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10:1-8절 호세아서강해27
제목 : 하나님의 심판!
성도들의 삶속으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 떨어져 적어도 21만명이 죽음을 당했고, 최소한 42만명 이상의 원폭피해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몇 일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에 경고 전단지가 배포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히로시마, 나가사키 시민들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8시까지 20km 밖으로 대피하라!’ 그런데 이 경고 전단지를 받아본 사람들중 소수의 사람들만 경고를 듣고 대피를 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시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점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의 심판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오늘 본문은 죄악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심판하겠다고 경고하시는 장면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큰 주제안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곧 ‘제단을 많게 하며...,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그리고 이 부분을 5절 이하에서 더 자세히 말을 합니다. 즉, ‘벧아웬의 송아지’ 라고 말을 합니다. 벧아웬은 어디입니까? 바로 벧엘입니다. 그러면 벧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면 벧아웬의 뜻은 무엇입니까? 살육의 집, 거짓의 집, 사악함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좀 의역하면 우상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벧엘이 벧아웬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그 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을 하게 됩니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하여 더 세력이 강했던 유다의 명칭을 따서 남유다가 되어 르호보암이 통치를 하게 되고, 북쪽은 나머지 10지파를 중심으로 하였기에 이스라엘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고, 여로보암1세가 통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1세에게 가장 큰 고민은 이스라엘안에 성전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남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을 가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루살렘을 방문하다보면 북이스라엘이 정체성이 없어질 것을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1세는 자기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에 있는 단과 이스라엘의 남쪽 경계에 있던 벧엘에 제단을 만들고,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제단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 전역에 우상숭배가 번져가게 됩니다. 바로 이 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을 보면,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살펴보도록 하고 간단히만 말하면, 벧엘과 단에 만든 제단과 드려진 제물은 두 마음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에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5절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6절에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의 대표지파)은 수치를 받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절에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같이 멸망할 것이며.’ 8절에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벧아웬의 줄임말)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 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리라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모두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경고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지금 경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경고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도 타락한 소돔성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했습니다. 또한, 노아를 통해서 죄악이 관영한 삶을 살아가는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물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또, 계속해서 완악함으로 거역하는 바로왕에게는 장남을 죽이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왕에게 계속 불순종하게 되면 버리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우리의 모습속에는 하나님께서 경고하실 만한 일은 없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없을까요? 아닙니다. 저에게도 있고,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고민하셔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과연 여러분을 가정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일은 없을까요? 과연 부모된 여러분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일은 없을까요? 과연 여러분의 사업터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일은 없을까요? 과연 우리 교회(직분자)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있는 일은 없을까요? 과연 이 땅의 한국교회를 향해서는 경고하고 있는 일은 없을까요?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다. 두려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둘째는,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경고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경고하신 후에 반드시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이 세워지기 이전인 사사시대에는 많은 사사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경고하셨고, 그 경고한대로 심판하셨습니다. 또한 왕이 세워진 이후의 왕정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경고하셨고 경고하신대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로 여겨지는 호세아선지자들을 통해서 경고하셨고, 그 경고한대로 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유다 역시 심판을 경고한대로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또,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한대로 그들을 심판했습니다. 또, 롯에 경고한대로 소돔성을 심판했습니다. 또, 노아 시대 사람들에게 경고한대로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바로왕에게 경고한대로 장자를 죽이셨습니다. 사울왕에게 버리시겠다고 경고하신대로 심판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경고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경고하신대로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롯의 사위들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가볍게 여기거나 농담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말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은밀한 행동까지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혹시 지금 하나님의 심판으로 마주한 것은 없습니까? 그러므로 매일의 삶속에서 내게 하나님께 경고 받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하고,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2.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심판이란 상과 벌을 모두 포함한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3가지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법을 만드신 분이시며, 공의와 정의로 그 법을 실현시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심판을 행하십니다. 좀 쉽게 말하면, 잘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기 위함이고, 못한 자들에게는 벌을 주시기 위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는 지극히 기초적이고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조금 더 중요한 둘째 이유는, 우리들에게 가르침, 깨달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엄중하신 경고를 무시했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뒤 이스라엘의 반응입니다. 3절을 보면,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은 후에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게 되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그들이 깨달게 될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과 왕을 의지하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왕은 단순히 왕이라는 사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를 포함한 말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했던 것들이 소용없는 일이고,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5절을 보면,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라고 말합니다. 즉, 그들이 숭배했던 송아지 우상, 뿐만 아니라 많은 우상숭배도 힘이 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았고, 소용없는 일이며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8절을 보면,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고 부끄러워 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날은 그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벌을 받는 수준의 날이 아니라, 비로써 그들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 날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세번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상과 벌이라는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를 묶으십니다. 그리고 가르침과 교훈으로 우리를 자신과 묶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잘할 때 상을 주시고, 못할 때 벌을 주십니다. 의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상과 벌을 주시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고 벌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좋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함이고, 반대로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아파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독점하시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우리의 잘못을 깨달게 하시고 교훈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교훈하시고 가르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교훈하시고 가르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 역시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고, 사사를 보냈고, 선지자를 끊임없이 보내셨고 그들을 통해서 가르치시고, 교훈하기를 중단하지 않으셨고, 심판도 행하셨습니다. 그 이유의 핵심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런 측면으로 하나님의 심판이란? 결국,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닮아가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티협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며 은혜로운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훈하시고, 가르치시고, 심판하시는 이유 역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함이 가장 본질적인 이유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심판하시는 이유이며 목적이며 본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늘 강조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며, 자비와 인애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심판, 징계, 가르치시고, 깨달게 하시는 모든 순간은 여러분을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일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3.하나님의 심판을 염두하는 삶이란?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와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하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하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벌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건 없을까..., 이런 마음으로 벌 벌 떨면서 사는 것일까요?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두려움도 우리는 분명히 갖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하며 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소원하고 목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답을 다 드렸지만 질문합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가장 소원하고, 가장 목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가치를 두고 가장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예배드리는 것, 헌금하는 것, 봉사의 일을 하는 것, 열심을 내는 것..., 등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예배, 기도,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착각을 합니다. 어떤 착각입니까? 예배를 잘 드리면 신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는 착각, 또, 정해진 헌금을 드리면 신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다는 착각, 또, 교회안에서 어떤 수고와 봉사의 일을 하는 것으로 신자의 할 도리를 다 했다는 착각..., 그 밖에도 무엇인가를 하는 것으로 신자의 도리를 다했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을 놓쳤다면, 정말 무서운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신앙의 연수가 많아지고, 열심을 가지지만 신자로서 신앙이 성숙해지지 않게 되고, 무엇보다 신자로서의 인격과 성품에는 변화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을 놓치고 열심과 열정을 말한다면, 여러분이 바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이고, 바리새인이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을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앙의 소원과 목표를 놓쳐버리곤 합니다. 저 역시 너무 자주 놓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는 일을 잘 붙들고 있습니까? 놓쳤습니까? 다시 붙잡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 하나님을 닮아가고자 할 때, 신앙의 기쁨이 생기고, 신앙의 담대함과 능력이 생기고, 신앙의 수준이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꼭 붙들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재판장 곧 심판주(審判主, judge)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래서 우리를 끊임없이 경고하고 심판하십니다.
2)물론, 우리를 심판하시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3)즉, 우리의 잘못을 깨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내는 것을 신앙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하나님을 닮아감으로만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능력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