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삼하4:1-12절 사무엘하 강해4
제목 : 신자의 삶의 기준!
성도들의 삶속으로
여러분은 중세시대의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약 200년간 치러진 전쟁으로서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성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약 8회에 걸쳐 감행한 원정 전쟁을 십자군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십자군이라로 말하는 이유는 그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의 옷에 십자가 무늬를 그려 넣고 참여를 했고, 성지탈환이라는 신앙이라는 명분 아래 치추어진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명분만 있을뿐, 영토탈환과 지배욕이라는 욕심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200만명 이상이 죽은 참혹한 전쟁일 뿐이었습니다. 즉, 세상적인 일반적인 전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다윗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왕을 죽이고, 자신의 기득권을 확보하려고 했던 이스라엘 나라의 참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은 사람
오늘 본문은 다윗과의 협상으로 통일왕국의 2인자가 되려던 아브넬이 요압의 손에 죽은 이후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인 이스보셋이 아브넬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크게 좌절과 절망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에 이스보셋이라는 왕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통치력은 아브넬이 발휘했고, 그가 죽음으로 이스라엘은 무정부상태, 또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아브넬의 보좌관이었던 레갑과 바아나가 낮잠을 자고 있던 이스보셋을 죽이고, 목을 벱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레갑과 바아나가 곧장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달려가 이스보셋의 머리를 바칩니다. 그러나 12절을 보면, 다윗은 이스보셋왕을 죽인 것을 악행이라고 여기고 레갑과 바아나를 죽이고, 이스보셋의 장례를 치루어 주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첫 번째 생각할 것은, “하나님 백성의 다름” 에 대해서입니다. 먼저 1절을 보십시다. 보면, 이스보셋이 아브넬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크게 절망했습니다. 물론, 그럴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보셋에게 아브넬은 단순히 부하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인 사울왕을 보좌했던 전략가이며,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사람이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켜주었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넬의 죽음은 충격적인 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죽자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더 이상 살 소망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주저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보셋을 죽인 레갑과 바아나에 대해서 소개를 합니다. 7절을 보면, 레갑과 바아나는 낮잠을 자고 있는 이스보셋을 찾아가고, 죽이고, 목을 베었습니다. 여러분! 과연 레감과 바아나가 자신의 왕인 이스보셋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것은 8절을 보면, 이스보셋을 죽인 이유를 2가지로 말을 합니다. 첫째는, 통일왕국을 세워야 할 다윗을 위함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보셋을 죽이는 것이 사울왕의 집안을 몰락 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뜻이고 자신들의 행동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룬 정당한 행동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을 죽인 것은, 다윗을 위함도, 하나님을 위함도 아닌,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이 공황상태에 빠지고, 무정부상태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이스보셋의 정권이 유지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어차피 모든 백성이 다윗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한 레갑과 바아나가 다윗에게 잘 보이고, 다윗의 편에 줄을 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보셋을 죽인 대가로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유지, 또는 그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2사람은 출세주의자이고, 기회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스보셋, 그리고 레갑과 바아는 모두가 이스라엘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하면, 이 3사람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고, 할례를 하나님 백성의 증표로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율법을 잘 알고, 율법을 조항들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식대로 말을 하면,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종교생활에 익숙했고, 성경도 알고, 때로는 기도도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면, 전혀 믿는 사람답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 모습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즉, 절망스러운 일 앞에서 소망없는 사람처럼 주저 앉았고, 자신의 성공과 출세,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찢밟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 그리고 실패와 절망스러운 일 앞에 이스보셋처럼 되지는 않습니까? 성공과 돈이 되는 일 앞에서는 물, 불을 안가리는 레갑과 바아나와 같은 사람은 아닙니까? 그러면 안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2.기준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레갑과 바아나의 행동을 틀림없이 칭찬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상도 줄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임을 판단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11절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레갑과 바아나는 악인이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보셋을 아브넬의 무덤에 장사하는 배려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세상 사람들이 볼때는 이해할수 없는, 뭐 그렇게까지 할필요 있냐고 핀잔을 줄만한 일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이스보셋과 레갑과 바아나와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고, 그리스도인은 차별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몇주전 말씀드렸던 것처럼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본문은 마5-7장의 산상수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산상수훈의 내요을 보시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화, 음욕, 미움..., 등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마음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행동만을 문제 삼을 뿐입니다. 여러분! 세상 법정에서 미움을 죄라고 판단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적어도 세상 법정에서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주님은 악한자와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른빰을 치는자에게는 왼편도,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도, 오리를 가게 하거든 10리를 가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악한 원수가 구하는 것을 주며, 꾸고자 하는 것을 거절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용납할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구제, 기도, 금식을 은밀한 중에 하라고 말을 합니다...., 등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도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누가 봐도 ‘그리스도인이다’ 임을 알수 있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마땅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전 코미디언중 황기순씨의 유행어인 ‘척 보면 앱니다’라는 말과 같이 여러분을 누가 봐도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들을 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름이 신자의 능력이고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 산상수훈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면 심판을 받으리라...,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이라고 여기는 기준속에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 대해서 함부러 말하고, 미워하고, 무시하는 것도 살인으로 여기는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는 것만 간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삼는 것도 간음으로 여기는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또, ‘맹세를 지키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맹세 곧 약속을 잘 지키는 수준 정도가 아니라 약속이나 맹세가 필요한 삶을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자를 대적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나친 복수를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복수를 포기하는 기준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네 오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고,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살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차원 높은 기준, 높은 잣대를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마5:48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고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 삼아야 세상 사람들보다 높고 엄격한 기준을 갖을 수 있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삶의 기준과 원칙으로 삼으면 됩니다. 더나가서 예수님을 삶의 기준 삼으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확연히 구별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3.하나님의 기쁨을 기준으로 살라!
그렇다면, 결국, 더 높고 엄격한 기준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을 나의 기쁨을 기준 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기준 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때, 또는 무엇을 결정할 때, 한가지만 분명히 생각하면 됩니다. 이 일을 하면, 내가 이일을 결정하면, 내가 기쁜가? 아니면 하나님이 기쁜가? 그리고 만일 내가 이런 일, 이런 결정을 하면, 나는 정말 기쁜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 같으면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여러분에게 정말 유익된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지 않는 일이면 그는 행하지 않았고,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쁨이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윗에게는 참 기쁜 일입니다. 자신이 할 일을 레갑과 바아나가 대신 주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 일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것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분명한 영적 자존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영적인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여러분은 차별화된 다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 신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문과 삶
1)그러므로 세상사람과 차별화된 다름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그러기 위해 더 높은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3)하나님의 기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윗같이 다름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소원하고 이루며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