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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하나님을 안다는 것!(호세아서강해8)
 본문말씀 : 호4:1-10절
 설교자 : 최용민목사
 설교일자 : 2018.5.30
조회 : 10,268   추천 : 0  
본문 : 호4:1-10절  호세아서강해8
제목 : 하나님을 안다는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우리들의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다르게 질문하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돈, 명예, 권력, 학식, 인기..., 아닙니다. 이런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그것은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 그 밖의 다양관 관계...,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다양한 관계속에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의 상태에 따라서 행복이 결정이 됩니다. 성경에서도 잠21:9절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고 말을 하고, 잠17:1절에서도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을 합니다. 결국, 관계가 일상의 행복을 결정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친밀한 관계가 신자의 행복과 기쁨을 결정하고, 무엇보다도 신앙의 수준과 신앙의 내용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인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놓침으로 신앙이 실패하게 되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된 북왕조 이스라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확인하고, 점검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북왕조 이스라엘은 신앙에 실패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고 책망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한 것들을 해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을 보면,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언급하십니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이라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또, 6절을 보면,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라고 말을 합니다. 또, 7절에 ‘그들이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라고 말을 합니다. 또, 8절에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절에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드르이 행위대로 갚으리라.’ 10절 ‘음행하여도 수요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고 말을 합니다. 한마디로 북왕조 이스라엘이 신앙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3, 5, 6, 7, 9, 10절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이 신앙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이 바로 6절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어떤 지식일까요? 1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신앙이 실패했고, 심판을 받을 지경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을 말할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좋아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또한 하나님이 요구하신 종교적 의식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절기들이나 규례들에 대한 정보를 말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정보를 몰랐다는 말이 아닙니다. 북왕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히 제가 지금까지 나열한 정보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그들은 지켜야 할 절기, 지켜야 할 제사의식, 지켜야 할 명령들..., 등에 대해서는 분명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지킨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입니다. 참고로, 호2:11절을 보면,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라고 말을 합니다. 앞으로 폐하겠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지켜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나 종교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없다는 말은 무엇을 도대체 무엇이 없다는 말일까요? 6절에서 말하는  ‘안다’ 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 듣거나 배워서 습득한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의 앎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와 친밀함을 통해서 얻어지는 앎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한 꾸중의 핵심은, 종교적 신앙적인 행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놓쳤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일에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호세아서 말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남편과 아내입니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의 관계이며, 보호와 순종이라는 책임의 관계입니다.(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어주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그러나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랑과 책임의 관계가 아니라, 뭔가를 주고 받는 거래의 관계로만 이해를 한 것입니다. 쉽게 말을 하면, 하나님이 원하는 종교적인 의식을 해드리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받는 관계가 되고 만 것입니다. 또는, 필요할 때만 찾는 그런 관계일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일에 소홀하거나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1-2절과 같은 신앙의 실패를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꾸중이 마7장에서도 등장을 합니다.  마7: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 말을 합니다. 참 충격적인 말입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로 소개되는 그 사람들은 종교적인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불법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니’입니다. 오늘 본문과 똑같은 꾸중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소홀했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일에는 무관심한 것입니다. 단지 열심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와 성도들 역시, 이러한 북왕조 이스라엘을 향한 꾸중,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을 향한 꾸중에서 예외될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참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신자들 역시 신뢰를 잃어가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 이 땅의 신자들이 비난과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전락하고만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선한목자교회를 담임하는 유기성 목사님께서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생각을 내 놓았습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보다,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만족을 얻기 보다, 사역을 통한 만족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교회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사랑과 책임의 관계입니까? 아니면,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엇인가를 주고 받는 관계는 아닙니까? 또는, 필요할 때만 찾는 그런 관계는 아닙니까? 사실은 이게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단히 잘못된 관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하고,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묻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속에서 무엇에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입니까? 사역입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 가운데 어디에서 만족을 얻고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입니까? 사역에서입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에서 Doing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being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사역보다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집중하고 힘쓰기를 바라고, Doing 보다는 being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것이고, 호세아가 외쳤던 힘써 여호와를 알라는 말인 것입니다.

  2.신자의 가장 큰 특권
 이제 오늘 본문과 연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의 특권에 대해서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 것,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 등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신자의 특권은 대부분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집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은혜와 자비로 주어지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쓸수 있는 것이 신자의 제일된 특권일까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쓰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자가 된 것이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이 바로 창1-2장의 인간창조와 선악과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고,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동산 중에 만드시고 인간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따먹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결국,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 친밀한 관계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다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셨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어진 가장 큰 특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과 관계 맺은 자가 된 것,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왜 특권입니까? 그것은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도무지 관계할 수 없고, 친밀해 질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을 위한 선민인지를 몰랐고, 제사제도를 주신 이유도 몰랐고, 율법을 주신 이유도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특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늘 필요로 했지만,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실패한 이유이며, 신앙에서 실패한 이유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과 친밀한 교제를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날 신자들이 생각하는 특권은 이미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쓰는 것으로만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신자들이 신앙에 실패하는 이유이고, 신앙과 삶이 이원화되는 이유이고, 신앙의 연수는 늘어가지만 성숙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크고 위대한 특권을 누리고 계십니까? 

   3.당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십시오! 
 이제는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표면적으로는 예배 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묵상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기도 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점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실질적인 점검이 필요합니다. 2가지로 점검해 봅시다.

 첫째는,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속죄제물로 보내셨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도 하여금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이 지난주 살펴본 내용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꾸중하시는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2절을 보면,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다’ 였습니다. 그러면 진실과 인애는 무엇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시117: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말을 했고, 시115:1절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라고 말을 했고, 출34:6절을 보면, 모세가 2번째 시낸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로,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과 인애가 없다는 꾸중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실패했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쳤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진실과 인애로 대표되는 하나님을 더 닮아가고 계십니까? 닮아감이 없다면, 그것은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조금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궁극적인 승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보통 승리를 잘되는 것, 응답받는 것으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인 신앙의 승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본질, 목적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감사와 인내입니다. 왜 감사와 인내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점검 기준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되고, 그 결과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인내 할 수 있고, 기쁠 때에도 하나님이 은혜로우셔서 허락된 기쁨임을 알고 감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인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확인되셨습니까?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계십니까? 더 그렇게 노력하십시오! 그런데 혹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깨뜨리거나 방해하는 것은 없습니까? 잘 점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바로 그곳에 신앙의 회복이 있고 신앙의 승리가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놓쳤습니다. 
  2)그 결과 신앙의 실패를 하게 된 것입니다. 
  3)우리의 신앙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 역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놓침에서 시작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순종하고, 감사하고, 인내하고, 무엇보다 주님을 더 닮아가는 인생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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