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22:21-51절 사무엘하 강해27
제목 : 인생의 성벽을 뛰어넘는 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 세종대왕에 대해서 잘 아실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룬 성군이고, 특별히 한글을 만드신 인물입니다. 그리고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도 합리성·과학성·독창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종23년 세종대왕은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5년뒤인 세종 28년(1446년)에 한글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종대왕은 얼마든지 절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절망하지 않았고, 그 절망의 벽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위인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최고의 음악가로 손꼽히는 베토벤는 음악가로서 가장 치명적인 청각장애라는 절망의 벽을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작가이며 사회사업가인 헬렌켈러 역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 장애의 벽을 극복했습니다. 또 아인슈타인을 뛰어 넘는 세계적 물리학자로 알려진 스티븐 호킹박사 역시 루게릭이라는 불치병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은 사람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인생의 다양한 성벽을 뛰어 넘은 다윗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다윗 처럼, 인생의 다양한 벽을 뛰어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세상적 현실적 특별대우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해서 다윗의 감사의 시이며 승전가입니다. 오늘 우리는 32구절의 성경을 읽었습니다. 혹시, 읽는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 있으십니까?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구절이 30절입니다. 곧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입니다. 이 구절이 삼하22장 전체의 요절이고,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을 가장 분명히 설명하는 구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인생 앞에 수없이 많은 적들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절망과 고통, 시련과 아픔의 성벽이 놓여 있었지만,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이 구절을 중심으로 오늘 본문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다윗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사람이고, 그래서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격은 일은 무엇입니까? 30절을 보면, ‘적진으로 달리며... 성벽을 뛰어 넘는 일’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다윗은 골리앗에게 조롱을 받았고, 사울왕에게 미움을 받았고, 사울에게 오랜 시간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여기 저기 도망하는 자가 되었고, 심지어 원수의 나라에서 미친척까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다윗이 시글락성에 거주할 때, 아말렉 사람들이 침략하여 가족과 재산을 다 약탈해 가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로인해서 다윗은 부하들에게 죽을 뻔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왕이 된 이후에도 절망할 만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암몬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범하고, 이에 앙심을 품은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서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를 왕궁에서 쫓아냅니다. 그리고 이런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인생 말년에는 몸이 노쇄하여져서, 이불을 덮어도 온기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인생을 ‘적진으로 달리며..., 성벽을 만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다윗은 누구입니까? 불신자?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고,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을 참 많이 사랑한 자이며,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이 없었던 자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나름대로 몸부림친 믿음의 사람이고,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의 인생속에서 끊임없이 당한 일은 고통하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격는 일들을 다윗도 격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는 없다.’ 는 점입니다. 이 점은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욥, 모세, 이스라엘, 다니엘, 바울, 사도들, 초대교회 성도들, 그리고 계7장에 나오는 144,000명..., 등 이들은 모두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는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러한 점은 우리 자신을 보아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이고, 구원받은 자이고, 믿음을 가진 자이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받고 있습니까? 더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줍니까? 무병장수하게 해주십니까?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잘되게 해주십니까? 늘 마음 편하게 살게 해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 역시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현실속에 살아갑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 격는 모든 일을 동일하게 격습니다. 예를들면, 세상 사람들처럼 병에 길립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죽기 까지 많은 실패도 하고, 마음이 아플 때도 있고, 낙심하고 괴로움을 격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이 우리의 신앙의 열심과 상관없고, 믿음의 수준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세상 사람들이 격는 일들을 동일하게 격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는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는 받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신앙의 열심이나 믿음의 수준에 따라서 세상적 현실적 특별대우는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마13장의 ‘알곡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여러분이 알곡과 가라지가 어디에 심겨져 있습니까? 각 각 다른 밭에 심겨져 있습니까? 아닙니다. 같은 밭에 심겨져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알곡이든 가라지이든 같은 조건, 같은 환경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비가오면 다 비를 맞고, 가물면 다 같이 가뭄을 겪고, 병충해가 생기면 다 같이 병충해를 겪는다는 것입니다. 알곡이라고 해서 다른 조건이나, 다른 환경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신자들에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몇개의 구절만 생각해봅시다. 먼저, 전7:14절에서 ‘형통할 때 기뻐하고 곤고할 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형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과 같은 현실을 격는다는 말입니다. 또, 렘31장을 보면 ‘환란날에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세상 사람들처럼 환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시23편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아니할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푸른초장만 걷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몇 몇 성경구절만 보아도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는 없다는 것이 들어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더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자녀가 잘되고, 사업이 잘된다더라..., 물론, 만사형통이고, 잘됩니다. 그러나 그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의 만사형통과 잘됨은 아닙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의미의 만사형통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하는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받지 못하면, 신앙의 갈등이 생기고,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물론,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에는 그런 기대를 갖을 수 있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상당수 여러분은 더 이상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기대하면 안됩니다. 현실적 특별대우가 없음을 알고, 인정하고,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르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떤 적진에 계십니까? 여러분 앞에 놓여진 성벽은 어떤 것입니까? 이상한 일로 여기지도, 원망과 불평의 이유로도 삼지 말기를 바랍니다.
2.성벽을 뛰어 넘은 다윗!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세상적이고 현실적인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환경, 똑같은 현실속에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을 드립니다. 첫째는, 그래야, 우리 그리스도인의 다름이 분명히 입증되기 때문이고, 우리의 다름이 입증되어야 결국 하나님이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행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물론, 그곳에는 많은 다른 죄수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른 죄수들은 틀림없이 절망과 두려움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똑같이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달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울과 실라로 인해서 간수가 하나님을 고백하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또, 행27장을 보면, 바울이 로마로 가는 배를 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배에는 276명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그 배에탄 사람들은 모두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과 현실에 두시는 이유는, 우리의 다름을 나타내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이 증거되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를 적진을 뚫고 나가고, 성벽을 뛰어 넘는 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나도 자주 적진에 안들어 가고, 성벽을 안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마치 신앙을 모든 것을 피하고 면하는 수단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그리고 어쩌다 만나게 되면 빨리 피하고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램과 상관없이 끊임없이 적진으로 몰아 넣고, 높은 성벽을 우리 앞에 세워두실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를 적진을 뚫고 나가고, 성벽을 뛰어 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바램과 우리의 바램이 얼마나 다른지, 동상이몽인지 알수 있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신학자인 워치만 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자신이 땜 목을 타고 강하류로 내려 가고 있었는데, 멀리 강 가운데 우뚝 솟아나온 바위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땜목을 멈추거나 바위를 피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친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강물이 더 거세지고 땜목을 지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오게 된 것입니다. 워치만 니는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위에 부딪히기 직전에 불어난 강물로 바위를 넘어 갈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깼습니다. 그리고 워치만 니는 그 꿈을 통해서 지금 자신이 피해보고자 하는 문제를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들이 적진을 피해가고 성벽을 돌아가는 자들이 아닌, 우리의 인생 앞에 놓여진 온갖 적진과 성벽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뛰어 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마주한 적진, 여러분을 에워싸고 있는 적진은 무엇이며,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성벽은 무엇입니까? 가난, 외롬, 질병, 상처, 관계, 낮은 자존감, 무기력함, 게으름, 갈등, 답답함, 실망..., 등 무엇이 여러분을 에워쌌든, 무엇이 여러분의 막을 가로막고 있던, 뚫고 나가고,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3.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적진을 뚫고 나갈 수 있었고, 어떻게 성벽을 뛰어 넘을 수 있었을까요? 다시 30절을 보면, 분명히 말합니다. ‘의뢰’ ‘의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과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그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잘 의지하는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 인생의 벽이 놓여질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작정기도를 하시고, 금식 기도를 하고..., 이런 기도의 열정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는, 순종입니다. 22-23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2절 이하를 보면, 다윗이 늘 일상 중에 보여지는 것들이 나옵니다. 반석, 요새, 방패, 망대, 땅, 하늘..., 을 그런데 늘 보는 것을 보며 다윗은 그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늘 보던 반석을 보며 ‘아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 되시는구나’ 늘 보면 요새를 보며,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는 요새이구나’ 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 바라본적이 있습니까? 하늘이 그냥 하늘이 아니고, 하나님을 연상하게 하는 하늘이 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위를 볼 때 하나님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가 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수 있는 것입니다. 또,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날 때 하나님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나를 에워싼 적진,내 앞에 버티고 선 성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뭘 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8-20절은 출애굽 당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할 때 다윗은 마치 자기 이야기, 자신이 본것 처럼 합니다.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출애굽기에 사용되지 않는 표현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출애굽기의 말씀을 읽으며 그 말씀이 내게 주신 약속이고 내게 주신 은혜로 느낀 것입니다. 즉, 비록 500년전 출애굽 당시에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이 다윗 자신의 하나님이시고, 광야에 길을 내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들으며, 묵상하며 여러분을 향한 말씀이고 약속이고, 은혜임을 확신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어떤 적진도 뚫고 나가고, 어떤 성벽이든 뛰어 넘을 수 있는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우리가 바라는 것은 참 다릅니다.
본문과 삶
1)우리는 세상적 현실적 특별대우는 바랍니다. 세상적 만사형통을 바랍니다.
2)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적진을 뚫고 가고, 성벽을 뛰어 넘는자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3)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기도, 순종, 하나님을 봄)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적진을 뚫고 지나가고, 성벽을 뛰어 넘는 다윗과 같은 신앙의 승리하자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