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두 마음은 아닙니까?(호세아서강해28)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두 마음은 아닙니까?(호세아서강해28)
 본문말씀 : 호10:1-8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2.12
조회 : 8,552   추천 : 0  
본문 : 호10:1-8절   호세아서강해28
제목 : 두 마음은 아닙니까?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인생을 살다보면, 다양한 갈등을 격게 됩니다. 예를들면, 부부사이의 갈등, 부모와 사이의 갈등, 형제들간의 갈등, 친구간의 갈등, 교우들간의 갈등.., 등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도 갈등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그리고 무엇인가를 선택하고자 할 때에도 갈등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예를들면, 이것을 선택할까? 저것을 선택할까?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수없이 많은 갈등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에 그리고 신앙생활에 다양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안에 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갈등의 순간을 겪게 되는 것은 우리안에 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두 마음을 품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심판의 내용이 무엇이며. 특별히 두 마음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가장 무서운 심판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경고하시고 결국은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말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각을 심판하실 것이고, 여러분의 마음을 심판하실 것이고, 여러분의 감정을 심판하실 것이고, 이웃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와 자세를 심판하실 것이고, 여러분의 은밀한 행동을 심판하실 것이고, 여러분의 삶을 심판하실 것이고, 여러분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심판하실 것이고, 여러분에게 맡기신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염두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의 실현 때문이고, 둘째는, 우리들의 잘못을 깨달게 하고 교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대면 적어도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은 공의와 사랑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깨달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소원하고 목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심판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2절을 보면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고 말하며,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쳐서 깨뜨린다는 말은 동물의 목을 꺽을 때 사용하는 대단히 무서운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쳐서 깨뜨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단과 주상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금송아지 특별히 바알을 위한 제단과 주상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알의 제단과 주상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에게 번영과 복을 준 은인들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번영과 복을 바알이 주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호2:5절을 보면 이 점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누리고 있었던 많은 번영과 복이 바알이 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호2:8절을 보면,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의 제단과 주상이 모든 번영과 복의 원천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착각은 북이스라엘 사람들만 가지고 있었던 착각은 아닙니다. 남유다 역시 같은 착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점은 렘44:17-18절을 보면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늘의 여왕(아스다롯 우상)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 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이렇듯 유다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누리는 번영과 복이 하늘의 여왕(아스다롯)에 의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도 이스라엘, 유다와 같은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즉,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다른 것이 주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를들면,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을 내 힘과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지금 나의 신앙의 수준을 내 열심히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는, 어떤 신자들은 내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은 것을 내가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내가 뭔가를 잘하는 것을 열정의 산물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또, 어떤 신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것을 자신의 실력 때문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착각들이 없습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번영과 복의 원천으로 여기던 제단과 우상을 쳐서 깨뜨리시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모든 ‘번영과 복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또 다른 심판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6절을 보면,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간단히 말하면,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앗수르의 속국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7절을 보면,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것이 망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시말해,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또한 이스라엘일 받을 심판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받을 심판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들의 번영과 복을 거두어가시겠다는 것이고, 결국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번영을 잃고,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심판의 내용이 소개됩니다. 바로 5절입니다.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의 영광은 그들이 숭배하던 금송아지 우상의 영광을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영광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금송아지 영광마저 떠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도 떠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받은 가장 무서운 심판은 무엇입니까? 죽는 자가 되는 것, 일해야 먹고 살수 있는 것, 해산하는 고통, 남편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 그러나 가장 무서운 심판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또,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 우상에 빠지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가장 무서운 심판은 무엇입니까?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물론, 모세의 중보로 선언되지는 않았습니다. 또, 에스겔서에서 말하는 유다가 받을 가장 무서운 심판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이방나라에게 공격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범죄로 인해서 때때로 하나님께 다양한 심판을 받습니다. 예를들면, 인생의 채찍인 고난, 실패, 사랑하는 무엇인가를 거두어 가심.., 그러나 가장 무서운 심판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지 않는 순간이 없고,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끊임없이 간섭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간섭과 인도하심의 방법 중 하나가, 마치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이 아무런 간섭과 제재를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심판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주한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2.두 마음이란? 
 이제 우리들이 확인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죄가 무엇인가? 입니다. 과연 이스라엘의 심판을 결정 짓게 한 죄는 무엇일까요? 한 두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특별히 강조하는 죄가 있습니다. 바로 2절에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두 마음을 품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이 ‘두 마음을 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두 마음이란 어떤 마음을 말한느 것일까요? 크게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만 숭배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예배, 절기, 제사..., 스스로가 만족스럽게 여길 정도로 잘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버린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이방의 우상도 함께 섬긴 것입니다. 우습게 말하면, 하나님에게도 재미를 보고, 이방 우상에게도 재미를 보겠다는 두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는 각 각의 능력이 있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전쟁을 주관하는 신, 바알을 풍요와 번영을 주관하는 신, 아세라는 다산을 주관하는 신..., 등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도 재미를 보고, 우상에게도 재미를 보겠다는 두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두 마음이 심판을 결정짓게 한 죄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바알, 아세라, 몰렉..., 등의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께도 재미를 보고, 세상에서도 재미를 보고 싶어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도 얻고, 세상이 주고자 하는 것도 얻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세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지는 않습니까? 또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 역시 두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스라엘과 똑같은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두 마음은 여러분의 신앙에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의 신앙의 성장을 방해하고 실패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은 데마라는 사람을 아실 것입니다.(딤후4:11절) 데마는 한때,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신앙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세상을 사랑하는 두 마음 때문입니다. 또,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해봅시다. 마르다가 주님께 분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도 듣고 싶고, 대접도 하고 싶고..., 등 두 마음 때문입니다. 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꾸중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다 얻고자 하는 두 마음 때문입니다. 이렇듯 두 마음을 품으면 신앙이 성장, 성숙 할 수 없고, 신앙이 실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마음의 중요한 의미 두 번째는, ‘내가 목적이 되는 신앙’을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왜 섬겼을까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필요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때문일까요? 경외하는 마음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아내고 싶은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냐고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숭배한 것을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 목적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상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우상과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내 자신을 위함이라면 바로 이것이 두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호세아선지자가 이스라엘을 꾸중하는 핵심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인격과 신뢰 그리고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소원을 위한 대상을 삼은 것을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꾸중하신 이유 역시, 그들이 열심이나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이유와 목적이 되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스라엘처럼 두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내 자신이 이유와 목적이 되는, 내 자신의 만족이 이유인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라고요? 그러면 한번 확인해 봅시다. 만약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에게 아무런 복을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섬기시겠습니까? 더 이상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을 섬기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예’ 입니까? 아니면 ‘아니요’ 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만일 ‘아니요’ ‘글쎄요’ 라고 대답한다면, 그게 바로 두 마음인 것입니다. 또, 신앙생활을 나 편하게 살고, 나 잘 먹고 잘살기 위해 한다면 이것 역시 두 마음인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두 마음을 품어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자신이 이유와 목적이 되는 그리고 하나님은 도구와 수단이 되어버린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두 마음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혼란하게 하며, 갈등하게 하며,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3.하나님께만 일편단심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신앙이 실패하고, 심판을 맞게 된 것은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격적인 대상, 신뢰와 교제의 대상으로 삼지 못했고, 도리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양, 염소, 소를 잡아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지 못한 것이 신앙의 실패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신앙생활 가운데 다양한 실패를 저지릅니다. 그 이유 역시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바라고 원하는 일에 대한 수단과 방법이십니까? 아니면 사랑의 대상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혹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놓친채 신앙의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실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다시한번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확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열정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마치,  고려말 정몽주의 시조 단심가처럼 말입니다.‘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이 시조는 정몽주가 비록 망해가는 고려나라지만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마음을 기록한 시조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되거나,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부터 신앙의 회복과 성장과 능력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두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만으로 만족하십시오! 
  2)내가 이유와 목적이 되는 신앙이 되면 안됩니다.
  3)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십시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을 확정하시고, 마음과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갈등, 흔들림, 실패없는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107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14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8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10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97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61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3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20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5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9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8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25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2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6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8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70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9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5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7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