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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다윗의 위대함!(사무엘하 강해21)
 본문말씀 : 삼하19:16-2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2.14
조회 : 8,709   추천 : 0  
본문 : 삼하19:16-23절  사무엘하 강해21
제목 : 다윗의 위대함!
   
  성도들의 삶속으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러분도 잘 아는 손양원 목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환자들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사신 것으로 유명한 분이면서도 또한, 용서로도 유명하신 분입니다. 손목사님에게는 동인, 동신이라는 2아들이 있었습니다. 참 믿음이 좋고, 실력도 뛰어나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1948년 여수 순천 반란 사건때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좌익 학생에 의해서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총살당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감옥에 갇힌 그 청년을 풀어주기 위해서 탄원서를 제출했고, 감옥에서 풀려난 그 청년, 곧 자식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런 손양원목사님을 사람들이 보면서, 20세의 사랑의 사도이며, 20세 가장 위대한 성자라도 부릅니다. 참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손양원 목사님처럼 용서를 실천한 다윗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모두도 손양원목사님처럼, 그리고 다윗처럼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다윗의 위대함
 오늘 본문은 다윗이 유다지파의 주도하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환궁한다는 소식을 들은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급히 다윗에게 찾아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시므이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십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시므이가 다윗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나십니까? 시므이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을 가던 길에 찾아와 돌과 흙을 던지며 ‘피 흘린 자요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고 계속해서 저주를 쏱어 부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시므리가 다윗을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19-20절을 보면, 시므이가 다윗을 찾아온 이유가 설명됩니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죽을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발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21절을 보면, 시므이의 말들을 듣고 있던 아비새가 다윗왕에게 시므이를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23절을 보면, 다윗은 시므이에게 죽이지 않겠다고, 용서하겠다고 말을 해줍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내용입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다윗의 위대함에 대해서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13:22절을 보면, 바울은 다윗을 ‘내 마음에 맞는 자(합한 자).’ 라고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기를 보면,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별을 다윗의 별이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국기에 다윗에 별을 그려 넣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만큼 다윗이 위대한 왕이기 때문이고, 다윗이 통치하던 때와 같이 이스라엘이 강성하고 번영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다윗은 정말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그토록 위대한 왕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싸움과 전쟁을 잘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또는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학문이 뛰어났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가난한 목동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았을 뿐입니다. 다윗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배움을 갖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이 단지 잘한 것은 있었다면, 수금을 연주하는 것과 물 맺돌을 잘 던지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을 이기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골리앗을 이긴 것은 다윗의 실력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일 뿐입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이긴 후 다윗은 사울에게 미움을 받게 되고 십수년간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살게 됩니다. 심지어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 땅에서 살기 위해 미친척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리어 부하의 아내에게 간음을 저지르고, 충신이었던 부하 우리야를 죽였고, 자식도 잘 건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전혀 특별하거나 위대해 보일만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도리어 특별한 것을 찾는 다면,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이 낫고, 왕이된 후 일천번제를 먼저 드리고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이 낫고, 유다의 종교개혁을 주도한 요시야왕이 낫고, 하나님을 감동시킨 히스기야왕이 나을 겁니다. 다윗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여겨지며,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윗에게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아둘람 동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다윗의 사람은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400여명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다윗은 그들은 품어주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이런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가장 큰 매력은 용서의 마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끝까지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울을 위해 슬퍼했고 사울왕이 죽자 그의 장례를 치루어 주었고, 사울왕의 손주였고 절름발이였던 므비보셋을 책임졌으며, 자신을 주인에게서 도망친 떠돌이 종이라고 비난하는 나발이라는 사람을 용서했고, 자신을 등지고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도 용서했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편에선 유다민족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자신을 저주한 시므이를 용서합니다. 바로 이런 다윗의 용서의 모습이 다윗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기게 한 것입니다.

 또, 요셉도 참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고난을 잘 견디었기 때문입니까? 성실했기 때문일까요? 꿈 해몽을 잘했기 때문입니까? 총리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풍년과 흉년을 잘 대비했기 떄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감동을 주는 사람, 무엇보다 용서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형들의 손에 죽을 뻔했고, 천만다행 살았지만 노예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럴 때 요셉의 마음을 어떠했을까요? 형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고,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애굽나라의 총리가 되었고, 그때 형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복수 할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용서했습니다. 창45: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자 크게 두려워 하던 형들에게 창50:21절에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렇듯 요셉은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고,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요셉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또 욥도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결 같은 신앙때문일까요? 고난을 잘 견겼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참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욥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자신을 비난하고 정죄한 친구들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또, 스데반 집사도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스데반집사님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령충만했기 때문입니까? 교회 직분자로서 그 직무를 잘 감당했기 때문일까요? 다 맞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행7:60절에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용서의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가장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위대하신 분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설교를 잘했기 때문입니까?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입니까? 사람의 마음을 꽤뚫어 보는 독심술이 있기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장 위대한 분이라고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확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정말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정말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뭐든지 잘하는 사람, 능력과 실력이 탁월한 사람,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 성경적인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 열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 네 훌륭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사람입니다. 다시말해, 사랑이 많은 사람이며,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며,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이 바라는 그리스도인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용서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 모두가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용서할 이유!
 그렇다면, 우리들이 누구든지 용서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과연 다윗은 시므이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용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자신이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그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용서를 생각하며, 누구라도 용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모든 행위의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까? 그리고 그 요구중에는 우리가 하기 싫은 것, 부담스러운 것,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오른 빰을 치면 왼빰을 돌려대라,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구하는 자에게 주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 그 밖에도 섬김, 희생, 헌신..., 등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것들 중에서 단 하나도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행해주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왼빰까지 돌려대 주셨고, 십리를 가주셨고, 속옷까지 주셨고, 구하는 것들을 주셨고,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고, 헌신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행해주지 않은신 것은 우리들에게 결코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먼저 그 일을 행해주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고, 그것이 부담으로 느껴지실 때,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내게 그 일을 해주셨다는 점을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먼저 감동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였던 우리들을 먼저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용서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의 이유입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받은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을 간과하고, 용서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지는 완악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사1:18절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고 하나님이 용서를 선포해주셨습니다. 또, 사43:25절에서도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그러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엡4: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또, 골3:13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또, 마18:22절에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용서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명령이며 의무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특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용서는 용서를 받아본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용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줄 아는 따듯한 사람, 자비하고 인자한 사람이 되십시오! 무엇보다 용서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나 아직도 용서가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못 밖히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3.용서의 특권을 누리십시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시므온이 다윗에게 용서를 받았을 때 시므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이 시므온을 용서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떠했을 것 같습니까? 괴로웠을까요? 억울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마음의 시원했을 것이고, 뜨거웠을 것이고, 평안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은 자유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천국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아실 것입니다. 그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을 시작할 무렵, 그의 동료화가와 심한 논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가룟유다의 얼굴에 그 친구의 얼굴을 그려 넣기로 결심하고 복수심을 가지고 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리려고 애를 써도 그릴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다빈치는 자신의 친구를 용서하고 유다의 얼굴을 지웠다고 합니다. 그 후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미움과 복수심에서 자유하게 되고, 마음의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용서할 때, 여러분의 삶을 망가뜨리고, 괴롭히는 여러 가지 나쁜 감정에서 자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용서로 이러한 자유를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잠19:1절에‘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본문과 삶
 1)사랑, 특별히 용서의 삶은 위대한 삶입니다.
 2)우리들이 용서할 이유는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3)용서는 명령이며 의무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특권입니다. 이 특권과 자유라는 혜택을 누리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용서를 통해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자리로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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