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10:9-11절 호세아서강해29
제목 : 하나님을 버린 죄!
성도들의 삶속으로
바람둥이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청년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예쁜 여자랑 결혼하게 해주시면 다시는 바람 안피우겠습니다. 만일 제가 바람을 피우면 절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정말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버릇이 어디가겠습니까? 이 남자는 결혼 후에도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마음 놓고 계속해서 바람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날 배를 타게 되었는데 갑자기 풍랑이 일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배가 침몰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는 하나님과 했던 약속이 생각나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배에 10명이나 타고 있는데 나 하나 죽이시려고 이 배를 침몰시키지는 않으실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 같은 놈 10명을 모으느라 3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람둥이 10명을 모를 때, 심판하기로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이 2가지 죄에 걸릴 때,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2가지 죄가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여러분 각 자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두 가지 죄?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한가지 기억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난해구절입니다. 즉, 명확한 해석이 어려운 구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제 9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을 합니다. 먼저, 호세아는 ‘기브아’ 라는 지명을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기브아는 어떤 곳일까요? 기브아는 베냐민지파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사울왕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호세아선지자가 말하려고 하는 기브아는 ‘대단히 음란한 곳’ 입니다. 이 점은 삿19장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삿19:22-30절을 보면, 베냐민지파 사람들이 살고 있던 기브아에 레위인 일행이 방문을 하게 됩니다. 그러자 한 노인이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된 기브아에 살던 사람들이 노인의 집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노인의 집에 머물고 있던 나그네를 내 놓으라고, 그들과 상관(성관계, 동성애)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노인은 반대를 했고, 결국, 자신의 첩을 내주게 됩니다. 그러자 기브아 사람들이 그 첩을 집단으로 능욕했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로 기브아 사람들이 음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첩의 남편이 기브아사람들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기 첩의 시신을 12덩이로 잘라 이스라엘 전역에 보냅니다. 그 결과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을 알게된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이 베냐민지파와 전쟁을 하게 되고 고작 베냐민 사람 600명만 남고 진멸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선지자가 기브아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이스라엘도 대단히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음란하다는 것은 육체적인 음란과 더불어 영적인 음란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 말고 다른 우상들을 숭배하는 죄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호세아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심판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브아 시대에는 600명이 남았지만, 이제 당하게 될 심판은 하나도 남지 않을 심판일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절을 보면,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심판하시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계획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든 시간, 모든 현실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과 때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자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때, 어떤 시간이든 어떤 자리에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잘못을 꾸중, 징계하시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종 종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는데도 하나님께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자신의 잘못을 못보고, 모른다고, 그리고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잘못된 누군가를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모르시나, 하나님의 심판이 없나? 라고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곧장 심판하기도 하시지만 더 지켜보신 후에 심판하시기도 합니다. 예를들면, 레10장을 보면,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 제사장이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가지고 분향을 드리자 그 즉시 하나님은 불로 그들을 죽이는 심판을 하셨습니다. 즉각적으로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삼상2장을 보면, 나답과 아비후와 같은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제사장 답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이전에 자신들의 몫을 챙기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행동,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치하는 일..., 등 정말 제사장으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오랫동안 그들을 심판하지 않고, 오랜 후에 그들을 전쟁터에서 죽게 합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어떨 때는 즉각적으로 심판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오랜 후에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당장에 여러분의 잘못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잘못을 모른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한참이 지났는데도 심판이 없다고 해서, 여러분이 받아야 할 심판이 면해졌다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단지 그 때를 우리는 모를 뿐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히 언제라고는 말씀하지는 않으시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이스라엘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심판의 때를 우리는 압니다. 바로 BC722년 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정하신 때에 우리 각 사람을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이 받아야 할 심판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서 회개할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을 버린 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원하시는 때에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10절을 자세히 모습이 그 때가 언제쯤인가를 소개합니다. 언제입니까? ‘그들이 두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 그들을 치리라.’ 곧 2가지 죄에 걸릴 때가 바로 심판의 때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2가지 죄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아무리 읽어 보아도, 또는 본문이 기록된 10장 전체를 읽어보아도 명확하게 제시하는 2가지 죄에 대한 설명이나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과연 2가지 죄란 무엇일까요? 저 역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서적들의 해석을 참고해서 4가지 해석을 이야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는, 렘2:13절과 결부 시키는 해석입니다. 즉, 렘2장을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의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즉, 이 말씀을 근거하면 이스라엘의 2가지 죄는 첫째, 하나님을 버린 죄이고, 둘째는, 웅덩이를 판(다른 것을 의지함) 죄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말한 2가지 죄는 사실 한가지 죄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의지한 죄입니다. 두번째는, 벧엘과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를 포함한 우상숭배의 죄라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2가지 죄일까요?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우상숭배라는 하나의 죄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버린 죄와 우상을 숭배한 죄이기 때문에 2가지 죄로 이해를 한다는 해석입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선택한 것이 예수를 버린 죄와 악을 택한 죄로 이해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을 버린 하나의 죄를 두가지로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버린 죄와 다윗의 집을 버린 죄라는 해석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버린 죄는 벧아웬의 송아지 우상을 포함한 모든 우상을 숭배한 죄를 말합니다. 또, 다윗의 집을 버린 죄는 북이스라엘 나라를 분열키시고 스스로 왕을 세운 죄를 말합니다.(7절 근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구절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복잡해 질 뿐이고, 큰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네 번째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라는 해석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9절의 말씀처럼, 아주 오래전 사사시대에 기브아는 음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음란의 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죄가 청산되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해석이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스라엘의 2가지 죄를 ‘하나님을 버린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반문하실 겁니다. 그럼 한가지 죄 아닙니까? 물론, 죄의 개수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죄는 반드시 2가지 죄가 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을 버린 북이스라엘은 다윗이 아닌 다른 가문에서 왕을 세웠고, 하나님을 버린 하나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와 바벨론을 의지했고,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은 과거의 음란의 죄를 여전히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죄는 반드시 후속의 죄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두 가지 죄’를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후속의 죄를 만들어 낼 때 심판이 있다고 했는데, 호세아 당시에는 하나님을 아직 안버리고, 후속의 죄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호세아 당시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다양한 후속의 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두가지 죄에 걸리면 심판하시겠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A라는 나라가 B라는 나라에게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총을 쏘거나, 미사일을 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전쟁을 선포한 그 순간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경고한 그 순간 심판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이 심판의 때가 언젠인가? 가 핵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죄를 지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버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한가지 묻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하나님을 버린 적이 있나요? 사실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고, 하나님 백성이라는 대단한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과연 무엇일까요? 3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처럼 음란하게 이방 우상들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둘째로, 이웃이라는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스라엘은 이방나라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가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의 시초였던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실 때에도 이웃을 위한 복의 근원이라는 의무와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하나님께서 인도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로, 각 개인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고, 각 개인이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방나라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 하나님 백성답게 만드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 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내용안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은 무엇입니까?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입니다. 그리고 ‘내 백성이 되라’ 는 언약의 요구속에는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 이방나라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 하나님 백성답게 살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무슨 질문인지 아시지요? 여러분은 예수 믿는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인, 하나님만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세워주는 것,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것을 하고 있는가의 질문입니다. 이 일을 안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버린자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앞으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말 속에는 이러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는 서약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3.다른 것에 관심을 두었다.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은 왜 하나님을 버렸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관심이 하나님 백성 다움보다는 축복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1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고 말을 합니다. 먼저,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금까지 교육하고 훈련하고 양육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통해서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들을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고 말합니다. 이것은 심판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11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양육하고, 교육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다움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축복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호세아선지자가 꾸중하는 내용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특권과 축복만 생각했지, 하나님께 서약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혹시, 곡식 밟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 가운데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계십니까? 그게 혹시 잘 먹고 잘 사는 것, 축복은 아닙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 백성다움이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우리 모두는 신앙의 변질이 생기고 하나님을 버린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하나님만 사랑하고, 이웃을 인도하며,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3)이것이 신앙의 최고의 가치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참다운 신앙의 가치를 붙들고 살아가는 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