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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호세아서강해30)
 본문말씀 : 호11:1-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16
조회 : 10,779   추천 : 0  
본문 : 호11:1-4절   호세아서강해30
제목 :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    

  성도들의 삶속으로   
 1895년 노르웨이 탐험가인 난센이 북극을 탐험하던 중 바다의 깊이 제기 위해 밧줄을 바다에 넣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깊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밧줄로는 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난센은 더 긴 밧줄을 구해다가 바다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너무 깊어 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일기에 난센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합니다. ‘이 북극의 바다는 하나님의 사랑 만큼이나 깊다. 끝을 알 수 없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다 헤아리거나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으십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앎을 통해서 마땅한 성도의 삶을 살아내게 하는 힘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 짧은 구절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두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해방시키신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땅에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신 사건이 사랑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와 억압에서 풀어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해방사건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인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해방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자신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애굽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10가지 재앙은 애굽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그 10가지 재앙은 재앙이 아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해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민족에게도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특별히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더 분명하게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크신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사랑입니다. 1절의 ‘사랑하여’ 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선택하시는 사랑을 말할 때 쓰여지는 단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곧 장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출4: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왕에게 보내실 때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아들 곧 장자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장자로 선택하신 것이 왜 사랑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로 백성으로 선택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먼저, 오늘 본문 1절에서는 ‘어렸을 때’ 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어렸을 때라는 말은 철이 없고 연약하고 힘이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또, 신7:6-7절을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를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모든 민족보다 수효가 작고, 적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미약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까?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미약함이 선택의 이유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만큼 자격과 조건을 갖지 못한 민족을 선택했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해방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무엇보다도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아들, 장자로 선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셋째로 3-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어린 백성들을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아주고’ ‘고치고’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양육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놀랍고 크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크게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이 왜 크신 사랑이 됩니까?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을 만한 그 어떤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에베소서의 2가지 본문을 통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엡1: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을 합니다. 이 구절에서 오늘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단어는 ‘창세전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신 시점이 창세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셨다는 말의 의미와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실 때, 우리의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세전에는 우리 모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선택받기 위한 그 어떤 행위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이 점을 무조건적 선택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 하나의 본문은 엡2:1-9절의 본문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표현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을 때, 우리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이 구원이라는 선택을 받지 위해서, 다르게 말하면, 선택의 조건인 의를 갖출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의에 대하여 죽은 자였기 때문이고.’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자’였으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롬5:6,8,10절에서는 ‘우리가 연약 할 때, 우리가 경건하지 않을 때,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원수였던 때’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께 선택받을 만한 그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출 수 없었던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자녀로 선택해 주시고, 모든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여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고, 간섭하시고,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 우리를 양육하십니다.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사랑을 모름
 그런데 2절을 보면,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말을 합니다. 참고로 원문에는 ‘선지자들이’ 라는 말 대신 ‘저들이’ 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저들은 선지자들을 말하는게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경에는 조금 의역해서 선지자들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크게 사랑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갈수록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바알과 여러 우상들에게 제사를 하며 분향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거의대부분의 역사였습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서 7절을 보면,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라고 하나님은 탄식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합시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을 배반 배신 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 배신한 이유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베푸시는 모든 일들을 사랑이라고 여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3-4절을 통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3절을 보면, ‘내가 팔로 안았음에도’ 라고 말하고,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4가지 표현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머물렀던 광야과 연관이 된다는 점입니다. 먼저, 내가 팔로 안았음이라는 말은 신5:15절을 보면,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지금 모세는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이라는 말은, 출15장에 나오는 마라사건과 연관이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쓴 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고치시면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을 말하고,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마시 물을 주신 사건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광야 40년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크게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으신 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이유는, 그 곳이 광야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지만, 사랑으로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은 광야는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가 아니고, 광야라는 현실은 그들이 기대했던 현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애굽에서 해방을 얻은 것은 좋은데 광야에서 고생하는 것은 싫은 것이고, 쓴 물을 단 물이 되게 하신 것은 좋은데 꼭 그렇게 힘들게 물을 먹는 것은 싫었던 것이고, 더운 낮에 구름기둥, 추운 밤에 불기둥이 있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필요한 환경에 있는게 싫었던 것이고, 만나를 먹는 것은 좋은데 그것만 먹는게 싫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사랑이라고 여기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몰랐고, 그 결과 하나님을 배반 배신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크게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합니까? 혹시,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시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현실이 아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거나 의심하고 있는 분은 안계십니까?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주어진 현실, 내가 마주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배제된 현실, 상황은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을 따라서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 아닌 순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 일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확신할 때, 올바르고, 정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순종, 헌신, 용서, 고침, 닮아감) 이 잘 안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 모르고,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신앙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송명희시인 – 사랑하니까)

  3.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이 전혀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들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바, 받고 있는 사랑으로 인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자로 멈추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은 근거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계십니까? 오늘 예배에 나왔으니까? 성경을 읽고 기도하니까? 헌금생활을 착실히 하니까? 교회에서 봉사의 일을 하니까?..., 등 네 맞습니다. 그러한 것들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최고의 증명은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는 일’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선택받고, 사랑받을 만한 자격과 조건이 없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야 하고,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이 점을 이스라엘 백성을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사랑하시기로 작정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 땅이 아닌, 시내산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율법 곧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들에게 어떤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그들이 제자가 된 것 역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다 부르신 후 그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고 하셨고, ‘서로 사랑하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고 하셨고, ‘너희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 고 요구하셨습니다. 특별히 마5-7장에서는 산상수훈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는 말씀으로부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자가 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은혜로 제자된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매주 말씀을 듣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순종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선택 받은 자, 자녀된 자, 구원받은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답게) 갖추어 가도록 주신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고, 여러분이 받은 구원이 취소되거나 흔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구원이 처음부터 여러분에게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는 일은 분명히 우리에게 의무와 책임으로 주어졌다는 점을 놓치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 의무와 책임에 힘쓰는 것이야 말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최고의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고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없는  도리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여 주십니다.
  2)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내가 원하지 않는 주어진 현실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거나 의심합니다. 
  3)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가 될 때,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더 나은 자격과 조건을 갖춤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을 증명하는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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