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18:1-33(1-15)절 사무엘하 강해18
제목 : 복수 vs 용서!
성도들의 삶속으로
젊은 연인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남자친구에게 입영통치서가 날아왔고, 곧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여자 친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헤어지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입대할 때 가지고간 자신의 사진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너무나 화가난 이 남자는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대원들에게 부탁해서 부대원들의 여자친구 사진을 여러장 모았고, 그 사진들을 편지 한통과 함께 여자친구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게 네 사진인지 기억이 안나네, 네 것만 빼고 다른 사진은 빨리 돌려보내!’ 참 재미있는 복수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복수와 관련된 2사람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수의 사람이 아닌, 용서의 사람이 되는 것이 복된 신자의 삶임을 확인하시고, 용서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패배자 압살롬
오늘 본문은 압살롬의 패배와 죽음, 그리고 다윗의 승리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2절을 보면, 압살롬과의 전투를 위해서 모든 군대를 요압, 아비새, 그리고 잇대에게 나누어 편성을 합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3명의 지도자들과 군사들에게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드리어 에브라임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군대의 거의 대부분인 2만명을 죽이고 승리기 잡았습니다. 그러자 9절을 보면,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도망치다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머리가 걸려 메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군사가 나무에 메달려 있는 압살롬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의 부탁으로 인해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14절을 보면, 요압이 칼을 들어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였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반란군의 패배로, 다윗의 승리로 끝이나게 됩니다. 그러나 33절을 보면, 다윗은 죽은 아들로 인해서 큰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다윗의 승리의 원인이 무엇이며, 압살롬의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압살롬의 패배”에 대해서입니다. 누구도 예상할수 없었던 의외의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압살롬에게는 다윗보다 20배 이상 많은 군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냐면, 7절을 보면 전쟁중 압살롬의 전사자가 약 2만명 가량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압살롬의 군사가 적어도 2만명 이상이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다윗은 고작 1000명 정도의 군사만 가지고 있었습니다.(1절 천부장이 단수로됨) 그러기 20배 이상의 군사를 가진 것을 알수 있습니다. 더욱이 다윗은 도피생활로 인해 피곤과 긴장감으로 지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잘 먹고, 쉬고, 준비된 상태에서 다윗의 군대와 전투를 한 것입니다. 누가 봐도 압살롬이 쉽게 이길수 있는 전투였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압살롬의 군대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패배했고, 죽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과연! 무엇을 보아도 유리했던 압살롬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일까? 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압살롬을 지게 하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다윗은 이기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압살롬을 왜 지게 하셨습니까? 그는 이미 복수심에 차있었던 패배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압살롬의 복수의 사람이었고 응징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어떻게 하든 자신이 당한 억울함과 아픔을 복수하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여동생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을 당한 이후 2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끝내 동생의 복수를 위해 암논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그술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압의 도움을 예루살렘에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이 자신을 2년동안이나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압살롬의 마음에는 자신의 동생을 욕보인 암논에게 아무런 벌을 주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5년동안이나 찾지도 만나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자 복수의 칼을 갈고, 결국은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복수의 반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압살롬의 복수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여러분은 다윗의 모략가였다가 다윗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모략가 된 ‘아히도벨’을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압살롬과 함께 다윗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 역시 복수심때문입니다. 여러분 아히도벨이 누구입니까? 다윗이 범한 밧세바의 할아버지입니다. 아히도벨에게 밧세바 사건, 그리고 손주사위인 우리야의 죽음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만들었을 것이고, 복수를 마음 먹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반역을 꾀할 때 그와 함께 다윗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살로 비참한 인생을 마친 완전한 패배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꼐서 압살롬과 아히도벨을 패배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복수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수의 사람, 응징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에게 억울함과 아픔,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처분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방법으로 복수와 응징을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도 복수와 응징의 사람은 아닙니까? 누군가를 향해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물론, ‘죽여 버리겠다. 부셔버리겠다. 가만두나 보자’ 라는 식의 무시 무시한 복수심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복수를 합니다. 예를들면, 누군가에게 가시도친 말을 하는 것, 째려 보는 것, 짜증부리는 것, 괴롭히는 것, 험담하는 것, 무시하는 것, 외면하는 것, 다가가지 않는 것, 미워하는 것, 잘해주지 않는 것, 안도와주는 것, 밥 안해주는 것..., 등 역시 복수이며 응징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들은 너무나 자주합니다. 어쩌면 지금도 여러분은 이런 복수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복수와 응징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패배자가 되게 하십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수와 응징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신앙의 패배자인 것입니다.
2.승리자 다윗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번째 생각할 것은, 다윗의 승리에 대해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합니다. 그리고 망명 곧 피난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승을 거듭니다. 이미 살펴본대로 모든 면에서 의외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승리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선 분명한 것은, 가지고 있는 힘과 군사력으로 인함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승리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다윗을 이기게 했습니까? 그의 신앙의 자세때문입니다. 먼저 5절을 보면, 다윗이 부하들에게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다윗은 비록 자신에게 반역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불효자인 아들이지만 용서의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원수와 같은 압살롬에 대한 복수나, 처벌이나 응징을 원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신앙은 오래전 사울과의 관계속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울왕을 골리앗을 이기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번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인생 말년에는 나라의 일을 다 포기하고 다윗을 죽이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윗이 숨어 있는 동굴에 사울왕이 들어왔습니다. 부하들이 사울을 죽일 기회를 하나님이 주셨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한 말이 뭡니까?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을 죽일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분하실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 다윗이 사울왕이 잠들어 있는 진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잠들어 있는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같은 마음으로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얼마전에 묵상한 시므이가 저주 할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므이는 피난 가는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부하들이 당장가서 죽이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때 다윗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복수하고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벌과 응징에 맡긴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다윗, 진정한 승리자의 자격을 갖춘 다윗을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또, 33절을 보면, 다윗은 죽은 압살롬으로 인해서 심히 슬퍼했습니다. 여기서 또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승리, 이기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은 극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그리고 다윗의 군대들은 매우 기뻐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다윗 만큼은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슬퍼합니다. 물론, 자신의 아들이 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하나의 교훈을 얻을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다 좋고,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져주는 것이 더 기쁘고 행복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의 가정에서 배우자에게 이기면 좋습니까? 아닙니다. 져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양보할 때가 더 좋습니다. 어디서든 마찬가지입니다. 꼭 이기는 것만이 기쁨이 되지 않음을 잊으면 안됩니다. 예를들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이겼습니다. 죽였으니까! 그래서 행복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속에 더 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윗은 복수하지 않는 사람이고, 원수에 대해 응징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져줄 줄 알고 양보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복수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에 대한 응징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진정한 승리와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3.복수는 안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복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철저하고 단호하게 복수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복수하고 응징하려는 태도를 교만이라고 말하고 있입니다. 왜냐하면, 복수, 응징, 벌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실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벌을 줄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벌을 주는 일을 몇 몇 사람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예를들면, 나라의 지도자이며, 교회의 지도자에게 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혼내겠다. 내가 벌을 주겠다. 내가 복수하겠다...,등의 이런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 크게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인 것입니다. 특별히 복수는 여러분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의 인생과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한홍목사님의 ‘거인들의 발자국’ 이라는 책을 보면, 나치시절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서에서 구사일생한 한 유대인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유대인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복수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 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복수에 대한 감정으로 내 인생을 파괴시키고 싶진 않습니다’ 이처럼 복수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도리어 큰 해가 되는 것입니다. 복수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선하고 복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수를 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마 주님은 우리들이 그 누군가에게 벌을 주고, 제지하고, 응징하는 복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말씀하셨고,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른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라고 말씀합니다. 또,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며’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거의 매일같이 고백하는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라는 용서를 위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밖은 사람들을 위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 집사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만달란트 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비유가 우리가 말하는 강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좀 다르게 말을 하면, 우리가 가운데 누군가에게 복수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 모두가 받은 위대한 특권은 용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원수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들에게 대한 처분을 하나님께 맡기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때 기쁨과 평안이 임하는 것이고,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오늘 본문은 다윗은 승리의 사람이었고, 압살롬은 패배의 사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본문과 삶
1)다윗은 복수와 응징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2)그러나 압살롬은 스스로 복수와 응징을 하려함으로 완전한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3)하나님은 우리들이 복수와 응징의 사람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의 사람, 겸손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향나무가 되기를 바랍니다. 즉,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인 것입니다. 복수 없는 복된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