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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신앙이란 감당하는 것!
 본문말씀 : 고후5:1-4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9.5
조회 : 9,263   추천 : 0  
본문 : 고후5:1-4절 
제목 : 신앙이란 감당하는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지난 3일간의 사건과 삶)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궁금한게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사탄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하나님은 천국과 지옥을 언제 만드셨는지? 또, 천국과 지옥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들이 천국에서 어떻게 살는지? 주님은 언제 재림하실는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정말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일명 ‘휴거’는 일어날 것인지? ..., 등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성경이 자세히 언급하지 않은 일에 대해 지나치게 궁금증을 갖거나, 나름대로 답을 만드는 것은 유익한 일은 아닙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인 ‘종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변화될 몸과 휴거와 관련된 성경적인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확인함으로 신앙의 유익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죽은자와 산자의 새 몸에 대해서
 먼저, 오늘 본문을 1절을 보십시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죽음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영원하고 거룩하고 신령한 몸으로 덧입게 됩니다. 그런데 1절 첫 단어가 ‘만일’입니다. 만일 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은 적은 경우’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반대로 죽은 자들도 있을 것을 염두하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러나 바울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은 반대입니다. 즉,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믿고 죽은 자들보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 있는자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신자들은 주님이 하신 말씀들 곧 막1:15절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또, 눅9:27절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 등과 같은 말씀을 근거로 ‘임박한 종말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한 세대(30년)가 가기전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죽지 않고 재림을 맞을 자들과 죽음 이후 재림을 맞을 자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죽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자들과 죽음 이후 주님의 재림을 맞이 할 자들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시 신자들이 죽지 않고 변화된 몸과 죽은 이후에 변화된 몸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죽지 않고 변화된 몸이 죽은 후에 변화된 몸보다 더 낫다고 여긴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 생각에는 썩은 몸에서 변화되는 것보다 썩지 않은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 낫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죽지 않고 썩지 않은체 변화되는 몸이, 죽고 썩은 몸에서 변화된 몸보다 더 낫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바울의 대답은 죽었던 죽지 않았던 변화된 몸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죽지 않은 몸이 나음도 없고, 죽은 몸이 손해나 불이익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던, 죽지 않은 자던 영원하고 거룩하고 신령한 동일한 몸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자들이 죽은 자로 변화된 몸보다, 산자로서 변화된 몸이 낫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신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신령한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관,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신앙과 믿음이 조건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조건이나 환경이 좋아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고, 조건이나 환경이 나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고 썩은 몸보다 조건이 좋은 산자의 몸이 더 나은 몸이 될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서 설교 잘하는 목회자를 소원했고(과연 설교를 잘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편을 잘 드는 것), 그들 기준에서 외모나 자격, 실력이 탁월한 사도를 원한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기준이 되는 생각 때문에 바울의 사도성이 공격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정말 신앙과 믿음이 조건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좋은 조건 좋은 환경이 신앙생활에 유익을 주고, 반대로, 좋지 못한 조건이나 환경이 신앙생활을 손해나게 한다고 여기십니까? 물론, 잠시는 그렇게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조건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을 보십시오! 그는 대단히 큰 부자였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도 좋은 조건 좋은 환경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조건과 환경이 그 부자청년의 신앙과 믿음에 유익을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걸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다. 사르밧과부를 아시지요?(왕상17장) 이 과부에게는 어린 아들 하나만 있었습니다. 의지할 것이 없는 여인입니다. 설상 가상 너무나 가난해서 한끼 먹을 양식 말고는 먹을게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나쁜 조건과 환경입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그 남은 양식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르밧과부는 그 남은 한씩 식사를 엘리야선지자에게 줍니다. 여러분! 과부, 가난이라는 나쁜 조건과 환경이 사르밧과부의 신앙과 믿음을 방해했습니까? 아닙니다. 또, 여러분은 부자와 거지나사로의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눅16장). 말 그대로, 최상의 조건과 환경의 부자(자색옷, 고운 베옷, 호화호식)와 최악의 조건과 환경의 거지(헌데투성이, 대문앞에 버려짐, 음식을 주워먹음)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무얼 말하려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들이 살면서 만나는 조건이나 환경은 결코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이 땅에서의 조건과 환경보다 더 차원(수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의 수준이 하나님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때로는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스스로가 신앙의 올바르지 못함을 조건이나 환경으로 핑계와 구실을 삼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은 달란트비유를 잘 아실 것입니다. 주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3명의 종에게 각 각 5,2,1달란트를 맡깁니다. 그리고 5,2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일해서 5,2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달란트만을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충성되지 못함을 감추기 위해 주인이라는 조건과 환경을 핑계와 구실로 삼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주인은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고 핑계과 구실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어떤 조건이나 환경이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빌4:11-13절을 보면, ‘내가 어떤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어떤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신자로서의 충성됨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휴거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죽은 자의 변화된 몸이나 산자의 변화된 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이 변화되는 날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전4:13-1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4절을 보면, ‘이와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고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죽은 자들이 먼저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는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16절에서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들이 먼저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산자들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휴거’ 가 등장하게 됩니다. 17절을 보면,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묻습니다. 여러분은 휴거에 대해서 어떻게 듣고 알고 계십니까? 보통 성도들이 아는 휴거의 내용은 이런 것들입니다. 먼저, 주님이 공중재림하시는 날 믿음이 좋은 신자는 휴거를 당하고, 믿음이 부족하거나 불신자들은 땅에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눅17:34-35절의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또, 휴거를 당한 사람은 7년간 주님과 함께 있고, 땅에 남겨진 사람들은 7년 대환난(성경에 없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년 대환란이 마친 후 모든 신자들이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1000년간 왕노릇을 하고 그 후에 최후의 심판이 있다고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주님은 2번 재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종말의 순서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초림으로 시작해서 주님의 재림까지의 전 기간이 천년왕국의 기간이며,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우선 오늘 우리 주목할 것은, 사람들이 왜 휴거에 목숨을 거느냐? 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에 없는 7년 대환난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정말 휴거(재림, 신령한 몸의 변화)의 목적이 환난을 면하기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휴거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우리를 완성의 자리로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구원의 완성, 우리의 몸의 완성의 자리로 부르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휴거는 환난을 피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 신자들이 환난을 피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롬5:3-4절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만일 환난을 피하는 것을 원하셨다면 이런 말씀을 주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한, 계7장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들의 상징인 140,000명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을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 라고 말합니다. 결국, 휴거(재림)의 목적은 환난을 피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환난을 이겨낸 자들의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을 가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혹시, 환난을 피하기 위한 목적은 아닙니까?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은 아닙니까? 불신자들보다 더 형통한 길을 가기 위함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신앙의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적어도 신앙의 목적은 환난을 피하고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감당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는 죽은자와 산자의 변화된 몸에는 차별이 없다는 점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조건과 환경이 우리의 신앙과 믿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조건과 환경으로 핑계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또, 우리는 휴거를 통해서 휴거의 목적이 환난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목적한다는 점, 그러므로 우리들은 환난을 피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말씀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어진 조건 현실과 상황에서 도망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조건,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 지금 나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답게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조건과 현실속에서도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리들이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훈련받는 장소이며,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절처럼, 우리의 인생에는 탄식이 끊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조건, 환경, 현실(가난, 질병, 외롬, 실패, 낙심, 절망, 시련..., 등)일지라도 감당하십시오! 견디십시오!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신령한 몸으로 덧입혀주시겠다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의 완성의 자리로 부르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본문과 삶
 1)그리고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2)우리의 구원의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3)그때까지는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의 삶의 조건, 환경, 현실이 어떠하든 주님의 복된 약속을 믿고, 도망가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매일 매일을 신자로서 감당하고, 순종함으로 주님을 기쁘게 만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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