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21:15-22절 사무엘하 강해25
제목 : 삶의 거인을 이기려면!
성도들의 삶속으로
영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느날 왕자가 사냥을 갔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해메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왕자는 한 목동을 만나게 되었고, 길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목동은 ‘안됩니다. 저는 주인집의 양을 치는 목자입니다. 주인의 양떼를 지키는 것이 내 임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자는 많은 돈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목동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안내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목동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죽을지언정 양들을 돌보겠습니다. 다만 말로 안내해 드리지요.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 가면 도로가 나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자는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했습니다. 후에 그 왕자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목동을 불러 자신의 재상(모든 관료들을 감독하는 사람)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바로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다윗을 위해서 거인들과 싸운 충성된 4명의 용사들을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다양한 거인들과 싸워 이기는 충성된 신자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우리 삶의 거인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통치하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있었던 전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블레셋의 4명의 거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블레셋 군사들 중에 ‘거인족’이 있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300세겔(3.4kg)의 무게의 창을 들고 다녔던 ‘이스비브놉’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아비새가 이스비브놉을 죽입니다. 또, 18절을 보면, ‘삽’이라는 거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십브개가 삽을 죽입니다. 또, 19절을 보면,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소개합니다. 특별히 라흐미의 창자루가 베틀채 같았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얼마다 장대한 거인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하난이 라흐미를 죽입니다. 또, 20절을 보면, 발가락과 손가락이 각 각 12개씩 있던 무명의 거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거인을 요나단이 죽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은 블렛세의 4명의 거인을 다윗의 용사 4명이 이겼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거인을 이긴 다윗의 용사들을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용감한 다윗의 용사들의 무용담을 말하기 위함일까요? 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훌륭한 부하들을 주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가요? 전혀 아니라고 말할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교훈을 주시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속에 다양하게 찾아오는 거인들을 우리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인생의 거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의 삶의 거인들을 잡아라!’ 라는 데이비드 제러마이어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삶에 이겨야 하는 거인을 12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두려움, 낙심, 외로움, 염려, 죄책감, 유혹, 분노, 원한, 의심, 미루는 버릇, 실패, 질투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생의 거인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물론 간단한 상대가 아닌 맞서 싸워 이기기 어려운 난적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속에 마주하는 거인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이기지(넘어트리지) 못한 거인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게으름이라는 거인, 분노라는 거인, 질투라는 거인, 나쁜 감정이라는 거인, 다양한 욕심이라는 거인, 아픔과 상처라는 거인, 원망과 불평이라는 거인, 의심이라는 거인, 교만이라는 거인, 낮은 자존감이라는 거인, 나쁜 습관이라는 거인..., 아직 이기지 못한 거인은 과연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들이 이기지 못한 거인은 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안에도 이기지 못한 거인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가족 간의 갈등이라는 거인, 세상적인 가치관이라는 거인, 신앙의 원리가 통하지 않음..., 등 과연 여러분의 가정안에 이기지 못한 거인은 무엇이 있습니까? 또, 교회 공동체안에도 이기지 못한 거인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성도들 간의 미움과 교만의 마음이라는 거인, 적당히 라는 거인, 하나되지 못하게 하는 갈등이라는 거인,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하겠지라는 방관자의 거인, 교회를 향한 식어진 사랑이라는 거인..., 등 과연 우리 교회에는 이기지 못한 거인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생의 가장 큰 거인은 사단일 것입니다. 사단은 늘 인생의 바른 길을 막는 거인이며,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거인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속에는 넘어트리지 못하고 이기지 못한 거인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다양한 거인을 이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마주하고 있는 거인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용사들이 거인을 이긴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을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거인들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삶의 거인을 이기는 방법
그렇다면, 우리들이 인생의 다양한 거인, 신앙생활 가운데 마주하는 다양한 거인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의 다윗의 용사들이 거인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다시 15-22절까지 눈으로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다윗의 용사들이 거인들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아 보십시오! 찾으셨습니까? 어떤겁니까? 그들의 싸움실력이 탁월하다고 말합니까? 아니면, 그들의 전략과 전술이 뛰어났다고 말을 합니까? 아니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대단했다고 말을 합니까? 아닙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거인들을 이길 수 있었던 그 어떤 것들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다윗의 용사들이 거인들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찾을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윗에 대한 충성심입니다. 15절을 보면,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여했고 함께 싸웠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한가지 배워야 할 것은, 참다운 리더는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일군들 임직자 모두가 함께하는 리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전투에 함께 참여한 다윗이 피곤하여 지치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친 다윗을 블레셋의 거인이었던 이스비브놉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17절을 보면, 아비새가 이스비브놉이라는 거인을 죽인 후에 다윗의 부하들이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속에 무엇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까? 그것은 다윗을 향한 깊은 사랑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에 대한 충성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4명의 용사들이 모든 면에서 자신들보다 뛰어난 거인들과 싸울 수 있는 용기는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과 다윗왕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윗 왕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없었다면, 그들은 거인들과 싸우러 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점은 다윗이 골리앗이 이기는 장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가 언제입니까? 청소년 시절이었고, 목동시절이었습니다. 다윗은 무기를 갖추어 입을 만한 신체조건도 되지 않았고,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막대기와 물매돌만을 가지고 골리앗에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다윗이 거인 골리앗에게 나갈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심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 나가며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삼상17:45절‘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가노라.’ 이 말속에는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심이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들면, 종 종 반련견이 위기로부터 주인을 구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인을 공격하려고 할 때, 주인을 지키려는 행동을 하고, 반려견과 등산을 하는 도중 멧돼지의 공격을 받았을 때, 반려견이 목숨 걸고 멧돼지와 싸운 이야기, 물가에 잠든 주인 주변에 불이 나자 자신의 털을 물에 적신 후 주인을 살린 이야기..., 등 이런 식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려견이 목숨 걸고 주인을 지키려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인에 대한 사랑, 무엇보다도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다양한 거인들과의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 특별히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를들면, 달란트 비유에서 5,2달란트 받은 종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장사를 하여 이윤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와 그 2명의 종들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는 칭찬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1달란트 받은 종이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고, 장사를 하여 이윤을 남길 생각을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충성심보다는 위험감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인 것입니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이 악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다양한 인생의 거인들과의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심이 없을 때, 우리들은 다양한 거인들과 용기 내어 싸우려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고전4:2절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입니다. 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빌라델비아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계2:10절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스러움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무엇을 보면 알수 있습니까? 내 삶의 다양한 거인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 삶의 다양한 거인과의 싸움이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예를들면, 게으름이라는 거인과의 싸움이 있는지? 분노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질투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나쁜 감정이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다양한 욕심이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아픔과 상처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원망과 불평이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의심이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교만이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낮은 자존감이라는 거인과 싸우고 있는지? 이러한 싸움에 여러분이 임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다양한 싸움들이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충성심이 없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칭찬과 상받는 것을 소원하고 목표하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대단히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4:3절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 때문에 웃고,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속상해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칭찬하면 좋고, 비난하면 마음상해 주어진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종종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온통 정신과 마음이 팔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평가를 마음에서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들의 평가에 조금도 관심도,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고전4:4절에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평가이며,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울의 평생소원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오직 ‘하나님께만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또, 이런 바울의 소원을 잘 보여주는 구절이 있습니다. 갈1:10절을 보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입니다. 이러한 소원함과 목표를 품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회복할 수 있게 되 것입니다.
3.여러분이 신앙의 거인으로 자라십시오!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며, 문득 한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2007년 7월 13일, 지금으로부터 약 12-3년전입니다. 분당의 샘물교회의 23명이 아프카니탄으로 의료봉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탈레반에게 배형규목사님과 심성민청년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때 전해진 한 일화 몇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3명의 납치소식이 전해지고, 협상의 이야기가 나올 무렵 배목사님께서 팀원들에게 ‘여러분 너무 염려 마세요. 전 세계 성도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우리 중 한두 명을 죽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제가 제일 먼저 앞장서겠습니다. 저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고문하고 죽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폭력으로 대항해선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핍박과 조롱을 견디시고 십자가를 견디시며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도 저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헌신은 자신의 마지막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형규목사님께서 23명 중 첫 번째 희생자가 된 것입니다. 또 이지영자매가 있었는데 탈레반이 2명의 여성을 석방할 때, 석방대상자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자기 대신에 다른 자매를 풀어줄 것을 말하고 양보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배목사님과 이지영의 이야기를 접하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이들이야 말로, 죽음의 거인도 이겨낸 진정한 신앙의 거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여러분 같으면 배목사님 처럼, 이지영자매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신앙의 거인으로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끊임없는 신앙의 훈련을 하고, 포기하지 않고 거인들과 싸워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모두도 신앙의 거인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지금 영적인 전쟁터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하나님을 모욕하고, 우리의 신자됨을 조롱하는 다양한 거인을 만나게 됩니다.
2)우리는 그 거인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가지게 됨으로, 그 어떤 거인과도 싸우고 이겨내는 진정한 거인 신앙의리 장대한 적이라도 이겨내는 진정한 신앙의 거인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