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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긍휼의 하나님!(호세아서강해29)
 본문말씀 : 호10:12-15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9.1.9
조회 : 8,652   추천 : 0  
본문 : 호10:12-15절   호세아서강해29
제목 : 긍휼의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어느 한 랍비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죽기 전에 회개하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마다 의아해 하면서 ‘랍비여,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압니까?’ 라고 빈정거리며 반문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랍비는 그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회개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랍비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미루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지금 당장 회개 할 것을 촉구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를 향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회개의 촉구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호10장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심판을 경고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두 마음이라는 죄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않은 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을 숭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호세아서는 두 마음의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가 목적이 되는 신앙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복을 받기 위함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근거로 도움을 받기 위함인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왜 섬겼을까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 소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일 뿐이었습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들이 바라고 소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서가 말하는 두 마음이라는 죄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을 버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3절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지했고, 그 결과 그들이 의지하던 것에게 배신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4-15절을 보면, 그런 이스라엘이 당하게 될 심판의 내용을 언급합니다. 즉,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살만의 전쟁의 날이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적군(앗수르)의 침략을 당하고 그 결과 완전한 파멸을 당하는 비극의 날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 촉구를 통해서 우리들이 몇가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회개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점입니다. 12절을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회개는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우리의 몸은 육체로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체안에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혼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건강할 수 있고, 병 들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중 하나가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뇌성마비 장애인인 송명희 시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경험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설을 해야 되고 제대로 배설을 못하면 큰 병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영혼의 배설은 회개이며 회개를 못하면 큰 죄에 눌려 멸망에 이른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너무나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사람이 배설을 못하면 큰 병에 걸리고, 혼수상태에 빠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신자가 영혼의 배설인 회개를 안하면 영적으로 큰 병에 걸리고, 영적혼수상태에 빠지고, 결국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영혼의 배설인 회개를 하게 될 때 영혼의 건강의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둘째로, 회개는 때가 있다는 점입니다. 12절을 다시보시면,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아직 심판이 시행되지 않았으므로 지금은 회개해야 하는 때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를 놓치면 우리들의 심령이 강퍅해지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사울왕의 경우입니다. 사울왕은 회개를 놓친 사람입니다. 그 결과 그는 갈수록 강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강퍅하고 완고하게 되는 것은 회개해야 할 때에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회개는 반전의 계기가 된다는 점니다. 12절을 보면,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간단히 말을 하면, 비록 지금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주어졌지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비처럼 부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대단한 반전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각 사람의 삶을 반전시킵니다. 각 사람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예를들면, 탕자의 인생이 바뀌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를 깨달고 회개했을 때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된 터닝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다메섹에서 자신의 죄를 깨달고 회개했을 때입니다. 또,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무엇입니까? 얍복강에서의 회개입니다. 또, 1900년초 한국 기독교는 신앙의 심각한 침체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1907년부터 신앙의 침체에서 벗어나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한 터닝포인트는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의 반전의 계기,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회개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들이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회개 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회개를 촉구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말을 들을 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더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곧장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반전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2.긍휼의 하나님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장면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회개를 촉구하시는 모습속에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 이시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실 때, 어떤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당연 용서하시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1: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고 말씀 하셨고,  또, 요일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딛3:5절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의 자격과 조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하심에 근거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창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성의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에 대한 심판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기도의 모습을 보면, 간구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도리어 하나님께 따지는듯하고, 너무 당돌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기도의 용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창19:23절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절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절에 ‘부당하오며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러분 아브라함의 기도는 참 당돌하고, 심하게 말하면, 이 사람이 미쳤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의 어떻습니까? 이 놈이 감히..., 이게 아닙니다. 28절 ‘멸하지 아니하리라’ 30절 ‘그러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쩔쩔 메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의인 50, 45, 40, 30, 20, 10명이 있으면 용서해 주실거냐고 6번이나 묻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겠다고 대답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하나님은 자비롭고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며, 그분의 마음에는 온통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고백하는 구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를들면, 단9:18절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즉, 다니엘은 자신의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느9:31절을 보면,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즉,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신앙회복을 호소할 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호소한 것입니다. 또한, 마9: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난과 정죄를 일삼는 바리새인들을 꾸중하실 때에도,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경은 하나님을 긍휼의 하나님이라고 말을 합니다. 특별히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긍휼이 크신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해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앞으로의 우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회개의 자리로 나기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해 감사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3.긍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놓치면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도 긍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긍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긍휼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긍휼을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을 보며 우리들은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이유는 그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 이유는 그보다 내가 조금은 더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린 사람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난 안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이 생각하는 긍휼은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 또는 동정심으로 이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을 보며, 불쌍히 여기고,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긍휼, 또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긍휼은 내가 더 낫고, 내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단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나 동정심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긍휼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이 점을 2인물을 통해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눅10장을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비유를 보면,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매를 맞고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3사람이 지나갑니다. 첫째는, 제사장이고, 둘째는, 레위인이고,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이 3사람은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심이 없었을까요? 그럴리 없습니다. 분명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도만난 자를 도운 사람은 사마리아사람 한사람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에 응급조치를 해줍니다. 그리고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자신이 타고 온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2데나리온을 지불하고 강도만난 사람을 돌봐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비용이 더 발생하게 되면 자신이 그 값을 지불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원하시는 긍휼이 무엇인지 찾으셨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긍휼은 아무런 손해 없는 값싼 동정심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긍휼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는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긍휼을 베푼 사마리아인을 생각해보십시오! 강도 만난 자를 위해 많은 손해를 보았습니다. 예를들면, 시간적 손해, 편리함의 손해, 물질적인 손해, 번거로움의 손해, 감정의 손해(개 취급당함)..., 등 손해를 감수하는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까지 빛을 비추시고, 불의한자에게 까지 비를 내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죄악된 인간들을 위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밖아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 역시 손해없는 값싼 동정심이 아니라, 독생자까지 내어주시는 손해를 감수하신 사랑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긍휼은 값싼 동정심, 손해없는 동정심이 아닙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구체적인 사랑과 도움을 주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6:6절을보면, ‘나는 인애(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이 종교적인 전문가들이 아니라 긍휼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손해없는 값싼 동정심으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사람이 아닌, 다양한 손해를 보더라도 롬12:8절의 말씀처럼,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즐거움으로 긍휼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긍휼의 사람으로 살아가십니까? 또는 매정하고, 내정한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손해를 보면서 까지, 긍휼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하지만, 분명합니다. 즉,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긍휼의 빚을 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들이 긍휼의 삶이 잘 안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의 빚진자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빚진자임을 알게 될 때 여러분의 삶은 정말 많이 달라 질것입니다. 그러나 빚진자의 마음이 없이는 결코 여러분의 삶을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처럼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계산적이고, 매정하고 냉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빚진자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십시오! 예를들면,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긍휼의 시작입니다. 또, 누구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마십시오! 비판과 정죄의 마음으로는 긍휼의 삶을 살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해주십시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에게 준 기념훈장에는 그리스의 유메시아스의 유명한 말인 ‘긍휼을 행하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서만 아니라, 말로도 할 수 있다. 돈도 말도 없을 때는 눈물로 할 수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들이 조금만 생각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긍휼의 삶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께 회개로 나가야 합니다.
  2)그러면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긍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3)이렇듯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으면 살아가는 긍휼에 빚진자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긍휼의 빚진 자로서, 모든 이에게 긍휼 곧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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