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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그들의 계책(計策)때문!(호세아서강해31)
 본문말씀 : 호11:5-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23
조회 : 9,553   추천 : 0  
본문 : 호11:5-7절   호세아서강해31
제목 : 그들의 계책(計策)때문!   

  성도들의 삶속으로   
 이솝우화중에 ‘제 꾀어 넘어간 당나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당나귀 한 마리가 무거운 소금가마를 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무겁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울을 건너다 그만 발을 헛딛고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에 빠진 당나귀는 허우적 거리다 겨우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짐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소금이 물에 녹은 것입니다. 그 때 당나귀는 속으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짐이 가벼워진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다음날 솜을 지고 가던 중에 또 개울을 만났습니다. 당나귀는 지금도 많이 무겁지는 않지만, 짐을 더 가볍게 하고 싶어서 물속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을 머금은 솜으로 인해서 더 무거워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자기 꾀에 넘어간 북왕조 이스라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가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북왕조 이스라엘의 계책(計策)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내리실 심판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5절 하반절부터 보면,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고 말을 합니다. 즉, 북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 왕을 섬겨야 할 포로 신세가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리려 없이 하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먼저,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라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는, ‘칼이 그들의 성읍들안에서 춤을 춘다’라는 말입니다. 즉, 북왕조 이스라엘의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살육의 참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빗장을 깨뜨리려 없이 하리니’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빗장이란 성문을 잠가두는 시건장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빗장이라는 것은 적군의 공격을 막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러므로 빗장을 깨뜨려 없이 한다는 말은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무방비한 상태가 될 것을 말합니다. 결국, 북왕조 이스라엘이 앗수르 나라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대로, 이스라엘을 1,2,3차 걸친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bc722년 멸망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크게 2가지로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북왕조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면,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또, 7절을 보면,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모두 같은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자신에게로 돌아오라고 호소했지만, 북왕조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서 회개 할 것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생각하고 고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저 그런 여러분을 보고만 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음에 대해서 반드시 징계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자녀로 대우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더 이상 미루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계책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계책이란 무었습니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꾀나 방법을 생각해 냄’입니다. 그러면 계책이 나쁜 것입니까? 아닙니다. 계책 곧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참고, 계책이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도 자신에게 사용하시기도 했습니다. 예를들면, 렘18:11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세워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하셨다 하라.’이처럼 계책이란 그 자체가 나쁘거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합니까? 그것은 어떤 일을 이루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왕조 이스라엘이 생각해낸 방법이 당연히 하나님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방법삼지 않고, 다른 것을 방법삼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고 호소한 것입니다. 즉,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두라고 의지하고 호소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북왕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시선을 두지 않고, 의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가지 예를들어주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호세아가 사역하던 당시 북왕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많은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애굽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며 도움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 애굽을 의지하는 것을 방법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애굽을 의지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은 북왕조 이스라엘로 하여금 애굽을 계책삼지 못하도록 앗수르에 의해 더 강한 지배를 받게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왕하15장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16대 왕인 므나헴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일을 소개됩니다.(B.C.752-742년경) 어떤 일이이냐면, 앗수르 왕이 북왕조이스라엘을 위협을 하자, 므나헴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이 아닌, 당시 북왕조의 부자들에게서 은 천달란트를 빼앗아 그것을 앗수르왕에게 조공으로 바치는 곧 아첨을 하는 것을 계략으로 삼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더 부강하고 풍요로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은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이 아닌, 우상숭배를 계략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결국, 북왕조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방법 삼고, 다른 것을 계략으로 삼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분명히 여러분도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성이 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여러분이 인생을 살다보면 소원하고 목표하는 일들을 가지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든 목표든 그것을 해결하고 이루기 위한 여러분은 계략,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략입니까?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힘과 도움으로 삼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방법인 인생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고 있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징계를 향해 스스로 다가가고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왜 죄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북왕조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게 되는 이유가, 회개하지 않음과 무엇보다 하나님이 다른 것을 계략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게 뭐가 잘 못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게 왜 심판까지 받을만한 죄가 될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이 점을 2가지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른 것을 의지하 말고 자신 만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시146:3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여기서 귀인들이란 힘과 권세있는 자들, 그리고 세상의 힘과 권세를 말합니다. 또, 사2:22절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즉, 사람과 사람들의 방법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잠3:5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또, 고후1:9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17장을 보면, 장파 세워질 이스라엘의 왕이 금해야 할 3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병마를 많이 두지 말며, 아내를 많이 두지 말며,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3가지를 금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고 그 어떤 것도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큰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불신앙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결국, 내가 방법이 될수 있고, 내가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과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이 될 수 없고, 무엇보다도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에 위기는 왜 찾아오고, 문제 때문에 왜 힘들어 하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우리는 방법이 될수 없고,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류의 타락이 바로 이러한 착각과 교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처럼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습니까? 자신이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존재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타락한 인간들은 자신이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교만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도 한때 자신이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창16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 하갈과 동침합니다. 그리고 계획대로 아들(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브라함은 스스로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어 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로 인해서 가정안에 심각한 불화가 생기게 됩니다. 도리어 이전보다 더 나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속에 끊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창2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를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내가 방법이 될수 없고,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만이 방법이고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분이라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생속에 간섭하셔서, 더 이상 자신을 방법삼지 않고 하나님을 방법 삼고,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야곱의 인생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야곱 역시 자신이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무엇입니까? 창25장의 팥죽 사건이며, 창27장의 아버지를 속이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복을 받기 위해서 배고픈 형의 약점을 이용했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장자의 복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야곱은 스스로 방법이 되고, 결과를 만들어 낸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는 20여년간 집을 떠나야만 했고, 형의 복수를 두려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특별히 라반 삼촌 집에서 속임을 당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내가 방법이 될수 없고, 결과를 만들어 낼수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고 창32장을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얍복강 사건이 등장합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사건입니다. 즉, 자신을 방법 삼았던 야곱이 하나님을 방법으로 삼는 이스라엘로 변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속에 간섭하셔서, 더 이상 자신을 방법삼지 않고 하나님을 방법 삼고,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방법으로 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교만이고, 심각한 불신앙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우리가 방법이 될 수 있고, 우리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3.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 예배에 잘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까?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도 제사, 절기, 안식일은 잘 지켰고, 제물도 풍성하게 드렸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사를 통해서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척 속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속이지도, 스스로 속지도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무엇으로 확인 될수 있을까요? 간단히 3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기도입니다. 빌4:6절을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나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증명입니다. 둘째는, 순종입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결코 순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유무를 보면,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는,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하나님께 다 떠넘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도리어 내게 주어진 자리, 역할, 책임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학생은 공부하는 일에, 직장인은 직장생활에, 전업주부는 가정 돌보는 일에, 사업하는 분은 사업에, 특별히 직분자로서, 주어진 사명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자리에서 모든 순간에 그리스도인 다움을 만들어 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증명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어진 자리, 주어진 현실,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있다면,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2)무엇보다도 하나님만이 방법이 되고, 하나님만이 결과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3)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방법 삼아서는 안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기도로, 순종으로, 무엇보다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경험하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헌신찬송, 합심기도(헌금기도),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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