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TV > 설교말씀 >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호세아서강해24)
HOME 로그인회원가입
교회안내 설교말씀 목장 및 양육 선교사역 부서소개 사랑방

  사랑 i TV  
     설교말씀 
     찬양영상 
     행사영상 
     성가대찬양 
     찬양소개 
     QT영상 





설교말씀
    > 설교말씀 >>  수요설교
 
[수요설교]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호세아서강해24)
 본문말씀 : 호9:1-9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0.24
조회 : 8,739   추천 : 0  
본문 : 호9:1-9절   호세아서강해24
제목 : 무엇을 기뻐할 것인가?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은 갈수록 삶이 편리해 지는 최첨단 현대화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대화가 될수록 많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 병원과 약국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 말은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갈수록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데 왜 환자들이 많아질까요? 공해, 과로, 식습관의 변화..., 등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웃음치료의 선구자인 김형준 원장은 그 이유를 ‘웃음과 기쁨을 잃고 스트레스가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참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기쁨을 잃으면 몸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을 잃을때, 우리의 몸에만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기쁨을 잃으면 우리의 삶 전체가 무기력해 집니다. 또한 기쁨을 잃으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듯 기쁨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쁨을 언급합니다. 물론, 그들이 가진 기쁨은 잘못된 기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쁨의 중요성과 기쁨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기쁨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중요한 것입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에게 기쁨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에게 기쁨은 신앙의 능력의 원천이며, 신앙의 수준을 결정짓는 너무나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확인해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바울은 대단히 위대한 사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울은 기독교 역사속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이며, 그리스도인이며, 선교사라고 말해도 지난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먼저, 바울은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신약27권 중 13-14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가장 명확하게 정립한 사람이며, 더나가서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죄는 무엇이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성령이 어떤 분이며, 율법의 역할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종말이 무엇이며, 부활이 무엇이며, 은사가 무엇이며, 그 밖에도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너무나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또한, 바울은 위대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신학적인 면에서만 위대하시지 않습니다. 바울은 철저히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썼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날마다 달음질 했습니다. 그리고 한결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고, 많은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를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까지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본다면, 이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을 만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맞습니다.  또,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바울은 어디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2,3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안디옥, 버가, 구브로, 이고니온, 갈라디아, 루스드라, 에베소)과 유럽지역(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레아, 아덴, 그리고 고린도)에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물론, 바울이 전도하는 일, 특별히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적극적인 방해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로마로 인한 박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곳에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고후11:23-27절을 보면,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고통스러움을 상상이나 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단 한번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더욱이 주님을 위해서 변함없는 마음, 변함없는 열심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전승에 의하면 결국, AD67년 참수형을 당하는 순교로 인생을 마쳤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바울이 신학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교사로서 위대한 사람이 될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에게 날마다 샘솟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기쁨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점은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고후6:10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빌4:10절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골1: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빌2:18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빌4: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함은 그에게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도바울의 위대함과 그가 기쁨의 사람이었다는 점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기쁨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바울에게 기쁨이 없었다면, 우리 아는 바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점은 초대교회 곧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만 있던 그들이 길거리로 뛰쳐나가 복음을 전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눌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박해와 환란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킬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큰 기쁨(행8:8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게 죽음까지 당하셨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셨을까요? 히12: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라고 말을 합니다. 즉,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영국의 신학자이며 목회자, 그리고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평생 동안 한결 같은 모습으로 영국의 경건주의 운동과 전도 운동에 힘쓰신 분입니다. 그가 72번째 생일날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고 합니다. “내가 목회를 시작한지 30년 동안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힘과 열정으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며, 둘째는, 내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나는 기쁨 때문이다.” 이 분의 말을 통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마음의 기쁨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기쁨은 그리스도인 다움과 신앙의 수준을 결정짓는, 그리고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는 너무나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은 나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또, 기쁨은 신자다움과 신앙의 수준을 결정짓는 근거가 됩니다. 따라서 기쁨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잘할 수 없습니다. 예를들면, 직장생활도 사업도 잘 할수 없고, 가정을 잘 꾸려갈 수 없고, 좋은 부모가 될 수도 없고, 대인관계도 잘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쁨이 없으면 신앙생활도 잘 할수 없게 됩니다. 예를들면, 기쁨이 없으면 교회 나오는 일에 갈등하게 되고, 설교가 지루한 잔소리처럼 들리고, 봉사의 일이 고역이 되고...., 등이 되고 맙니다. 더 무서운 것은, 기쁨이 없는 우리를 보면서, 누구도 예수를 믿어보거나, 교회에 나와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신론 철학자 니체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속에서 도무지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이 없다는 말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명력이 바닥난 상태이며, 그래서 결국,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바울이 가졌던 기쁨,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기쁨, 예수님이 가졌던 기쁨, 웨슬 리가 가졌던 기쁨을 소유하기를, 그래서 그리스도인 답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2.무엇으로 인한 기쁨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기쁨의 중요성 또는 필요성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여기서 기뻐 뛰놀다는 말은 기쁨이 넘치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분명히 큰 기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2-3절을 보면,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뻐하는 기쁨을 빼앗아 버리시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사람들은 무엇으로 인해, 언제 기뻐하는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으로 인해 기뻐할까요? 사람들은 언제 기뻐할까요? 바로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입니다. 예를들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소원했는데 이루어졌을 때, 취업을 소원했는데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고, 아이를 바라는데 아이가 생겼고, 건강을 소원했는데 건강해졌고,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하게 되고..., 등 자신이 바라고 소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소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하면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성공을 소원했는데 실패를 격고, 형통을 소원했는데 난관을 만나면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국, 기쁨이란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결과물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어떤 사람이 무엇을 기뻐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지금 그들이 기뻐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면, 그들은 지금 타작마당과 술틀로 인해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풍성히 거두어 들인 곡식과 술틀이 가득찬 포도로 인해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이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지금 물질적인 번영을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하나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소원하거나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번영만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마치 우상종교를 가진 이방인과 다를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이방인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고 말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소원하고 추구하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호세아시대의 이스라엘만 하나님이 아닌 물질과 번영을 추구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거의 대부분의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과 번영을 추구해왔습니다. 광야에서는 먹을것과 마실 것을 추구했고, 가나안 땅에서는 이방인들과 같은 번영을 추구했고, 그 밖에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물질적인 것, 번영들을 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떨까요? 혹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과 같은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몇일전 신문에 ‘미국교회는 기업이 되었고, 한국교회는 대기업이 되었다.’ 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아마 이 글이 오늘 우리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소원하고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소원하고 추구하여 얻는 기쁨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한 기쁨(물질, 권력, 명예, 인기, 건강...,등)은 우리를 신자답게 만들 수 없고, 수준높은 신자가 되게 할 수 없고, 능력있는 신자가 되게 할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쁨이 우리는 능력이 있는 신자, 수준 높은 신자, 신자다운 신자로 만들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소원하고 하나님을 추구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추구함으로 얻어지는 기쁨만이 우리를 신자답게 만드는 기쁨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이러한 기쁨이 없었기에 하나님 백성 다울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소원하고 추구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소원하고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을 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말하고, 더 정확히 말을 하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감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기쁨이 우리를 능력있게 하고, 신자답게 하고,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기쁨을 보십시오! 그의 기쁨은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얻어지는 기쁨이었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감으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기쁨만이 우리를 능력있게 하고, 신자답게 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라
 그러므로 신앙의 목표를 분명히 하십시오!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십시오! 그렇다면, 올바른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소원하고 추구하고 가지고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신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러면 참답고 올바른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더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이고, 신앙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많이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어떤 책입니까? 예수님의 모습 곧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떤 분이셨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어떤 책일까요?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닮아내는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기도하는 예수님을 닮아내고, 병든자를 고치는 예수님을 닮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을 닮아내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걸어가신 예수님을 닮아내고, 법정에서도 당당하신 예수님을 닮아내고, 죽으신 예수님까지 닮아내고..., 이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기쁨은 우리를 능력있게 신자답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기쁨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그러나 모든 기쁨이 우리를 능력있고, 신자답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3)오직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가게 됨으로 얻어지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감이 가장 큰 축복임을 알고, 그것을 신앙의 목표로 가지고, 힘쓰게 됨으로,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고, 능력있고 신자답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Share

 
 

번호 말씀제목 보기 본문말씀 설교자 설교일자 조회 추천
2533 [주일설교] 다시 걷기-변화된 삶으로!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104 0
2532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롬12:1-2절 최용민목사 2026.4.5 14 0
2531 [특별새벽기도] 소망하기!(고난주간5) 롬8:18-25절 최용민목사 2026.4.3 46 0
2530 [특별새벽기도] 사랑하기!(고난주간4) 롬5:6-11절 최용민목사 2026.4.2 610 0
2529 [특별새벽기도] 한 걸음 내 딛기!(고난주간3) 잠16:1-9절 최용민목사 2026.4.1 496 0
2528 [특별새벽기도] 방향 묻기!(고난주간2) 시119:57-64절) 최용민목사 2026.3.31 660 0
2527 [특별새벽기도] 기억하라!(고난주간1) 시77:1-12절 최용민목사 2026.3.30 352 0
2526 [주일설교] 거룩한 멈춤! 집중!(고난주간)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3580 0
2525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시46:1-11절 최용민목사 2026.3.29 119 0
2524 [수요설교] 다시 세워진 신앙!(사사기강해15)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6 2144 0
2523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삿6:25-32절 임승철목사 2026.3.25 108 0
2522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습관(習慣)!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2308 0
2521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24 0
2520 [주일설교] 주일2부실시간예배 엡4:17-24절 최용민목사 2026.3.22 162 0
2519 [수요설교] 원칙(原則)이 있는 신앙!(사도행전강해96)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186 0
2518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7:1-9절 최용민목사 2026.3.18 228 0
2517 [주일설교] 신앙 성장과 결단!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370 0
2516 [주일설교] 주일1부실시간예배 왕하5:15-19절 최용민목사 2026.3.15 179 0
2515 [수요설교] 위로받고 위로하고!(사도행전강해96)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155 0
2514 [수요설교] 수요예배실시간 행16:35-40절 최용민목사 2026.3.11 257 0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