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8:1-14절 호세아서강해18
제목 :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열심!
성도들의 삶속으로
두메산골에서 농사일만 하던 소녀가 서울 부자 집의 가정부로 가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첫날부터 마당에 가득한 풀을 보고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정부가 된지 3일 째 되던 날 주인이 외출하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녀는 마당에 가득한 풀을 뽑기로 작심을 했습니다. 질긴 풀을 뽑느라 온 몸이 땀에 젖었고, 손에는 물집이 생겨 아팠지만 멈추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일을 마쳤습니다. 내심 주인에게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주인은 깜짝 놀랐고, 그 소녀를 호되고 꾸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녀가 뽑은 풀은 그 주인이 정성들여 가꾼 잔디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잘못된 열심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과 잘못된 열심을 가진 사람은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했던 이스라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열심이 무엇에 근거한 열심이어야 하는가를 확인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열심이 있었던 이스라엘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1절을 보면,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나팔을 분다는 말의 의미는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자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버렸기 때문일까요? 또는 신앙의 행위가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또는, 신앙에 열심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이스라엘은 신앙의 열심이 있었습니다. 이 점을 간략히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11절을 보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속죄 제사를 위한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속죄 제사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범한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속죄 제사를 위한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13절을 보면, ‘그들이 내게 고기를 제물로 드리고 먹을 지라도’ 라고 말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화목제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속죄제이든 화목제이든 항상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또, 호2:11절을 보면,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희락, 절기, 월삭, 안식이, 명절이라는 종교적 신앙적 행위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 호6:6절을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고 말을 합니다. 즉, 이스라엘에게는 제사와 번제라는 신앙의 행위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 암5:21-24절‘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제사의식, 절기를 지키는 것만 아니라, 찬양하는 일에도 열심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이스라엘이 종교적, 신앙적 행위에 있어서 열심이 있었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징계를 당하게 되는 이유는 열심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신앙의 열심이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신앙의 열심을 가진 인물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 구약의 인물들을 대표할 만한 열심의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이방우상에 빠져있는 아합왕과 이세벨여왕 앞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이고, 뿐만아니라, 당시 아합왕과 이세벨여왕에게 특별대우를 받던 이방선지자들을 그들의 눈앞에서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또한, 온 나라가 이방선지자에 미혹되어, 하나님과 우상 앞에서 갈팡 지팡 머뭇거리는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백성들의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용감히 앞장선 사람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본인 스스로를 열심이 특심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신앙의 열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또, 신약의 인물들을 대표할 만한 열심의 사람은 바울입니다. 고후11:2절을 보면, 오늘 본문의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가 열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선교와 목양의 사역을 위해서 핍박도, 고난도, 미움, 위험도 감수할 정도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대단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들면, 40일 금식을 하고, 밤을 세워 교회에서 산에서 기도하고, 어려운 형편 중에 구제의 삶도 살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등 이렇듯 초기 그리스도인들 역시 대단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한국교회의 놀라운 부흥과 열심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 차례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가장 열심을 내는 일은 무엇입니까? 혹시, 돈버는 일, 성공하는 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 자녀를 양육하는 일,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 물론, 이런 일에도 우리는 마땅히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열심, 신앙적인 열심은 어떻습니까? 엘리야처럼, 바울처럼, 우리나라 초기 그리스도인처럼 열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열심이라는 것만을 기준한다면, 이스라엘보다 더 꾸중 받아야 할 우리는 아닐까요?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신앙의 열심을 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국가려고, 상받으려고, 명령하셨으니까?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열심을 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무슨 일에든 열심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왕하19:31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실 때에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9:7절을 보면,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실 때에도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향해 계획만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또는 건성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모든 계획을 열심을 가지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 지키시는 일, 보호하시는 일, 용서하시는 일, 구원하시는 일, 도우시는 일, 축복하시는 일, 인도하시는 일..., 등 우리를 향한 모든 일을 열심을 가지고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도 하나님처럼 무슨 일에든지 특별히 신앙의 열심을 갖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열심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 백성다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신앙의 열심이 있었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신앙의 열심도 있는데 왜 꾸중하시고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열심이 하나님이 인정할 말한 열심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열심을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백성다움입니다. 다시 1절을 보면,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라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언약을 어겼다, 율법을 범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다움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언약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이스라엘사이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대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어주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입니다. 이것이 언약의 내용이고, 본질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 백성 다워지기 위함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범했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불순종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바인 하나님 백성다움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3절에서 ‘이미 선을 버렸으니.’ 라는 말도 단순히 윤리와 도적을 저버렸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신앙의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의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님 백성다움이 아니라, 목적인 없는, 또는 자기 자랑과 과시가 목적인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신앙의 행위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다워 짐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약성경에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마7:22-23절을 보면,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이까 하리니’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열심을 내밀고, 알아달라고 말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입니다. 분명히 신앙의 열심이 있었지만, 꾸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꾸중을 듣게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1차적으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리고 2차적으로는 스스로 신자라고 여기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들은 한마디로 ‘분리주의 자’ 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자부했을까요? 바로 율법에 대한 열심의 수준이 남다르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율법에 열심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더 정확히 말을 하면, 율법의 요구보다도 율법을 지나치게 지킨 사람들입니다. 예를들면, 율법은 1년에 1번 금식할 것을 말하고 있지만 이들은 눅18:12절을 보면,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즉, 1주일에 2번이나 금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또, 율법은 부정하게 된자들에게 물로 씻는 정결의식을 말하지만, 이들은 외출 후 집에 돌아온 후에 무조건 씻었으며 손을 씻지 않고는 절대로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로 정결의식을 지킨 것입니다. 또, 율법에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만 말하지만, 이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39가지로 정하고 지켰습니다. 예를들면, 반죽을 하지 말 것, 수염을 깍지 말 것, 바늘을 들고 다니지 말 것, 소금을 치지 말 것, 두 글자 이상 연속으로 쓰지 말 것, 불을 켜거나 끄지 말 것, 물건을 옮기지 말 것..., 등 또한 율법은 기도할 것을 말하지만, 이들은 하루에 2-5번 이상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시간에 길거리에 있으면 그곳에서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했고, 기도시간에 시장에 있으면 그곳에서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기도 시간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이들은 10계명을 613(하라:248 하지말라:365)가지 실천조항을 만들어 지켰습니다. 이와같이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대한 남다른 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서기관들은 누구입니까? 주로 레위지파 사람들이며, 왕정 시대에는 국가 중요 문서를 기록하고 정리하며 보관하는 일(왕하 22:3), 왕의 비서의 일(삼하 8:15, 17; 왕하 12:10; 대상 18:14), 성전 창고지기(왕하 12:10; 대하 24:11)의 일, 징병관(왕하 25:19; 대하 26:11) ..., 등의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게는 율법을 연구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에 전념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서기관들은 율법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겨는 주는 중요한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성경을 가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서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4살 이전부터 율법의 해석, 율법에 나오는 법률, 율법에 나오는 법조항..., 등을 공부하고, 어느 정도의 실력을 인정을 받게 되면, ‘탈미드 하캄(보조교사)’ 라는 칭호를 받고, 그후 계속해서 율법을 연구한 후 40살이 되면, ‘하캄(정교사)’ 라는 칭호를 받고 정식 서기관이 된다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이 거론하신 서기관은 적어도 30년 이상을 율법만 연구한 율법의 박사, 아니 최고 권위자들이며 율법에 대단한 열심, 열정을 가진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꾸중을 듣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심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열심히 특별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꾸중을 받았습니까? 오늘 본문대로 말한다면, 하나님 백성, 하나님의 사람다워지는 일을 놓쳤기 때문이고, 마7장의 본문대로 말한다면, 자신들을 아름다운 나무로 만드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마7:17-18절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다시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아름다운 나무가 되는 것보다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뭔가를 열심히 많이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열심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열심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까? 자랑, 과시, 신앙의 스펙..., 여러분은 좋은 나무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백성 다움, 그리스도인 다움, 신자다움, 성도 다움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그 열심도 이스라엘의 열심이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가진 열심과 과연 다를까요? 불법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열심을 갖어야 합니다.
3.하나님 백성다움이란?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 백성 다움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 백성다워 진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신앙의 기준과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 다움이고, 좋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어떠한 것을 닮아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전체를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성경이 말하려는 하나님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권세와 능력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곧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무엇입니까? 바로 용서와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라는 성품과 속성에 대해서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열심을 내는 그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닮아내는 것입니까? 그래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평생 소원과 목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특별히 용서와 사랑의 속성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습속에서 용서가 많아지고, 사랑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열매로 여러분이 아름다운 나무임을 증명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열심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하나님처럼 열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특별히 신앙생활 가운데 열심을 냅시다.
3)그러나 열심 가운데 하나님 백성 다워지는 것 곧 하나님을 닮아내는 것을 놓치지 맙시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한 열심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날이 더 하나님 백성 다워지고, 하나님을 닮아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