
제목 : 항복시키시는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공지영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여류 작가가 있습니다. 이 분이 쓴 책중에 ‘수도원 기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심경과 경험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책 가운데에는 자신이 행복을 찾게된 경험을 소개합니다. 그 대목을 그대로 읽어 드립니다. ‘처음엔 소설가가 된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 다음엔 유명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나는 유명해졌다. 그 다음엔 당연히 돈 걱정이 없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활비를 다 쓰고 나서도 통장에 늘 100만 원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1994년 여름, 내가 낸 세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니 돈도 생겼다. 이제 1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를 자고나면 통장으로 수천만 원의 인세가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부분이 신앙을 회복하게 되고 비로써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 깨달음(행복)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8년이었다. 18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항복합니다, 주님, 하고 써 놓고 보니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항복과 행복은 획 하나 차이의 낱말이었다.’ 그렇습니다. 이 분의 고백대로 하나님께 항복하면 인생이 새로워 질수 있고, 행복하고 복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 항복했던 야곱을 근거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한 꾸중과 권면을 하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항복에 대해 고민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야곱과 같은 북왕조 이스라엘 
 오늘부터 살펴보게될 호12-14장은 호세아서의 클라이막스이며 가장 중요한 결론부분입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내용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시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소개된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번영을 바알이라는 우상이 주었다고 여겼으며, 그래서 바알을 사랑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향한 모든 신앙의 모습들이 말 뿐이었고, 형식일 뿐이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참다운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배신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윤리와 도덕적인 죄도 창궐했습니다. 예를들면, 살인, 도둑질, 간음, 포악..., 등 이렇듯 북왕조 이스라엘은 수없이 많은 죄악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들을 꾸중하셨고,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죄를 깨달지도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입니다. 참 심각한 죄악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우리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면, 참 심각한 죄악들이 많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악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즉,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기름을 보내는 일이 마치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면,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먼저, 바람은 헛되고 공허한 것을 추구했다는 말이고, 동풍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말합니다. 즉, 자신들에게 도리어 해가될 것들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바람과 동풍으로 예표되는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누구입니까? 이삭을 둘째 아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지금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이 야곱의 죄악과 같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분명히 언약의 후손을 태어났고,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생각, 방법, 힘을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은, 형의 발 뒤꿈치를 잡고 출생하는 장면으로부터,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장자권을 취득하는 장면, 어머니와 짜고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복을 받는 장면, 라반 삼촌의 집에서 재산을 축적하는 장면, 형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자신에게 복수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대처했던 방법..., 이러한 것들을 보면, 야곱은 철저히 자신의 생각, 꽤, 방법, 힘을 의지했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북왕조 이스라엘 역시, 그의 조상 야곱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정확히 말을 하면, 야곱으로부터 북왕조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꾸중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라가는 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계십니까? 혹시, 내가 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냐고 묻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에게 간단히 2가지로 답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시146:3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여기서 귀인들이란 힘과 권세있는 자들, 그리고 세상의 힘과 권세를 말합니다. 또, 사2: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즉, 사람과 사람들의 방법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잠3:5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왜냐하면, 의지할 대상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내가 방법이 될수 있고,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과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위기는 왜 찾아오고, 문제 때문에 왜 힘들어 하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방법이 될수 없고,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야곱이 등장하는 두 번째 이유는, 북왕조 이스라엘이 야곱처럼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 점을 3-4절을 보면, ‘하나님과 겨루되’ 라고 말을 하고,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겨두다,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는 말은 좋은 의미로 쓰여진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야곱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자기 힘을 의지했다)는 말이고, 더 정확히 말을 하면,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얍복나루에 있기까지 20여년간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북왕조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여전히 하나님의 뜻 앞에 고집을 부리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내 삶을 고집 하고, 내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내 생각을 고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하고, 내 계획을 고집하고, 내 스타일을 고집하고...등 그러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과 신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항복을 받아내시는 하나님
 우리는 지금까지 야곱으로 비유되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힘겨루기를 한 것, 즉, 항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라’ 고 강하게 경고하셨고, 6절에는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어다.’ 라고 부드럽게 회유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과연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항복했을까요? 아닙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을 끝가지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북왕조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항복하지 않고 멸망 당한 이러한 결말은 우리에게 2가지 질문을 갖게 합니다. 첫째 질문은, 하나님의 수고가 헛되고 말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경고하시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북왕조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항복하지 않았고 결국 멸망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수고가 헛되고 말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멸망한 이스라엘(북왕조, 남유다 포함)이 다시 회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고대로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70년 이후 다시 회복을 했고, 북왕조 이스라엘 역시 정확한 시점을 말하기 어렵지만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다시 회복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멸망한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라도 포기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거부와 못남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패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야곱 같고, 북왕조 이스라엘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사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이 실패하지도 않으신 분이십니다. 이 점은 바울이 롬8장에서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먼저, 롬7장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롬7장은 바울이 자신의 못남을 솔직히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심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워함은 내게 있느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도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워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아시겠습니까? 바울이 얼마나 자신의 죄됨과 못남으로 인해서 탄식을 했는지? 그러면서 8장을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 끝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포기 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은 우리를 실패가 아닌, 넉넉히 이기는 자로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사랑은 결국, 우리를 자발적으로 항복하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이 항복하지 않자 그들을 심판하여 멸망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회복시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발적인 항복을 받아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비록 자발적인 항복을 받아내셨습니다. 야곱의 경우로 한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다양한 간섭속에서도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과 힘 겨루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얍복나루에서 비로서 하나님께 항복하게 됩니다. 그 점을 오늘 본문 4절에서는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로서 야곱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집을 떠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에서의 복수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는 집을 떠나 20여년간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가 많은 자녀를 얻고, 부자가 되었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무엇입니까?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복수하러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더 이상 내 자신을 의지함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겠노라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고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야곱에게 항복을 받아냈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집보다 더 강한 힘으로 우리를 이겨먹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항복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3장에서 끝나지 않고 계시록까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야곱은 얍복나루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에게 항복을 받아내는지 아십니까? 늘 거역하고, 고집하는 나와 언제 어디서든 항상 함께 하시는 사랑을 깨달게 하는 방법으로 항복을 받아내십니다. 이 부분을 좀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과 관련된 2개의 지명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는, 얍복나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벧엘(4절)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좀 이상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야곱과 관련해서 등장하는 장소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얍복나루 사건은 창32장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하나님을 벧엘에서 만난 사건은 창28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얍복에서 하나님께 항복하고,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순서의 바뀜은 과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야곱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을 말씀해주셨으며,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그 때까지 너와 함께 하며, 지키며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 복 받을 자격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받고난 20년후에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사랑하셨고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항복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쉽게 항복하지 않습니다. 늘 하나님과 힘 겨루기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겨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데 우리들이 하나씩 둘씩 하나님께 항복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입니까? 자격없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조건이 안되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입니다. 베드로와 항복, 바울의 항복,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항복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안에는 하나님께 항복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존심의 문제에, 교만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에, 관계의 문제에, 용서의 문제에, 사랑의 문제에, 결단의 문제에, 순종의 문제에...,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 여러분에게 항복을 받아내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으로 인해서 죄인이라고 항복한 것처럼, 앞으로 자격과 조건이 안되는 우리와 여전히 함께 하시는 사랑으로 항복을 받아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에 함께 하시는 발견하도록 힘쓰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향해서는 그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항복되는 순간까지 참아주고, 신앙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붙들어주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하나님은 사랑으로 야곱에게 항복을 받아내신 것처럼, 북왕조 이스라엘에게도 항복을 받아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사랑으로 항복을 계속해서 받아내시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남은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항복하게 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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