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19:1-8절 사무엘하 강해19
제목 : 올바른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세계적인 작곡가이며, 바이올린연주자인 모차르트에 관한 한 일화가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성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차르트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모차르트는 바이올린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다른 데서 바이올린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수업료를 두 배로 내십시오. 그러나 배운 적이 없다면 수업료를 반만 내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이미 배우고 열심히 연습을 했지만 잘못된 습관을 교정하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열심히 했지만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을 교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를 열심내는 것은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얼마다 올바르게 열심을 냈는가라는 점입니다. 만일 올바르지 않은 일에 열심을 냈다면, 그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열심이 있었던 요압, 그러나 요압의 열심은 결코 올바른 열심이 아니었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대한 열심히 있는가? 확인하시고, 또한 지금 나에게 있는 열심이 올바른 열심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열심 있는 신자가 됩시다.
오늘 본문은 압살롬의 반역에서 승리를 거둔 다윗이 슬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요압이 다윗왕에게 항의하는 장면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1절을 보면, 비록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죽은 압살롬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는 다윗왕의 소식이 요압에게 전해집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요압이 다윗왕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윗왕의 슬픔이 부당하다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4절을 보면, 여전히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습니다. 그때 5-6절을 보면, 요압이 다윗왕의 부당함을 맹렬히 비난을 합니다. 그리고 7절에 요압이 다윗에게 당장 나가서 부하들에게 격려를 해주라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백성들이 다윗을 버릴것이고 화가 임할 것이라고 협박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8절을 보면, 다윗이 요압의 제안을 따라 백성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요압의 열심에 대해서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도망을 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윗의 부하로 다윗과 함께 있었던 사람입니다. 즉, 다윗과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한 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소개하는 요압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열심히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삼하2장을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후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과 싸움이 있을 때에도 요압은 물러서지 않고 선봉에 선 사람입니다. 삼하3장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브넬과 다윗이 통일왕국을 세우기 위해 협약을 맺을은 원수나라의 지도자라는 이유로 아브넬을 죽인 사람도 요압입니다. 삼하10장을 보면, 유다와 암몬사람들과의 전쟁에서도 요압이 앞장을 섰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삼하11장을 보면, 다윗의 지시를 받고 우리야를 죽인 것도 요압이었습니다. 또 삼하14장을 보면,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그랄땅에 망명 했을때 다윗은 압살롬을 그리워 합니다. 그때 압살롬을 귀환시키는 일을 한 사람이 또 요압입니다. 그리고 삼하18장을 보면, 반란군의 대장이었던 압살롬을 죽인것도 요압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슬픔속에 잠겨있는 다윗을 백성들 앞으로 이끌어 낸 것 역시 요압이 한 일입니다. 이런 요압에 대한 기록을 보면, 요압은 틀림없이 열심이 있었던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열심히 있으니까 한나라의 지도자로 생활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도 무엇을 하던지 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가정을 세우는 일에도 열심을 가지고 해야 하며, 직장에서도 열심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고, 사업을 하는 일에도 열심을 가지고 해야 하고, 자기 개발을 위해서도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건강을 위해서도 열심을 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열심을 내서 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열심을 갖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무엇을 열심내야 하겠습니까? 성경에 열심내야 할것에 대한 구절을 찾아보면 몇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먼저, 왕상19:14절을 보면,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엘리야선지자는 하나님을 위한 일, 즉,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한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또, 행18:25절을 보면, 아볼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곧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을 다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또, 롬12:11절을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을 합니다. 즉,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주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라고 말을 합니다. 또, 벧전3:13절을 보면,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곧 베드로사도는 성도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벧전4:8절을 보면, 베드로는 계속해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서로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미움이 떠나지 않는것도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계3:19절을 보면,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즉,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회개하는 일도 열심을 내야 할 일이라고 말을 합니다. 회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출발시키는 은혜의 순간입니다. 또, 딤전4:15절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즉,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열심을 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들이 열심을 내야 할 것은 많이 있습니다. 구제하는 일도 열심내야 하고, 전도도 열심내야 하고, 기도하는 일도 열심을 내야 하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일도 또한 열심을 내야 합니다.
사랑하는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슨 일에든 열심있는 신자이십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열심은 있으십니까? 아무린 분주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 보려는 열심은 있으십니까? 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아낌 없는 헌신을 하고자 하는 열심은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우기 위한 열심도 가지고 있으십니까? 서로 사랑하고자 하는 열심은 있으십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열심히 식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그러나 올바른 열심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요압이 얼마나 열심히 있었던 사람인가? 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압에게 대단한 열심이 있었지만, 성경은 요압을 훌륭한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로, 훗날 다윗은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우기로 계획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유언을 합니다. 그 유언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요압을 반드시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압의 정치적인 간사함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고, 어두운 야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요압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만 보아도 요압은 열심 있는 사람이었지만, 훌륭한 사람이거나,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심이 있었던 요압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요압의 열심이 올바른 열심히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요압의 열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열심이 아닌, 잘못된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사회생활을 하던, 신앙생활을 하던 열심을 가지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다고 해서 다 옳거나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우리들의 열심이 인정받고 칭찬받는 열심히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바른 열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지나가던 노인이 그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젊은이, 여기서 무얼 하고 있소?’ 그 청년은 연신 땀을 닦으면서 대답을 했습니다.‘예, 우물을 파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노인은 그 청년에게 ‘이곳은 강과는 거리가 멀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니 헛수고하지 말고 다른 데를 파보는 게 어떻겠나?’ 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때 그 청년이 말하기를 ‘나는 부지런하고 열심히 남다른 사람입니다. 열심히 파기만 하면 분명 물이 나올 것입니다.’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끝내 물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곳을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그릇된 열심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도리어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베이트라는 사람은 그릇된 열심을 ‘화로가 없는 불이요, 칼집 없는 칼이며, 고삐 없는 숫말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마치 비행기가 땅을 향해 속도를 높이는 것과 같고, 자동차가 끊어진 도로를 향해 질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올바르지 않은 열심은 위험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릇된 열심은 때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열심이 된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남다른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이 도리어 천국문을 가로막는 열심이 되었고,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도록 만드는 열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열심은 인정, 칭찬 받을 만한 열심입니까? 아니면, 올바르지 않은 열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열심은 아닙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올바른 열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열심히 되기 위한 필요 충분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이 기준에 맞는 열심히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른 열심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의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열심이었습니다. 그의 열심은 자신의 기준, 자신의 기분,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열심이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압살롬 사건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그것이 왕의 명령입니다. 마땅히 따라야할 명령입니다. 그런데 요압은 압살롬이 상수리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부하들에게 죽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왕의 명령임을 알기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자신의 칼을 뽑아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였습니다. 자신의 기준이나 생각하기에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그릇된 열심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생각, 내 신념, 내 경험, 내 원함, 내 기준을 따른 열심은 그릇된 열심입니다. 올바른 열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근거한 열심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열심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자기 신념과 자기 기준과 자기 생각, 자기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말씀의 컨트롤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참 위험한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권면 받지 못하면, 요압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반대로, 교회안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경받을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컨트롤을 기쁨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자기 기준, 경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대로 살고자 열심 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열심은 올바른 열심이고, 기적을 만들고, 귀한 열매를 맺는 열심인 것입니다.
둘째로, 올바른 열심이란?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는 열심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이야 말로 가장 큰 하나님의 뜻이고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다윗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요압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왕이 압살롬의 죽음으로 그렇게 슬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당장 나가서 당신을 위해 싸운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라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왕이라면 비록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백성을 위로해야 마땅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충신이라면 왕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요압이 놓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왕을 사랑하는 마음, 왕의 아픔을 헤아리는 일은 하지 못한 것입니다. 단지 옳은 말을 하는 것에만 열심을 낸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를 찾는다면, 고린도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우상에 대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따라서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실수가 무엇입니까? 우상에 대한 지식이 없고, 또는 믿음의 담력이 없는 연약한 성도들에게 왜 그것도 못먹냐고 정죄한 것입니다. 우상의 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들을 사랑하고 그래서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사랑을 놓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요압과 같은 실수를 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실수입니까? 그것은 옳은 말, 옳은 일을 하면서 사랑을 놓치는 실수입니다. 예를들면,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할 때, 어떤 권면을 할 때..., 생각보다 많이 우리는 사랑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열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기준한 열심, 사랑을 놓치지 않는 열심, 이러한 올바른 열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3.올바른 열심을 가지려면
그렇다면, 우리들이 올바른 열심,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칭찬하실 만한 올바른 열심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나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목적하고 소원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올바른 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빌3:13절 ‘달려가노라.’ 라고 자신의 열심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올바른 열심을 가질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을 목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올바른 열심을 갖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목적해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들이 올바른 열심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기쁨과 만족을 목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갈1: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입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올바른 열심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기쁨을 소원하시고 목적하십시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이 열심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무엇이든 열심있는 신자가 됩시다.
2)그러나 올바른 열심이어야 합니다.
즉, 자신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뜻, 사랑을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3)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을 소원하고 목적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올바른 열심을 가짐으로 늘 귀하게, 그리고 끝까지 쓰임받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