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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호세아 선지자의 호소!(호세아서강해13)
 본문말씀 : 호6:1-3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7.4
조회 : 8,105   추천 : 0  
본문 : 호6:1-3절   호세아서강해13
제목 : 호세아 선지자의 호소!   

  성도들의 삶속으로  
 올해 초 미국 플로리다 주(州)에서 살던 마를린 요셉(26)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동거녀인 카라다 크로웰(36)과 그의 딸 키라 잉글렛(11)을 총으로 쏴 죽이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국에서 이러한 총기 살인 사건은 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인사건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게된 이유는, 그 살인 사건의 용의자의 어머니인 로빈 덴슨이 WPTV 방송을 통해서 아들에게 ‘제발 자수해다오’라고 눈물로 자수를 호소하는 영상이 방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끝내 자수하지 않았고,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호세아 선지자가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간절히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호세아 선지자가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선지자의 호소의 내용 
 그렇다면, 과연 호세아선지자가 이스라엘(북이스라엘과 유다 모두) 백성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크게 3가지로 호소를 합니다. 첫째는, 1절에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는 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장소의 이동을 말할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늘 이스라엘 땅에 살았고, 그들은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마음과 중심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개선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종교적인 행위를 잘 이행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제사의식도 이행했고, 절기 의식도 이행했고, 나름대로 율법의 이행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즉, 이사야선지자의 탄식처럼, 사29:13절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였던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는 호소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곧 하나님을 향해 마음과 중심을 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호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호세아선지자의 첫 번째 호소 소리가 여러분의 귀에 맴돌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모인 여러분은 교회에서 누구보다도 더 열심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돌아가자는 호소와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셔야 합니다. 과연 친밀한 관계인지? 또, 여러분의 마음과 중심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과연 내 마음과 중심을 늘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더나가서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습니까? 

 호세아선지자 는 두번째로, 2절에 ‘우리가 그 앞에서 살자(리라)!’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살자’ 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심으로 살아날 것 곧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생명을 얻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계속 살 것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 돌아간 후에는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자라는 호소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왜 떠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관되는 한가지 사건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출1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3일 동안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물을 찾았지만 써서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장 하나님과 모세에 대하여 원망을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치료의 하나님이다’ 라고 오늘 본문 1절과 같은 말씀을 하시고 쓴물을 고쳐 마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부터 10km 떨어진 엘림에 도착했을 때, 물샘 12개와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만 인내했다면, 그들의 마음과 신앙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의 앞에서 살자라는 호소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 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이틀후 셋째날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또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다니엘서에서는 한때와 두때와 반때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현 방식은 항상 인내를 요구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따라서 2절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날이 오기에 인내하라는 표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인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를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합니다. 예를들면, 눅8:15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또,  롬5: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또, 히12: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또, 히10: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인내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인내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인내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마음과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원망과 불평, 불신앙으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세아선지자는 세 번째로, 3절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힘써’ 라는 단어는 최대의 정성과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선지자가 하나님을 알자고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근거로 말한다면, 그들이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난 이유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정보, 지식을 아는 것입니까?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정보와 지식을 토대한 올바른 관계, 쉽게 말하면, 사랑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어 이스라엘은 신앙의 실패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역시 다양한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이유거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사랑했다면, 그러한 실패를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호세아의 호소입니다. 

  2.회개하라는 호소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한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 앞에 살자, 여호와를 알자’입니다. 그런데 이 3가지 호소들을 통해서 호세아선지자가 진정으로 호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호세아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세아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회개를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신앙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정말 중요한 신앙의 요소입니다. 왜? 중요 할까요? 여러분은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경험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설을 해야 되고 제대로 배설을 못하면 큰 병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영혼의 배설은 회개이며 회개를 못하면 큰 죄에 눌리게 된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너무나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사람이 배설을 못하면 큰 병에 걸리고, 그 독소로 인해서 혼수상태에 빠지고, 결국 죽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영혼의 배설인 회개를 못하면 영적으로 큰 병에 걸리고, 영적혼수상태에 빠지고,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회개는 영혼의 건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며, 나의 신앙의 상태를 반영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가 중요한 더 큰 이유는, 회개 없이 구원을 얻을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개 없는 은혜주심이 없고, 회개 없는 기쁨과 감격도 없고, 회개없는 신앙의 성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번 주간에 여러분이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이 회개한 것은 무엇입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정말 회개할 것이 없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회개한 것이 없다는 것은, 회개를 못할 정도로 신앙이 무너지고 병들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아직도 회개할 것이 많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들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반증인 것입니다. 

 그럼 회개와 관련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회개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나의 죄를 깨달고, 하나님께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회개는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기준으로 나의 잘못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나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인정하고 시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답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하는 회개가 올바른 회개일수도 있고, 올바르지 못한 회개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나의 죄를 인정하고 시인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시, 죄로 인해서 받게 될 벌이나 진노가 무서워서, 그래서 그것을 피하기 위함입니까? 물론, 우리들이 신앙을 처음 갖게 될 때의 회개는 그런 의미에서의 회개이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후로는 그러한 회개는 올바른 회개, 참다운 회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종 종 어린 자녀들이 뭔가를 잘못하면 부모들이 무섭게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금방 잘못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네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잘못했다고 말을 합니까? 그것은 부모에게 야단을 안맞기 위함이고, 벌을 피하기 위함일 뿐인 것입니다. 이제 성경에서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먼저, 마3장입니다. 보면,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외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러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요한에게 나왔고, 회개함의 증표로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례받으려는 무리 중에 누가 있었냐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세례요한이 그들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입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많은 백성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회개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많은 백성들의 회개는 요한의 의도에 맞는 회개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회개의 목적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진노를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꾸중한 것입니다. 그들의 회개가 올바른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가 또 있습니다. 삼상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 이후 다 진멸하라고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한 사울이 사무엘선지자에게 꾸중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울을 버릴 것을 전합니다. 그러자 사울왕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라고 회개합니다. 그 회개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진노, 버림받는 벌을 피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이것은 참다운 회개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가 늘 이런 이유였고, 때로는 우리의 회개도 이러한 이유일 때까 많습니다. 그 결과 늘 동일한 죄를 반복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르고 참다운 회개의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고민해도 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있는대로만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이유는, ‘나의 죄로 인해서 탄식하시며, 마음 아파하실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신앙의 이유는 하나님을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는 죄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을수 있게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회개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호소의 근거
 이제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은 간절히 호소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에 대해서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곧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 돌아가자’ 라고 말하면서, 도로 낫게 하실 것,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의 앞에서 살라’고 말하기 이전에 살리시며,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여호와를 알자’ 라고 말하면서, 그가 나타 나실 것과 임하실 것(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심)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는 호소의 근거는 하나님의 인자 곧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그가 더 강력히 호소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은 너희를 여전히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너희를 향해서 늘 애타신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달라.’ 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근거로 다음주 본문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갈수 있는 이유, 때로는 죄의 문제를 가지고도 나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 곧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기억하시고, 감사하시고, 감격하시고,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신앙의 원천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과 삶
  1)그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마음을 달라고 호소하십니다. 
  2)또한, 인내하라고 호소하십니다.  
  3)또, 사랑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호소를 듣고, 회개함으로, 더 나은 신앙의 자리로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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