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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은혜를 잊은 이스라엘!(호세아서강해26 )
 본문말씀 : 호9:10-17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1.7
조회 : 8,907   추천 : 0  
본문 : 호9:10-17절 호세아서강해26 
제목 : 은혜를 잊은 이스라엘!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잊어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지난 날의 실패와 상처, 후회와 실수, 안좋은 기억과 감정..., 등 만일 이런 것들을 잊어버리지 못하면 어둡고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더욱이 문제는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날의 잊어야 할 것들을 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들이 결코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과 도움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잊는다면 금수(禽獸)보다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지난 날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잊는다면 참다운 그리스도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답게 살수도 없게 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음을 인해서 하나님 백성다울수 없었던 이스라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왜 중요하며, 더나가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광야에서 만난 포도’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열매를 봄 같이.’ 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화를 내시고, 분노하시는 장면을 통해서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배신이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다른 우상에게 간 배신을 말하거나, 하나님께 제사와 절기를 지키지 않는 배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배신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음이 배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왜 배신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나님 노릇 해주겠다는 언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 백성답게 살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고 배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아버지 노릇해주겠다는 것이고, 예수 믿는 우리 입장에서는 자녀노릇 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배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남은 인생동안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순종의 삶을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러인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바 크신 은혜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이 점을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1, 13절을 보면,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에브라임은 누구입니까? 야곱의 손주이며, 요셉의 차자입니다. 그리고 훗날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가장 번성하고 강성한 지파가 되었고, 그래서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차자입니다. 장자가 아닙니다. 장자는 므낫세입니다. 그러나 창48장을 보면, 야곱이 요셉을 통해 얻은 손주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야곱이 에브라임에게 갑절의 축복을 한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결코 장자만 받을수 있는 갑절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이 장자의 축복인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신33장을 보면, 훗날 모세가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될 이스라엘 각 지파들을 마지막으로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다음과 같이 축복을 합니다.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요’ 장자인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더 크게 축복합니다. 그리고 결국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가장 강성한 지파가 되고, 그래서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가 됩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야곱과 모세의 축복은 그들의 생각이나 의지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님께 근거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을 그렇게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한 이유가 에브라임에게 있었을까요? 갑절을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 지파중에서 가장 번성하게될 만한 축복을 받을 자격이나 조건이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에브라임에게 그런 축복을 받을 만한 이유와 자격과 조건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말고는 어떤 이유도 없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브라임이 갑절을 축복을 받아 북이스라엘 다른 지파들보다 강성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13절을 보면, 더 정확히 설명됩니다. 즉,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것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심긴’입니다. 이 단어를 더 정확히 말하면, ‘옮겨 심겨진’ 이라는 뜻입니다. 즉, 박토(薄土-매우 메마른 땅)에서 옥토(沃土-매우 기름진 땅)로 옮겨 심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애굽의 노예였던 그들, 광야에서 방황하던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신 것과 같습니다. 결국, 에브라임이 받은 갑절의 축복과 그들의 번영과 강성함은 그들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옥토로 옮겨 심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가장 먼저는, 구원(옮겨짐 –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정에서 거룩으로, 원수에서 자녀로, 불의에서 의로움으로...,등)이라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왜 은혜입니까? 그것은 구원을 얻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 구원을 받을 만한 이유가 우리안에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구원을 얻은 이후에도 너무나 많은 복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것도 다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구원을 받고 신자가 되었지만, 단한번이라도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원을 받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도 우리가 받고 누리게 될 모든 것은 하나님은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감사하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봅시다. 하나님께 받은 풍성하신 은혜를 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삶인 사랑, 용서, 섬김, 인내, 감사, 겸손..., 이 될수 없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우는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알고 감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 다운 삶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예로, 다윗과 바울은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손꼽히는 분들입니다. 이들이 위대한 신앙인의 삶을 살수 있었던 이유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다윗은 시116:12절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라는 신앙안에서 살았고, 바울은 고전15:10절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는 신앙안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2.은혜받은 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고 기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은혜받은 자로서의 가장 본질적인 의무와 책임은 무엇일까요? 2가지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나를 고치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후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계명 곧 율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로 주셨고, 둘째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삼았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 가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답게 자신들을 고치고 만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원얻을 자격, 은혜받을 자격이나 조건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표이고, 더나가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어 가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고치고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의무이며 책임이며, 더나가서 신앙의 핵심이며 본질입니다. 이 점을 2가지 본문을 통해서 조금더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롬12장을 봅시다.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롬12:1절을 ‘그러므로’ 라고 시작을 합니다. 이 말은 앞에 있는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롬11장은 어떤 이야기입니까?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자들이 되었고, 그러므로 롬12:1-2절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롬12:1-2절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늘 분별하라는 것이고, 그 뜻에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가라’ 는 것입니다. 이 점을 엡4:22-24절에서 더 분명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즉,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구원받은 자이며,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 은혜받은 자의 의무와 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로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하나님의 뜻을 기준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고쳐나가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변화되고 성장해 가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격과 성품과 삶을 더 거룩하게, 더 하나님을 닮아가게 만들어 가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자로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구원,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며,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계속해서 은혜받은 자에게 요구하되는 의무와 책임 두번째는,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많고 많은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19:6절을 보면,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거룩한 백성 삼으신 이유는 이방인 나라를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벧전2:9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라고 말을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이유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서로에게 디딤돌이 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딤돌은 무엇입니까? 개울 중간 중간 놓여진 돌로서 개울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돕는 돌입니다. 또는, 마루 아래 놓여진 돌로서 마루를 올라가기 쉽도록 돕는 돌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디딤돌과 같았던 신앙의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예를들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당시 백성들에게 큰 신뢰와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사무엘을 믿고 잘 따랐습니다. 얼마든지 왕이 될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왕이 될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사무엘은 사울과 다윗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왕으로 세워주는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사무엘은 디딤돌과 같은 사람인 것입니다. 또, 갈렙입니다. 갈렙은 12명의 정탐꾼 중에 한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여호수아보다도 먼저 주장한 사람입니다.(민13:30절 14:6-9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20세 이상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를 말씀하실 때에도 갈렙을 먼저 언급하셨습니다.(민14:30절)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은 더 어른인 갈렙을 리더로 세우지 아니하고, 여호수아를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갈렙은 섭섭할 수도 있었고, 시기심이 들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번도 여호수아의 리더십에 도전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갈렙은 여호수아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할수 있도록 항상 앞장서서 도왔습니다. 즉, 디딤돌의 역할을 잘한 것입니다. 또,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의 귀한 일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바울이 믿는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을 이끌어준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바울을 안디옥교회의 리더로 세웠고, 바울의 선교사역을 크게 도왔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디딤돌이 되어준 것입니다. 이렇듯 사울과 다윗 뒤에는 사무엘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여호수아 뒤에는 갈렙이라는 디딤돌이 있었고, 바울 뒤에는 바나바라는 디딤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기까지 여러분에게도 많은 디딤돌 역할을 해준 신앙의 은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도 서로에게 신앙의 디딤돌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과 은혜받은자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여러분은 섬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남들보다 일을 좀 더 하는 것,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섬김이란 누군가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 다른 사람의 신앙을 완성시키는 일에 도와주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섬김입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스스로를 돌아보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진정한 섬김입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더 이상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더 세워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디딤돌이 됨으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게 되고,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워지는 열매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3.이것도 은혜로 되어집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은혜받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가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나를 고쳐서 나의 신앙을 완성해가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의 신앙이 완성되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들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가 되는 일부터 신자답게 살아가는 모든 순간 내 힘을 할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기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나의 나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본문과 삶
  1)잊지 마십시오! 
  2)그러나 은혜를 잊지 않음에 멈추지 말고, 은혜받은 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십시오! 
  3)나의 신앙을 완성해가며, 다른 사람의 신앙을 완성해가도록 돕는 일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힘입어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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