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민14:26-35절
제목 : 말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속으로
두 아들과 함께 집에 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됐습니다. 큰 아들이 아버지를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여전히 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큰 아들은 응급조치를 하면서 동생에게 ‘빨리 가서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 동생이 황급히 의사 선생님을 모시러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동생이 오지 않았습니다. 초조해진 형은 아버지를 계속 흔들면서 ‘도대체 이 놈이 죽은 거야, 산 거야’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의식이 돌아온 아버지가 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아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누가 지어낸 농담이겠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말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속담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말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들의 공통점은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교훈하는 속담이라는 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의 중요성을 확인함으로, 더욱 복된 신자답게, 또한 수련회에 받은 은혜를 잃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말의 중요성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된 이스라엘 사람 모두를 광야에서 죽게 하시겠다고 심판을 선언하시는 내용입니다. 예를들면, 29절에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라고 말을 합니다. 또, 32절에서도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또, 33절 ‘너희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 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또, 34절 ‘내가 반드시 이 같이 행하리니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광야에서 죽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의 신앙 때문입니다. 그리거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그들의 신앙에서 나온 ‘그들이 한 말’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각 각 어떤 말을 했을까요? 먼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된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요? 2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12명이 가나안 땅을 40일간 정탐한 후 땅은 너무나 좋은 땅이지만,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강해서 그 땅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악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러분이 기억할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한대로 광야에서 죽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말을 했을까요? 6-8절을 보면,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즉,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불신앙을 가지고 가나안땅에 못 들어갈 것이고 차라리 광야에서 죽는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모두 죽었고, 신앙을 가지고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말한대로 된 것입니다. 제가 좀 억지스럽게 말하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28절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자신이 말대로 되어진 경우가 자주 소개됩니다. 예를들면, 야곱이 그렇습니다. 창31장을 보면, 야곱이 라반 삼촌의 집을 떠난 후 라반 삼촌이 뒤쫓아와 자신의 물건(드라빔)을 왜 훔쳐갔냐고 추궁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창31:32절에 ‘외삼촌의 신(드라빔)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물론, 야곱은 라반의 드라빔을 자신의 아내 라헬이 훔친 것을 알지 못하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후 라헬이 아이를(베냐민) 낳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과연 라헬의 죽음은 우연한 죽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야곱의 잘못된 말, 경솔한 말의 결과로 인한 죽임입니다. 정말 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또, 사사 입다가 그렇습니다. 삿11장을 보면, 사사 입다가 암몬족속들과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자신을 마중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게 되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딸이 첫 번째로 마중을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입다의 딸은 번제물로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광야의 사람들, 그리고 야곱,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들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과 말에는 대단한 위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여러 구절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잠13:2절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무슨 말입니까? 복은 결국 말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또, 잠18: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말을 합니다. 즉, 말 때문에 생사가 결정되고, 말로 삶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또, 약3:4절을 보면, 혀 곧 말을, ‘배의 키와 같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3:10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속에서도 ‘말의 위력’ ‘말의 중요성’ 을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람이 살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말 때문입니다. 사람이 싸우는 이유도 말 때문이고, 부부사이가 멀어지는 이유도 말 때문이고, 아이들이 삐뚤어지고 자신감이 없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 역시 부모의 말 때문이고, 교회가 분열하는 것도 말 때문이고, 또, 우리의 감정이 무너지고 이성이 통제력을 잃게 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들이 받은 은혜를 쏱아버리는 경우도 결국에는 말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 외에 우리의 삶에 모든 불행과 문제의 원인은 모두 우리가 한 말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우리의 말에 그런 위력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말하시면 결과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하심으로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의 형상 곧 닮게 창조된 우리이기 때문에 말에 능력과 위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작은 말 한마디라도 깊이 생각하고, 경솔하게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신앙의 수준을 결정하는 말
지금까지 우리들은 말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고,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이 우리의 삶과 미래만을 결정하는게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눅6:45절을 보면,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고,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고, 말은 그 사람의 신앙의 상태, 또는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사상가이며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이라는 사람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자신의 됨됨이 이상은 절대 말할 수 없다’ 고 말했습니다. 맞는 사람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신앙의 수준 이상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은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좀 억지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약3:2절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앙이 온전한 사람일수록 말에 실수가 없고, 말에 있어서 신중하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심도있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믿음으로 받으셨습니까? 정말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믿고 입으로 시인(말)했기 때문입니다. 즉,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믿음을 말로 고백할 때 하나님은 구원을 주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이 믿음의 출발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행2장을 보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다락방에 숨어서 기도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이라는 이유로 어떤 손해를 당하거나 어려움을 격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런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120명 모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들의 신앙이 조금 더 성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성숙한 그들에게 나타난 첫번째 변화는 무엇일까요? 바로 말의 변화입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방언의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120명 성도 모두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이들은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유대인들에게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게 됩니다. 그들의 신앙이 더욱더 견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이 더 견고해 질수록 말의 수준이 높아져간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출발도 말로 시작되고, 신앙의 성숙도 말의 변화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신앙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샘플은 바로 ‘말’인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은 여러분의 모습을 통해서 쉽게 확인 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러분이 은혜가 있을 때와 반대로 은혜가 없을 때에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말입니다. 은혜가 있을 때에는, 사랑스러운 말, 감사의 말,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여유있는 말, 온유한 말, 간증의 말..., 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을 때에는 말부터 바뀝니다. 즉, 원망과 불평의 말, 부정적인 말, 비난과 정죄의 말, 가시 돋친 말, 무시하는 말, 상처를 주는 말..., 등 하게 됩니다. 많이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십니까? 뭘 보면 알까요? 바로 여러분의 말입니다. 이것보다 정확한 근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여러분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늘 점검하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말이 어떤지 물어보십시오! 특별히 여러분의 신앙이 더 성숙하기를 원한다면, 무엇을 하면 될까요? 바로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은 말을 하도록 말을 고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이 바뀌게 되고, 여러분의 신앙도 성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말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것으로 여기고, 말을 다스리고, 신자다운 말을 하도록 말을 고쳐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3.신자답게 말합시다.
그렇다면, “신자다운 말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우리들에게 어떤 말을 하라고 말을 합니까?’ 엡4: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즉, 은혜로운 말을 하라고 말을 합니다.
첫째로, 여러분 스스로에게 은혜로운 말 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신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참 많습니다. 예를들면, 못살겠다, 난 안돼, 미치겠다, ~죽겠다..., 등 이것은 여러분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이 아닙니다. 신경과 의사들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의 뇌속에 있는 언어중추신경이 온몸의 신경과 세포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신의 말에 온 몸이 반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된 여러분에게 신자답지 못한 말들을 더 이상 입밖으로 안나오게 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은혜로운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 언어폭력이 가장 심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가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혹시, 언어폭력이 난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신자의 가정안에는 언어폭력, 말로 상처주고 받는 일이 있으면 안됩니다. 도리어 부부사이에 은혜로운 말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부부된 여러분은 매일 서로에게 은혜와 축복을 말을 해주고 계십니까? 아니면, 비난과 상처되는 말만 하십니까? 오늘부터 은혜로운 말, 축복의 말을 해보십시오! 또,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항상 은혜로운 말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는 자식에게 매일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의 사명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 부모된 여러분 중에서 자식의 머리에 속을 얹고, 매일 축복의 말을 해주시는 부모가 있으십니까? 혹시, 욕을 하고, 망말을 하고, 비난하는 말만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이제 앞으로 자녀에게 축복의 말을 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말의 위력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이웃에게 은혜로운 말을 하십시오! 그렇습니다. 교회안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이웃들에게 격려가 되고, 칭찬이 되고, 축복이 되는 말, 위로와 힘이 되는 말, 따듯한 말을 하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웃에게 가장 은혜로운 말은, ‘예수 믿으세요’‘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말을 놓고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많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인생, 미래를 결정하게 될 말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시141:3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고, 여러분의 말을 위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본문과 삶
1)왜냐하면, 말은 각 사람의 인격과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2)특별히 신자에게는 말이 신앙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3)그러므로 늘 자신의 말을 점검하고, 고치고, 기도해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제는 신자다운 말, 은혜로운 말을 함으로, 그 말대로 되어지는 축복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