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7:8-16절 호세아서강해17
제목 : 반응하지 못한 이스라엘!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는 아들 앞에서 자신의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로 피멍이 들도록 때리면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널 잘못 키운 내 잘못이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은 충격을 받고, 아버지에게 ‘아버지 그만하세요 제가 잘 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아들은 정말 착한 아이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아들은 한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도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예전에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대로 아들을 앉혀두고,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치면서 ‘널 잘못 키운 내 잘못이다.’ 라고 말을 했다고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고, 엄마를 향해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이상해.’ 아버지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이스라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반응이라는 관점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결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잘못된 반응을 나타낸 이스라엘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호7장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중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시간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잘못을 꾸중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떠났다는 꾸중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정말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버리고, 떠났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한번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꾸중하시는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아닌, 주변의 강대국을 의지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자신을 떠난 것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꾸중하는 잘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잘못된 반응’에 대해서 꾸중하고 계십니다. 이제 10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여기서 ‘이 모든 일’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9절을 보면,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할까요? 원수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아람왕 하사엘(왕하8)과 그의 아들 벤하닷(왕하13)을 말합니다. 그리고 앗수르왕 불(왕하15)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괴롭힌 나라이며 왕들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람과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중하시고, 징계하시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꾸중하시고 징계하시면서 기대하신 반응은 무엇일까요? 다시 10절을 보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즉, 하나님은 그들이 꾸중을 받고, 징계를 받으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회개라는 반응을 나타낼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거나 구하거나, 회개하는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11절을 보면,‘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또, 13절 ‘화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또, 14절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또, 15절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 16절‘돌아오지 아니하니.’ 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꾸중하시고 징계하시면서 그들이 돌아오고 회개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반응이 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기대하지 않았던 잘못된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꾸중하는 것이고, 이러한 북이스라엘을 향해 탄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 신앙 또는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는 것,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갖고 사는 것, 교회생활을 좀 하는 것...,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틀린 말입니다. 그렇다면, 믿음, 신앙 또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 점은 히11장을 보면, 가장 분명히 나타납니다. 여러분! 히11장을 보면, 각 시대를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아벨, 에녹, 노아,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등 많은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노아는 하나님이 심판주이시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방주를 만드는 말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자도 살려내시는 분이라는 점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또, 기생 라합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애굽나라와 광야에서 행하신 일을 듣고, 하나님만이 참된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이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여리고에 정탐 온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숨겨주고, 도망갈 길을 열어주는 말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성경에서 소개하는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 또는 신앙이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믿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과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모두 믿음과 신앙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대해 반응하고 계십니까? 예를들면, 심판하실 분이므로 죄짓는 일에 대한 두려움의 반응, 인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의지하고 의탁하는 반응,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므로 기도로 도움을 구하는 반응, 좋은 것 주시는 분이므로 항상 감사하는 반응..., 등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습니까? 또,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계십니까? 예를들면, 섬겨라, 사랑해라, 순종해라, 감사해라, 예배하라, 기도하라, 큐티하라, 헌신하라, 신자답게 살아라..., 등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반응하고 계십니까? 반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의 상태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반응을 보인다면 여러분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좋은 신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속에서 반응이 없다면, 지금 여러분의 영혼의 상태는 대단히 치명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산자와 죽은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반응의 차이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모든 것에 반응하게 됩니다.(음식,재미,아름다운 여자,멋진남자..,등) 그러나 죽은 사람은 무엇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음에도 잘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중한 병으로 인해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은 살아 있지만 건강한 사람들처럼 반응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자로 살지만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혼에 건강함, 영혼의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응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내는 참다운 믿음과 신앙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반응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우리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이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고집 때문입니다. 호4: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북왕조 이스라엘을 ‘완강한 암소’로 묘사를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을 고집스러움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고집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꾸중과 징계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고집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낼수 없는 이유는, 내 생각, 내 계획, 내 방법, 내 바램..., 등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미 살펴본, 믿음의 사람들이 고집을 부렸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낼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너무나 고집이 셉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반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도리어 잘못된 반응만 나타냅니다.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주는 본문은 마11장의 장터에 노는 아이 비유입니다. 이 비유안에 예수님께서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세례요한이 와서 회개를 선포해도 회개의 반응을 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와서 천국의 기쁨을 선포해도 천국에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바리새인들이 회개의 말씀과 천국기쁨의 말씀에도 반응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율법놀이만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율법을 정리하고, 세부조항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율법의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재미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의 말씀에도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내 생각, 내 기분, 내 방법, 내 기준, 내 목표, 내 원함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인 고집이 우리로 하여금 반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정당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은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를 원한다면, 내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반응하는 일에 관심, 다르게 말하면 거룩한 재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 분야에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들면, 야구, 골프, 책, 커피, 육아, 자동차, 옷..., 그러나 반대로 관심이 없는 일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마11장의 장터에 노는 아이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세례요한의 회개의 초대, 예수님의 천국의 초대에도 반응하지 않은 것은, 회개와 천국이 그들의 관심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관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율법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대로 율법의 세부조항을 만들고,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나 안지키나 감독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회개의 초대, 천국의 초대에 반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강대국에게 잘보이는 것이고, 그래서 그들의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11절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순종)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여러분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돈 버는 일, 맛 집 찾아다니는 일, 자식, 취미생활..., 등 이런 일에 관신 갖는게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재미를 갖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셋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누구에게 가장 많은 반응을 보이십니까? 아마도 자식, 배우자, 부모, 친구...,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요일5: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이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고, 관심이 없는 것 때문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3.다시 반응하려면
저는 여러분 모두가 삶의 모든 자리, 삶의 모든 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 나에게 복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노아가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았다면, 기생라합이 하나님께 반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복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반응했기 떄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대단히 복된 일입니다.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회개해야 합니다. 즉, 우리들이 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을 잘못인 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모든 신앙의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입니다. 즉, 회개없는 회복, 회개없는 일어섬, 회개없는 성장, 회개없는 축복, 회개없는 반응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모든 운동은 어렵습니다. 특히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어렵습니다. 쉽게 실력도 안늡니다. 구력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속출하기 때문이고, 그 상황마다 적절한 반응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 각의 상황마다 적절한 반응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끊임없이 훈련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결심하고 다짐한다고 쉽게 되어지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노력,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반응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마시고, 인내를 가지고 노력하고 힘쓰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반응을 원하십니다.
본문과 삶
1)반응하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2)그러나 우리들이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고집, 무관심, 사랑하지 않음 때문입니다.
3)반응하는 것이 복됨을 알고, 회개하고 끊임없이 훈련하기 바랍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더 많은 반응이 있는 신자의 삶을 살기를,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반응을 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