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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거짓된 신앙!(호세아서강해33)
 본문말씀 : 호11:12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2.13
조회 : 8,431   추천 : 0  
본문 : 호11:12절   호세아서강해33
제목 : 거짓된 신앙!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가 살면서 자주 접하는 것들 중에, 처음에 만들어 의도와 다르게 사용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즐겨마시는 탄산음료인 ‘콜라’입니다. 콜라는 원래 음료수로 개발된 제품이 아니라, 의약적 목적을 가지고 개발된 제품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콜라는 소화, 두통, 신경쇠약을 완화하기 위한 의약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부 성분을 빼고, 탄산음료로 판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이나마이트’ 도 그렇습니다. 다이나마이트는 원래 탄광사업을 위해 발명된 제품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광부들이 석탄이나 광석을 채굴할 때, 단단한 암석을 쉽게 부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전쟁이나 살상용으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원래의 의도가 아닌, 다른 의도로 사용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이런 경우를 찾을 많이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이혼증서’입니다. 즉, 신24장을 보면, 모세는 아내와 이혼을 할 때, 반드시 이혼 증서를 써 줄 것을 말했습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약자였던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무분별한 이혼을 막기 위함이 원래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혼증서는 이혼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의도로 사용되게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된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신앙의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신앙의 원래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거짓된 신앙이란?  
 오늘 본문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거짓된 신앙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거짓된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러면 또 묻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거짓된 신앙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한번 봅시다.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에브라임은 누구입니까? 북왕조를 대표하는 지파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거짓입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 족속의 죄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속임수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는 거짓과 속임수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지적하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는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짓은 무지 곧 잘 알지 못함에 근거한 거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 종 정말 몰라서 거짓 아닌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알면서도, 더나가서 악의를 가지고 거짓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임수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가 있습니다. 바로, 벧엘과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왕의 통치 이후 남과 북으로 갈라서게 됩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르호보암이, 그리고 북왕조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통치하게 됩니다. 그런데 북왕조 이스라엘왕인 여로보암에게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유다에는 성전이 있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백성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갖을 수 있었지만, 북왕조 이스라엘에는 성전과 같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갖도록 해줄만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문제는,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성전이 있는 남유다로 가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마음이 흐트러지고, 결국, 자신의 통치가 흔들리고, 북왕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흔들리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왕이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북쪽 땅인 벧엘과 남쪽 땅인 단에 제단을 만들고, 금송아지 우상을 두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절기도 지키고 제사를 하도록 하는 일(왕상12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절기도 유다와 다른 날짜로 수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왕은 제단을 만들고 금송아지를 만드는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그럴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하다 하나님께 심판받은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계명을 알았기에 그는 모르지 않았고, 무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임을 알면서도 단을 만들고, 금송아지를 만든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함이라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의도와 목적은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여로보암왕은 자신의 왕권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지만 백성들과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라고 거짓을 말하고 거짓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결국, 여로보암왕에게 제단과 금송아지로 대표되는 신앙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거짓과 속임인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죄에 유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2절 중반절을 보면,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유다는 북왕조 이스라엘처럼 전적으로 거짓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진실된 신앙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짓되게, 때로는 진실되게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는 ‘거짓된 신앙’입니다. 즉,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제단, 절기, 제사, 의식...,등)을 수단과 방법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신앙의 원래의 의도와 목적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소원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모습들을 하나님은 거짓이고 속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수단과 방법이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얼마든지 우리에게 속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목적인 신앙이라면 올바른 신앙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지금 여러분도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여러분이 예배에 열심히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말씀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헌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열심히 순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시, 뭔가를 얻기 위함은 아닙니까? 더 풍요럽게 평안한 삶, 건강, 자식 잘됨, 불행을 피하고, 만사형통..., 만일 여러분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들을 받아내기 위함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고 오늘 본문이 말을 하는 거짓된 신앙인 것입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여러분은 지금 신앙의 야바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바위가 무엇입니까? 돈 놓고 돈 먹기입니다. 또, 여러분은 신앙의 투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2.거짓된 신앙의 문제점
 이제 계속해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신앙을 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가짓된 신앙의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무엇일까요? 가장 원칙적으로는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2가지 신앙의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첫째는, ‘바른 신앙에서 이탈하고 결국 신앙이 실패하게 된다’ 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전 역사속에서 끊임없이 신앙이 실패했습니다. 예를들면, 출애굽당시의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뜻하지 않은 상황들(뒤쫓아옴, 홍해, 마시것, 먹을 것)로 인해서 원망과 불평으로 신앙이 실패했습니다. 또,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신앙에 실패했습니다. 또, 그 후로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조시대에도 우상숭배와 강대국을 의지하는 식으로 신앙이 실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 역시 외식과 형식주의 라는 모습으로 신앙에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전역사속에서 신앙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원하는 목적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모세는 신8:3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출애굽 1세대들이 광야 40년간 신앙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하나님께 떡만 바라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자신이 원하는 환경, 현실,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자세가 신앙의 실패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가운데 다양한 실패를 하게 됩니다. 예를들면, 용서의 실패, 사랑의 실패, 인내의 실패, 순종의 실패, 겸손의 실패, 감사의 실패, 기도의 실패, 섬김의 실패, 절제의 실패, 온유함의 실패..., 등 그래서 욕심 부리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미워하고, 나쁜 감정을 쉽게 들어내는 신앙의 실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의 실패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만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한국교회는 다양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세상을 닮아가는 세속화 일 것입니다. 다시말해 신자들의 윤리와 도덕이 무너졌고, 교회는 힘과 권력을 가지려고 하고, 대형화와 물량주의에 빠지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이와같이 세속화에 물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복주의 신앙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한국교회는 기복주의 신앙 덕을 봤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움도 이겨내고,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복주의 신앙의 폐해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복주의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복과 형통만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기복주의 신앙이란 단지 복을 추구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복신앙이란 하나님을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결국, 기복신앙은 우상숭배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상숭배란 무엇입니까? 단지 어떤 재료로 어떤 형상과 어떤 능력과 의미를 부여하고 숭배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우상숭배의 본질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측면으로 기복신앙과 우상숭배는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금하시는 이유입니다. 과연 왜 금하셨을까요? 질투 때문에? 죄이기 때문에? 맞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우상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삼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인 것입니다.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듯, 하나님은 우리의 수단이 될수 없는 분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사람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로 여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까? 하나님 조차 수단으로 삼게 된다면,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게 되는 일은 당연지사일 것입니다. 다시 여로보암왕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왜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았을까요? 마음이 흐트러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은 왜 두려워했을까요? 그래야 자신의 나라와 왕권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을 금송아지 앞으로 이끌고 간것입니다. 여로보암왕에게 백성은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수단화하게 되면, 결국, 교회와 사람을 수단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점은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속에서도 확인 할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신앙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백성은 어떤 대상이었을까요? 사랑의 대상, 보살핌의 대상, 양육의 대상...,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을 자랑하고, 과시하고,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든자를 고치는 일을 보면서 박수는 고사하고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주실 때에는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조롱하기 까지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수단화하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은 결국, 사람을 수단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웃을 사랑을 놓쳐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을 잘 아실 겁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단지 윤리와 도덕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아주 중요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되면, 신앙이 실패하게 되듯, 우리들이 누군가를 수단으로 삼게 되어도 역시 신앙의 실패가 맞게 된다는 점입니다.

  3.신앙의 원래의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신앙이란 신앙의 원래의 의도와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신앙을 수단화 하는 것이고, 그 결과 신앙의 실패와 사람을 수단화 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점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신앙의 원래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간단히 2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두 돌판 곧 율법을 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몰라서 벌 받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순종해서 복받게 하기 위함일까요?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신 진정한 의도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요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인 것입니다. 이것이 놓치지 말아야 할 신앙의 원래의 의도와 목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감사와 보답입니다. 전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모든 신앙 행위의 출발점이 감사와 보답이라는 말입니다. 더 강하게 말하면 감사와 보답 말고 다른 신앙의 이유는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감사와 보답이 신앙의 이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가장 강한 신앙이 될수 있고, 가장 안전한 신앙이 될수 있고, 승리하는 신앙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를 수단으로 삼지 않습니다. 
 본문과 삶
  1)따라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신앙을 수단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2)그러나 만일 하나님과 신앙을 수단화 한다면, 그것이 바로 외식, 위선, 형식, 거짓신앙인 것입니다. 
  3)이러한 거짓 신앙이, 신앙의 실패, 사람을 수단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보답이라는 신앙의 유일한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올바르고 정당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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