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호4:1-5절 호세아서강해7
제목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성도들의 삶속으로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이라는 책을 보면, 많은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서 우리들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면 더 좋은 관계를 만들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을 갖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수 있고, 더 나은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 질수 없고, 무엇보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1) 연결 –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그로 인해서 신앙이 실패했던 북왕조 이스라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본문의 근본적 교훈 말하기
1.환경이나 현실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북왕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과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1절을 보면, 북왕조 이스라엘의 죄악을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면서 2절을 보면,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언급하십니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이라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10절까지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이 이와같이 죄악을 범한 이유, 신앙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먹고 살기 어려웠기 때문일까요? 고단한 현실 때문일까요? 오늘 본문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을 합니다. 7절을 보면, ‘그들이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이라고 말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실패하여 범죄한 이유가 결코 가난이나 궁핍, 고난스러운 현실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서 번성(인구, 부와 명예, 강성)과 영화(세상에서 높아짐)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신앙이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순종 또는 신앙생활이란 주어진 환경이나 현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점을 다른 본문으로 확인해 봅시다. 출16장은 만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광야에 도착을 합니다. 그때가 출애굽한지 약 1달 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신광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을 보면, 배불리 마음껏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때 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즉,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단순히 만나를 하루에 한번 그리고 안식일에는 거두기를 쉬는가를 시험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너희들의 말대로 너희가 배부르게 양식을 먹으면 너희들이 율법에 순종하는가? 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 곧 만나를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율법에 대한 순종의 유무를 지켜보시겠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신앙의 실패가 배고픔 때문이라고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서 나온 이후로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홍해바다, 마라의 쓴물) 즉, 신앙의 실패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신앙의 실패가 마음대로 양식을 먹지 못하고,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침에는 만나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해주고, 저녁에는 고기(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과연 순종을 하는지 보시겠다고 말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침에는 만나를 배불리 먹고, 저녁에는 메추라기 고기를 배불리 먹은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했을까요? 신앙에 성공했을까요?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고 배불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들의 의복과 신발이 낡지 않았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지키셨지만, 그들은 조금도 순종하지 못했고, 조금도 하나님 백성답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당한 삶을 살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핑계는 거짓말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 2명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약 40년이 지난 후 모세는 신8장에서 출애굽 2세대들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신8:3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신앙의 성공과 실패는 배부름과 배고픔에 달려 있는게 아니라는 말이고, 마심과 주림에 근거한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배부르고 많이 마신다고 신앙의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주리고 목마르다고 신앙이 실패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점은 눅16:19-31절의 부자와 거지나사로의 비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거지 나사로입니다. 그는 최악의 환경과 현실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잘먹고, 좋은 환경에서 살던 부자는 뜻밖에도 지옥에 갔고, 신앙의 실패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환경이나 현실이나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종 종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예배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고, 주의 일에 힘쓰지 못하고..., 등 그런데 그러한 것을 환경이나 현실이나 사람 탓으로 핑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신자로 살아가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미 충분히 공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와 약속을 주셨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을 주셨고,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외에도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조금도 아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자신의 독생자까지 내어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신앙의 실패를 늘 환경과 현실과 사람을 탓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2.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북왕조 이스라엘의 신앙의 실패의 이유는 결코 어떤 환경이나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앙의 실패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중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특별히 3가지를 언급하십니다. 첫째는, 진실도 없고, 둘째는, 인애도 없고, 셋째는, 하나님을 아는 자식도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2절에 나오는 죄악들은 1절에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나타나는 결과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진실’입니다. 1절 ‘진실이 없고’ 라고 말을 합니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일까요? 보통 세상에서는 거짓이 없음, 또는 순수한 의도.., 를 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실은 많이 다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실이란 의롭고 성실한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열심이 있는 의로움이라는 말입니다. 이해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더 풀어서 설명을 하면, 의로운 사람이 의롭지 못한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열심을 가지는 것을 진실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이 의롭고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만 의로운데 멈추지 않고, 불의 인간을 의롭게 만드시기 위해서 열심을 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진실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의롭고 성실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의로움에만 멈추고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하는 열심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꾸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진실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애’입니다. 인애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서 ‘인애, 인자, 자비, 긍휼, 친절, 사랑, 은혜..,’ 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호세아서에서는 사랑과 은혜로 번역이 됩니다. 결국, 인애라는 말은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니라, 사랑과 은혜로 대우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하나님은 인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닌, 사랑과 은혜로 대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러한 인애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한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북왕조 이스라엘을 꾸중하시는 이유가, 진실과 인애가 없기 때문인데, 중요한 것은, 진실과 인애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속성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117:2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말을 했고, 시115:1절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라고 말을 했고, 출34:6절을 보면, 모세가 2번째 시낸산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로,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고 말을 합니다. 이렇듯 진실과 인애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속성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왕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대표 속성인 진실과 인애가 없다고 꾸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꾸중하실 때에도 동일한 꾸중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마23: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고 꾸중을 합니다. 같은 꾸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실과 인애가 없다는 꾸중은 어떤 꾸중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닮아내는데 관심이 없었고 닮아내지 못했다는 꾸중인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넓게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해방시키시고, 하나님 백성 삼으시고, 율법을 주시고, 여러 가지 종교적 의식들을 요구하신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 점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닮아내는 일에 힘쓰지 못했고, 그 결과 그들의 신앙은 실패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셋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께 대한 정보의 유무가 아닙니다. 여기서 사용된 ‘알다’ 라는 단어는 지식적 앎이 아니라, 경험적인 앎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섬기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닮아감과 연관되는 말인 것입니다.
결국,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실패 이유는 무엇입니까? 환경이나 현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가장 요구하시는 것인, 하나님을 닮아내는 일이라는 점을 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을 닮을 것을 요구하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하나님은 수단으로 전락했고, 자신의 신앙을 실패케 했고, 2절처럼, 남을 망치는 자들이 되었고, 3절처럼 세상을 망치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목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소원성취, 문제 해결, 만사형통, 큰 상, 나를 옳게 만드는 것, 하나님을 위해 뭔가 많이 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요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예를들면, 창1:27절을 보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말을 합니다. 또, 레19:2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빌2:5절에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가장 올바른 목표이고,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여러분도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을 놓치지 말고, 게으르지 말고, 힘쓰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렇다면, 북왕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닮아내는 일에 왜 실패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습니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미워한다. 증오한다. 싫어한다..., 아닙니다. ‘좋아한다.’입니다. 이해가 안되시지요? 그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커피를 좋아하십니까?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은 여행을 좋아하십니까? 사랑합니까? 여러분 음악을 좋아합니까? 사랑합니까? 아시겠습니까? 좋아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목적하는 말이고, 사랑한다는 말은 내 자신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목적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를 좋아하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을 좋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한다는 말과 좋아하는 말이 비슷한 말 것처럼 보이지만, 도리어 전혀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북왕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닮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좋아하십니까?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비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가장 요구하시는 것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임을 깨달게 되고, 닮아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신앙의 원천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교리적용
신앙은 환경과 현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과 삶
1)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정합니다.
2)즉,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결정합니다.
3)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요구하십니다.
소망(성장)으로의 인도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을 신앙의 목표로 삼고 힘쓰기를 바랍니다.