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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을 떠난 자들!(호세아서강해15)
 본문말씀 : 호7:1-16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7.18
조회 : 8,925   추천 : 0  
본문 : 호7:1-16절
제목 : 하나님을 떠난 자들!(호세아서강해15)

  성도들의 삶속으로  
 유기성목사님의 ‘내 안에 계신 예수님과의 행복한 동행’ 이라는 책에 보면, 결혼과 관련된 재미있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청년사역을 오래하신 어느 목사님이 있는데, 얼굴이 예쁜 자매들이 결혼을 하고 불행하게 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고, 반대로, 좀 예쁘지 않은 자매들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그 이유가 궁금한 목사님이 고민을 해보니, 기도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즉, 얼굴이 예쁜 자매들은 다가오는 형제들이 많으니 결혼에 대한 걱정이 없고, 따라서 결혼을 위한 기도가 부족했던 것이고, 반대로 얼굴이 안 예쁜 자매들은 하나님이 도우셔야 결혼을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한가지를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함이 행복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빼앗고 쟁취함!
 오늘 본문은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 이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서 에브라임은 북왕조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 지파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북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여로보암1세가 에브라임지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마리아는 왕과 귀족들이 사는 북왕조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선지자가 지적하는 지도자들의 죄는 무엇일까요? 1차적으로 지적하는 죄는 반란과 혁명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하고 밖으로 떼지어 노략질하며’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혁명과 반란이라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 이것은 반란을 통해서 왕이 된자들에게 아첨과 아부의 말을 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하들은 또, 5절을 보면, ‘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나며’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새로운 왕이 즉위하는 축하의 날에 거짓 축하를 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 말은 겉으로는 축하를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음모를 꾸민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7절을 보면,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호세아선지자가 지적하는 지도자들의 죄악은 반란과 혁명을 말합니다. 실제로 북왕조 이스라엘의 역사속에 반란 사건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단적인 예를들면, 호세아선지자는 bc750년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한 bc722년 이후까지 대략 40년 정도 선지자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2세 말년부터, 스가랴(6달), 살룸(1달), 므나헴(10년), 브가히야(2년), 베가(20년),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19대왕인 호세아왕(9년) 등 7명의 왕이 통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7명의 왕중에서 4명의 왕은 궁중반란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를들면, 여로보암2세의 아들인 스가랴는 왕이된지 6개월만에 반란을 일으킨 살룸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살룸은 왕이 된지 1개월만에 반란을 일으킨 므나헴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므나헴의 아들인 브가히야는 아버지를 이어 왕이된지 2년만에 베가의 반란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베가왕 역시 호세아의 반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6-7명의 왕들 중에서 4명이 반란으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호세아선지자가 통치하던 그 시기는 반란과 혁명의 시기였다고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란은 호세아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답왕은 바아사의 반란에 의해서 죽었고, 오므리왕도  지금 하나님께서 호세아선지자를 통해서 계속되는 반란과 혁명의 죄악을 꾸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란이 북왕조 이스라엘의 멸망을 재촉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반란 다르게 말하면, 분열은 멸망의 가장 분명한 징조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여러분에게는 반란, 혁명, 음모를 꾸미는 일은 없습니까? 물론, 여러분에게는 반란, 혁명, 음모라는 표현들이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르게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누군가의 것을 빼앗고, 쟁취하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또, 누군가를 비난하고 험담하고 정죄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더 쉽게 말하면, 누군가의 기쁨을 빼앗고, 누군가의 평안을 빼앗는 일은 없습니까? 누군가를 싸워서 이겨먹으려고 하는 것은 없습니까? 또, 누군가를 끌어내리려는 일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 우리 모두가 이 질문 앞에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것을 빼앗고 쟁취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성경은, 나누고, 베풀고, 거져 주는 삶, 높여주고 섬겨주는 삶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산상수훈을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외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께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습이 멸망해 가던 북왕조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같이 빼앗고, 쟁취하고, 음모를 꾸미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누고 베풀고 섬기고 높여주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더 엄중하게 꾸중하는 죄가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지도자,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가지는 모든 죄악의 원천이 되는 죄를 꾸중하고 있습니다. 바로 13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라’ 무슨 말입니까? 북왕조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일까요? 그래서 하나님 백성이기를 거절했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에게도 갔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대한 모든 신앙의 행위를 중단했다는 말일까요? 사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다고 꾸중은 듣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고, 선민사상도 있었고, 신앙의 행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났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세아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린대로, 이스라엘은 내부적으로 계속되는 반란과 혁명, 음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왕이 바뀌는 그리고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대단히 예민하고 어수선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외부적으로도 어려운 시기를 격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북왕조 이스라엘의 18대왕인 베가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북왕조 이스라엘은 큰 위기를 맡게 됩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앗수르 제국의 위협이 거세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베가왕은 앗수르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아람(수리아)과 동맹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동맹에 유다도 참여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거절하자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와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베가왕이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해 아람과 동맹을 맺고 유다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앗수르에게 전해집니다. 그러자 앗수르는 베가가 통치하는 북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베가왕은 세력이 약해지게 됩니다. 그때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호세아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줍니다. 그런데 호세아왕은 앗수르의 세력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그래서 애굽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북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북이스라엘 베가왕이 앗수르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람과 동맹을 맺고, 유다와 동맹을 맺으려고 한 것, 그리고 앗수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애굽에게 도움을 구한 것, 과연 잘못된 일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게 잘못입니까? 뭐가 잘못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잘못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려고는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 것 같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 애굽을 향하여 부르 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라고 꾸중을 합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그들이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또, 14절에서도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의 잘못된 모습을 8절에서는 ‘그들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고 묘사합니다. 여러분 뒤집지 않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한쪽은 새까맣게 탔고, 다른 한쪽은 익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즉, 북이스라엘은 마치 뒤집지 않은 전병 같아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전혀 익지 않고, 세상의 권력에는 타도록 심취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들만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죄를 꾸중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백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정정치를 근간하는 나라이며 신정 정치를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하는 국가라는 말입니다. 더 간단히 말을 하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물음으로 유지되는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다르게 말을 하면, 이스라엘은 자신을 힘의 원천으로 삼지 않고, 다른 무엇도 힘의 원천으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만 힘을 얻기로한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죄이며,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아닙니까? 무엇을 묻는 질문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느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의 의미, 또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대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겠다는 말이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힘과 도움, 복의 원천으로 삼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힘과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만을 복의 원천으로 삼고, 의지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이런 의미로 여러분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만을 힘과 도움을 삼고, 하나님만을 유일한 복의 원천으로 삼고, 그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조금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북왕조 이스라엘 역사속에 왜 끊임없이 반란과 혁명과 음모가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만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외편도 돌려 대고, 속옷을 가지고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께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는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할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할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예를들면, 왕하18장을 보면, 히스기야왕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는 25살에 왕이 되어 29년간 통치한 왕입니다. 그는 왕이 되고나서, 산당을 제거하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든 놋뱀까지 부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2가지입니다. 산당을 제거했다는 것과 놋뱀까지 부수었다는 점입니다. 먼저, 그는 산당을 제거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다의 역대왕들중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던 왕인 ‘아사, 여호사밧, 요아스, 아마샤, 아사랴, 요담’ 왕들로 산당을 폐하지 아니함으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다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은, 이방우상을 섬겼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산당에서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종 종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하기도 했지만 산당을 만든 의도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문제냐고요?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신12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소에 나와 예배할 것을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은 산당을 만들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왜 산당을 만들었습니까?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이방우상숭배자들에게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높은 곳에서 제사를 드려야 받는다는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서입니다. 즉, 먼곳에 있는 성소에 가기보다 가까운 곳에서 제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생각인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인간중심의 예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산당을 제거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왕은, 모세가 만든 놋뱀까지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이 그 놋뱀에 분향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놋뱀을 신성시하고, 우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가 산당을 제거하고, 놋뱀을 부수는 일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산당은 이미 유다의 전통, 문화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고, 놋뱀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반발과 원망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역대왕 누구도 할수 없었던 일, 하지 않았던 일을 히스기야왕이 해낸 것입니다. 왜 그것이 올바른 신앙을 방해하는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왕이 누구도 할수 없었고, 누구도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담대할 수 있고, 능력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3.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을까요? 첫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늘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의지함은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증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나님을 의지하는가는 결국, 순종의 모습을 보면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순간에도,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시1편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자’ 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만을 힘과 도움, 복의 원천으로 삼아야 할 자입니다. 
  2)그러므로 매일의 삶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3)그 방법은 기도이며, 순종입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리어 지금보다 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기쁨과 행복과 복이 넘치는 인생 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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