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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형식주의 신앙! (호세아서강해21)
 본문말씀 : 호8:11-1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10.3
조회 : 9,431   추천 : 0  
본문 : 호8:11-14절   호세아서강해21
제목 : 형식주의 신앙!   

  성도들의 삶속으로   
 형식은 필요할까요? 불필요할까요? 우리는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배 ‘형식’이라는 것을 가집니다. 예를들면, 우리 교회는 묵상기도 및 기원, 신앙고백, 찬양, 대표기도, 성경봉독, 설교, 봉헌, 축도.., 등의 형식을 가집니다. 그러나 종 종 오순절 계열의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 형식은 필요없고, 그때 그때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말이 다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제사장을 세울 때, 제사를 드릴 때, 어떤 순서대로 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형식을 무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시고,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의 형식을 따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식은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있어야 내용을 담을수 있게 됩니다. 이렇듯 형식은 무시되거나 버려져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형식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가장 올바른 자세힙니다. 이렇듯 형식은 필요한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식주의는 내용이 없는 그릇에 불구하기 때문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이스라엘의 형식주의를 꾸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이스라엘의 죄악 - 형식주의 신앙!  
 오늘 본문 13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고 선언하십니다.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은 옛날에 애굽에서 종되었던 그 때와 같이 다시 이방 사람들의 종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하게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1-14절까지를 보면, 이스라엘의 죄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11절을 보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범죄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라고 지적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해 많은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많은 제단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범죄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신12:5-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결국, 예루살렘)을 찾아가서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이후 나라가 분열될 때,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1세 왕은 북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 백성들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고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했습니다. 그후로 이스라엘 땅에 많은 제단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제단을 많이 만든 것 그 자체가 범죄입니다. 더욱이 좋은 명분을 가지고 제단을 만들었다면, 그에 걸맞는 행위와 삶이 있어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자신을 점검해서 회개해야 할 것은 없는지, 그리고 죄와의 싸움을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속제제단을 만든 명분을 무색하게 할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이며, 이방나라를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연관해서 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화목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드린 화목제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목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도리어 9절을 보면, 앗수르와의 화목을 더 간절히 바랬습니다.  계속해서 12절을 보면,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이 만들지 말아야 할 제단을 만든 이유가 그것을 만들면 안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이방인의 손을 잡고 그들을 의지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단을 만들고 이방인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애굽나라의 종되었던 것 같이 다시 이방인의 종이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일까요? 만들지 말아야 할 제단을 만든 것? 우상숭배? 하나님이 아닌 이방나라를 의지한 것? 물론, 이것들도 이스라엘의 죄악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본질적인 꾸중의 이유는 ‘형식주의 신앙, 형식적인 신앙’입니다. 다시말해, 제단도 만들고, 제사도 드리지만 그 모든 일들이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 점을 이사야 선지자는 사1:11-17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또, 사29:13절에서‘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고 말했습니다. 역시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또, 막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곧 말라 죽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무화과의 열매가 맺을 시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런 일을 하셨을까요? 성격이 이상한가요? 무슨 히스테리를 부리신건가요? 그것은 성전을 비유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안에는 풍성한 제사의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모든 제사의식, 성전의식들이 형식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꾸중하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속담대로 말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지만 맛은 없는 개살구라는 뜻으로,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음을 말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더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형식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을 선지자들을 통해서 꾸중하시고, 심판을 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대선지서, 소선지서는 대부부이 이스라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꾸중하고 심판으로 경고했을 때,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도리어 참선지자들을 거짓선지자 취급을 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이 대단히 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런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들은 선지자의 경고가 이해가 되지 않고, 황당한 이야기로 밖에 들려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잘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자신들은 하나님 백성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바로 종교적인 형식들 때문입니다. 여기 저기 만들어지는 제단, 끊임없이 드리는 속죄제와 화목제,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제물이라는 형식을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형식의 수준을 신앙의 수준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형식에 목숨을 걸었고, 많은 선지자들의 경고와 꾸중이 이해되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로 밖에는 들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혹시 빛 좋은 개살구 신앙은 아닐까요?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성경을 배우고 알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등..., 그런데 혹시, 형식적인 신앙은 아닙니까? 더나가서, 무성한 형식들로 인해서 여러분이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꼭 기억하십시오! 형식이 참 신앙을 대신할 수 없고, 형식의 수준이 참 신앙의 수준이 될 수 없습니다.

  2.무엇이 형식주의 신앙인가?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신앙을 형식(적)주의 신앙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형식주의적 신앙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3가지로 그 기준을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는, 순종이 배제된 모든 신앙의 행위는 형식주의 신앙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속죄제사와 화목제사라는 신앙의 행위, 그리고 많은 제물을 드리는 신앙의 행위를 풍성히 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의 행위를 형식주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순종이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속죄제사를 드리면서 더 많은 죄를 짓고, 화목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순종이 배제된 모든 신앙의 행위는 형식주의 일뿐인 것입니다. 또, 가인의 제사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셨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물에 문제가 있었나요? 아니면 정성에 문제가 있었나요? 과연 무엇이 문제였기에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셨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가인은 분명히 아벨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는 신앙의 행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벨과 다르게 순종이 배제된 신앙의 행위를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신 이유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창4: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을 꾸중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순종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또, 사울왕을 생각해 보십시오! 삼상15장을 보면,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전쟁후 전리품으로 살찐 짐승들을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그런 사울왕을 버리시겠다고 말을 합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생각을 하고, 제물을 준비하는 신앙의 행위는 있지만, 순종이 없었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했지만 사울왕은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꾸중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이 배제된 신앙의 모든 행위는 형식주의 일뿐입니다.  이렇듯 순종이 배제된 신앙의 행위는 형식주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분명히 여러분도 누구 못지 않게 많은 신앙의 행위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잘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더 풍성한 신앙의 행위를 갖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앙의 행위라는 많은 잎사귀를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이라는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둘째는, 탐욕이 목적인 신앙의 행위는 형식주의 신앙입니다. 13절을 보면,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지라도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화목제를 기뻐하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교제, 화목의 수단이 아닌, 고기를 먹기 위한 탐욕의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요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큰 무리가 바다 건너편으로 예수님 찾아나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결국 이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였습니다. 또, 막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과연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전과 제물과 제사의식이 그들을 위한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탐욕이 이유가 되는 신앙은 모두 형식주의 신앙인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신앙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감사와 보답이 신앙의 이유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감사와 보답 말고 다른 신앙의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단코 없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제사와 율법을 주신 목적을 놓친 모든 신앙의 행위는 형식주의 신앙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왜 제사제도를 주셨을까요? 더나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물을 요구하시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굴복을 요구하시기 위함일까요? 하나님은 식탐이 있는 분도, 우리에게 무조건 굴복시키는 독재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사제도와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의 본질인 나를 점검하고, 회개하고, 고치고, 변화시키고, 만들어가고, 완성시키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제사와 율법을 주신 이유이며,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유를 놓친다면 그 어떤 신앙의 행위도 형식주의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와 율법은 단순히 규범과 규칙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12절 ‘율법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라고 꾸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의 행위는 형식주의 신앙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이유와 목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신앙행위를 많이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시, 이스라엘처럼 단순히 규범과 규칙을 지키기 위함은 아닙니까? 적어도 신앙생활을 하면, 나를 점검하고 고치고 만들어가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지금 형식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형식주의 신앙을 구분하는 3가지 기준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입니까? 신앙행위 가운데 순종은 있는지, 신앙의 행위를 탐욕의 수단으로 삼지는 않은지(감사와 보답인지),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끊임없이 나를 고치고 변화시고 만들어가는 일들을 하고 있는지였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점검해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간 형식주의 신앙의 길을 따라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3.형식주의에 빠지게 된 이유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주의 신앙에 빠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주의 신앙에 빠지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그 이유의 단서를 찾을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라고 말을 합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죄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화목제의 고기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었다고 말을 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을 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제사의식을 사랑한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규범과 규칙들을 사랑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닌 신앙의 형식들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형식주의 신앙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안그럴까요? 그럴리가요! 우리들도 종 종 나도 모르게 하나님 보다 형식을 더 사랑할 때가 많습니다. 좀 말 장난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아닌 예배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기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찬양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봉사의 일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헌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성도의 교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닌 신앙의 규칙과 규범을 사랑하고..., 등 이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착각하고,  너무 쉽게 속을 때가 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형식주의 신앙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형식은 나쁜것도 불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형식주의 신앙은 나쁜 것입니다. 
  2)무엇이 기준입니까? 순종의 유무, 탐욕의 유무, 나를 고쳐감의 유무가 기준입니다. 
  3)그러면 왜 형식주의 신앙이 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참다운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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