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9:1-9절 호세아서강해23
제목 :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
성도들의 삶속으로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식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예를들면, 예식장을 준비해야 하고, 청첩장을 준비하고, 예물을 준비하고, 양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결혼 후 살아가기 위한 집과 물품들도 준비해야 합니다. 또, 사진촬영도 준비하고, 의상과 헤어와 메이크업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을 위해서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혼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 후의 삶입니다. 다시말해, 결혼식을 얼마나 잘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결혼식후 결혼한 부부로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다양한 의식을 잘 준비하고, 참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삶을 원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삶있는 신앙, 삶을 드리는 신자의 삶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삶을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지난 시간 이스라엘의 착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착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들이 하나님 백성답다는 착각이었습니다. 우리식대로 말을 하면, 자신들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착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을 점검하는 ‘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생각하던 신앙의 점검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신앙의 행위가 얼마나 많은지? 라는 기준이었고, 둘째는, 번영과 잘됨이 기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하나님 백성답지 못했고, 더욱이 신앙생활도 잘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도 이스라엘의 음행을 지적하고, 9절에서는 부패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순종’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잘 순종하고 있는지? 내가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 내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는지? 가 결국, 나의 신앙과 신앙의 수준을 점검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매일 순종이라는 기준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며 바르게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순종이 신앙 점검의 기준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순종을 원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삶을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원하십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아마도 창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일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라면서, 가인은 농사하는 자, 아벨은 양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가인은 땅의 소산을 제물로한 제사 드리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제물로 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드린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이 드린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어떤 사람은 정성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아벨은 정성껏 드렸기 때문에 받으신 것이고, 가인은 건성으로 드렸기 때문에 안받으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건 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의 추측이고 상상일 뿐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가인이 하나님께 억울해 했겠습니까? 분명히 둘다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제물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아벨은 피의 제사를 드렸지만, 가인은 피없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5가지 제사를 요구하십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입니다. 그런데 이 5가지 제사가 모두 피의 제사는 아닙니다. 5가지중 하나는 피없는 제사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소제입니다. 그러므로 피없는 제사이기에 받지 않으셨다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피에 굶주린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기에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피가 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거절하셨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성의 문제도 아니고, 제물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삶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절 당한 가인이 화를 내자 하나님이 하신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그렇습니다. 가인의 삶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즉, 가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들통 나자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삶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히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의로운 삶이 그의 제사를 더 나은 제사로 드리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제사 또는 어떤 제물보다도 삶의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미가선지자는 미6:8절에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은 신약성경에서 더욱 분명히 들어납니다. 먼저, 마5:23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보다 화목한 삶을 더욱 요구하시고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또,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자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나 진심이 아닌 삶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롬12:1절에서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 말합니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중요하게 여기십니까? 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십니까? 혹시, 삷보다는 말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삶보다는 의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삶보다 종교적인 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참된 신앙생활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참된 신앙생활이란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다양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는 삶에는 무관심한채, 여러분이 하나님께 요구할 것에만 마음을 빼앗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임을 인정한다면, 여러분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을 확신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아가는 다양한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외면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보다 삶을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만들어 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열매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삶을 요구하시는 이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삶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에게 삶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삶이야 말로 모든 신앙의 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현관문에 붙은 교패, 또는 집사 권사 임직식에서 받은 임직패, 아니면 세례증서, 아니면, 교회안에서 여러분이 취득한 다양한 수료증, 또는 어떤 봉사의 경력...., 과연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요즘 신천지 이단들은 기존교회에 침투해서 짧게는 3년에서 길게 10년간 교육도 받고, 임직도 얻고, 봉사의 일도 하고..., 그 후에 신천지의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삶으로만 참된 증명이 될수 있습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성경지식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신학교 교수 노릇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사랑한다는 입술의 고백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이단들도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은혜와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통장잔고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럴수 없습니다. 악한 부자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가서 인증샷이라고 찍어 오시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성경이 진리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현명한 대답은 무엇입니까? 무조건 믿는거지 무슨 증명이 필요하냐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들이 가진 신앙의 내용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그의 믿음과 신앙에 대한 증명의 요구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또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지켜야 할 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백성됨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들을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 백성됨의 증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의 내용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말로는 결코 증명할수 없고, 오직 ‘우리의 삶’ 밖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들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죄와 싸우는 삶으로 증명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증명되고, 우리들이 천국을 믿는다는 것은 오늘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으로 증명되고, 여러분이 믿음을 갖었다는 것은 그 믿음에 걸맞는 삶으로만 증명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삶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또, 약2:18절을 보면,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고 말하는 것이고, 히11장에 나오는 수없이 많은 믿음의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믿는 믿음의 내용을 삶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예를들면, 홍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은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릴 것을 믿은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상주심을 믿은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믿음을 삶으로 증명해낸 것입니다. 이렇듯 말이나 진심이 아닌, 오직 삶으로만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 사람들은 기독교를 싫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가진 교리나 주장 때문일까요?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교리나 주장은 예나 오늘이나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오늘날 같은 미움이나 비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없는 부모도 아이가 교회간다고 하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는 사람들이 늘 말뿐인 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들이 물에 빠지면 입만 들꺼라고 말하겠습니다. 말뿐인 모습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말에 대한 증명이 될만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오직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고 바른 말은 하지만, 그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라고 눈웃음 치며 말하지만 사랑을 나타내는 삶은 살지 못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무섭게 외쳐대지만 심판을 두려워 하는 자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이유는 믿음과 신앙을 증명할 만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말과 진심, 교회안에서의 열심으로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을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직 신앙과 믿음에 걸맞는 삶으로 증명해 낼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만들어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렇다면, 어떻게 삶을 만들어야 할까요? 2가지로 간단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삶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처럼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을 중요하게 여기고 삶을 만들어가겠다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붙드는 여러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삶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 이유는 말과 진심도 중요하지만, 삶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뿐만 아니라, 삶으로만 우리의 그리스도인됨과 신앙과 믿음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3)그러므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 주일 예배마다 헌금봉투만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삶을 드리는 이 시대의 아벨이 되시고, 그리스도인 다운 삶이 더 풍성해지기를 힘쓰는 복된 성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